과거 ‘체육관 대통령’ 오명 속…스포츠 경기·콘서트 명소로
1969년 이른바 ‘삼선개헌’으로 세 번째 대통령 출마가 가능해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고전했다. 중앙정보부와 행정기구와 수백억원으로 추산되는 엄청난 선거비용을 동원했음에도 94만표 차로 겨우 승리한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에 회의감이 들었다.
1972년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통일 3원칙에 합의한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한 그는 10월17일 계엄령을 선포해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이른바 ‘10월유신’을 단행한 것이다. 12월 ‘남’은 유신헌법, ‘북’은 주체사상을 명시한 사회주의헌법을 각각 제정함으로써 남북 화해 ‘쇼’는 권력 강화로 마무리됐다.
유신헌법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 2359명의 ‘대의원’이 대통령을 뽑게 된 제8대 대통령 선거는 제7대 대통령 선거의 사자후가 토해지던 장충단 공원 바로 옆 장충체육관에서 진행되었다. 무효표 2명을 제외한 전원이 찬성하여 박정희 후보가 99.9%의 득표를 한 이 선거를 역사는 ‘체육관 선거’라 부른다. 장충체육관은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세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장충체육관은 1955년 노천 체육관으로 개관했다가 1963년 대대적인 개보수를 통해 실내체육관으로 변신했다. 한국인이 설계하고 한국 기업이 건설한 최초의 돔경기장으로, 이곳에선 대통령 선거만이 아니라 역사에 남을 수많은 행사가 치러졌다. 특히 1966년 김기수의 복싱 세계챔피언 최초 등극, 전 국민을 열광시킨 김일과 안토니오 이노키의 프로레슬링 시합도 여기서 이루어졌다. 1980년대 최고 인기였던 민속씨름과 농구대잔치가 벌어진 곳도 여기다.
노후한 건물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2012년 공사에 들어갔고 2015년 지하 2층, 지상 3층과 새로운 돔으로 증축해 재개관한 모습이 지금의 사진이다. 1971년 사진에 보이는 난간은 사라졌고, 수도권 3호선 동대입구역의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남산에서 시작해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남소문동천은 지금도 여전히 흐른다.
장충체육관은 이제 V리그 프로배구단 GS칼텍스 서울KIXX, 서울 우리카드 우리WON의 홈구장으로 쓰인다. 경기가 없을 때는 콘서트도 자주 열린다. 과거 ‘체육관 선거’는 1978년 제9대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곤 비상계엄령하에서 치러졌다. 이런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