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명품관을 백화점의 얼굴로 여긴다. 하지만 백화점 입장에서 트렌드에 민감한 고객의 관심을 유도하기에 식음료 매장만 한 것이 없다.
지역별 구매력을 감안하면 전국 모든 백화점에 해외 명품 매장이 입점하긴 어렵다. F&B 매장은 이런 점에서 명품 매장보다 효율적이다. 게다가 백화점 식품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핵심 콘텐츠인 트렌디한 음식을 취급한다. 입소문을 타면 사람이 몰려 식품관은 물론 백화점 전체 매출을 끌어올린다.
실제 올해 2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디저트 매장인 ‘스위트 파크’를 선보인 신세계 서울 강남점은 오픈 뒤 5월까지 석 달간 누적 인원 350만명이 방문했다. 식품관 누적 매출은 전년 대비 160%, 백화점 전체 매출은 20% 증가했다. 백화점 식품관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백화점 식품관에는 트렌드 주도 업소나 전국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쌓아온 검증된 곳이 들어온다. 명확한 음식 콘셉트에 음식의 디스플레이가 SNS에 오를 만큼 인스타그래머블해야 한다. 하지만 유명 식당들도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1년이면 백화점 식품관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이유로 오프라인에서 명성이 있는 업소는 이미지와 희소성을 지키기 위해 백화점 입점을 꺼리기도 한다. 그래서 백화점은 아예 1~2개월 팝업 스토어로 유명 업소를 유치하기도 한다. 어떤 땐 이 기간이 1~2주다. 너무 짧다. 백화점의 식품관은 1년 단위 전쟁이 아니라 매일매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지는 백마고지다.
요즘 백화점 식품관의 트렌드는 극단적인 양극화다. 지난 2월 스위트 파크를 선보인 신세계는 6월에 서울 강남점에 프리미엄 미식 플랫폼인 ‘하우스 오브 신세계’를 열었다. 신세계는 5성급 호텔인 JW메리어트호텔과 연결된 3개 층에 7000여㎡ 규모로 유명 식당, 와인 전문관 등을 배치했다. 1932년부터 4대째 영업 중인 도쿄의 유명 장어덮밥 한국 1호점도 열었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이 집은 입소문이 나며 문전성시다.
반면 이랜드 킴스클럽은 지난 3월부터 3990원 균일가로 델리 상품을 선보였다. 3월부터 4월까지 킴스클럽 델리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3% 성장했다. 고물가와 실질소득 감소로 좀 더 저렴하면서 다양한 음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양극화 시대에 돼지고기가 주목받고 있다. 그간 돼지고기는 돈이 없어 소고기 대신 먹는 대체재쯤으로 취급받아왔다. 삼겹살을 제외하면 급식용이나 백반집 제육볶음 정도로 소비됐다. 그러나 불황에 스몰 럭셔리(작은 사치) 트렌드로 돼지고기의 부위별, 굽는 방법 등으로 세분화한 고급 돼지고기 요리가 등장했다. 소고기 오마카세(맡김 차림) 같은 1인당 10만원이 넘는 고가 요리에 견줘 저렴하지만 스몰 럭셔리에 걸맞은 방식이다. 여기에 연탄불고기·돼지갈비 등 전통적 메뉴도 인기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트렌드한 돼지고기 전문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침체와 고물가를 고려한다면 백화점 식품관에 매콤한 돼지고기 연탄불고기가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