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였던 아버지는 성찬식에 쓰려고 포도주를 직접 담그셨다. 요즘처럼 와인이 흔한 시절이 아니었지. 예배 때 어른들이 밀떡 한 조각과 포도주를 나누는 풍경은 신기했다. 언젠가 프랑스 촌락에서 한달살이를 하며 비로소 와인과 친해졌지. 이후 와인 산지를 돌면서 미각을 높이다가 급기야 ‘와인 여행’이란 포도주에 얽힌 노래만을 뽑은 선곡 음반도 발매했다.
광양에서 올라온 친구가 밥을 사겠대서 월산면 옆 동네, 프랑스식 가정요리집엘 갔다. 프랑스 총각이 우리 동네 처녀에 반하여 멀리도 장가를 왔는데, 부모님께 전수받은 요리로 밥집을 차려 손님이 쏠쏠. 양파수프가 현지 수준으로 맛나. 와인은 평범한 하우스 와인. 어떤 식사건 와인 한 잔이 곁에 놓이면 자리가 배나 훈훈해지는 법이다.
프랑스어 ‘샹브레’는 침실, 사적인 공간이란 말. 이게 와인 용어로도 쓰이는데 16~18도 와인 마시기에 적당한 ‘실내온도’를 뜻한다. 사람 관계도 온도가 맞아야 편안하지. 얼음골처럼 차가우면 금이 가고, 불가마처럼 뜨거우면 데게 돼. “집안 공기가 왜 이래?” 부부 둘이 맞춘 온도라도 담 너머 이웃들과도 공감할 수 있는 ‘샹브레’여야 평화롭다. 눈치코치 없이 멋대로 구는, 고집불통 안하무인 인생들을 구경하게 돼. 적당한 실내온도 샹브레의 정신을 새겼으면 바라. <어린왕자>를 보면 여섯 번째 별에 사는 지리학자 할아버지가 나온다. “술 취하면 물건이 둘로 보여. 지리학자는 거짓말하면 안 된다.” 할아버지는 술을 주의하라 타이르는 촌장님 같다. 하나가 둘로 보이는, 주정뱅이의 술자리엔 있어야 할 샹브레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