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마다 국회의원들 다른 것이야 진즉에 알았지만 지역마다 식당의 풍경도 미세하게 좀 다른 것 같다. 강남구 신사동에서 10여년을 삐댄 적이 있다. 점심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으니, 어쨌든 식당을 이용했다. 요즘은 대개 입식이지만, 그땐 엉덩이를 위한 방석도 준비된 좌식의 방이 많았다. 홀을 비롯해 웬만한 벽에는 큼지막한 액자가 걸렸는데, 일견 인상적인 게 수두룩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하나, “사나운 파도가 유능한 뱃사공을 만든다.” 주로 횟집, 설렁탕집 등 서너 군데서 본 것 같은데, 어쩐지 신사동을 떠나고 저 글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제약업에 투신한 뱃사공이 있다. 멸치만 하다가 고래로 성장한 그 친구는 유수의 회사를 일군 뒤 소원대로 지난해 은퇴한 바로 다음 날 고성에서 부산 오륙도까지의 해파랑길을 두 발로 직접 걸었다. 아직 메인 데가 많은 나는 주말마다 몇몇 구간을 같이 했다. 삼국유사의 신화가 물씬한 해변을 걷는데, 멀리서 분명 바다가 아닌데도 물고기의 비늘처럼 햇살이 반짝이고, 파도가 모여 있는 곳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방풍림 해송 아래 누가 일군 작은 밭이었다. 호젓한 오솔길이 발이 만든다면 엄숙한 밭은 손이 가꾼다. 해안선과 나란히 구불구불하게 휘어지고 돌아가며 물결처럼 고랑과 이랑이 손바닥의 지문처럼 정갈한 밭.
농업의 역사에서 이랑법은 한 획을 그을 만큼 대단한 발견이라고 한다. 거친 들을 밭으로 개간하고, 맨맨한 땅에 씨 뿌린다고 작물을 다 수확하는 건 아니다. 하긴 하겠지만 부뚜막의 흩어진 소금 같아서 소출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랑과 고랑은 저 밭에 파도를 끌어들인 것. 사나운 파도가 유능한 사공을 만들듯 파도 같은 밭두둑은 씨알 굵은 열매를 만든다, 고 해도 되지 않을까.
추석이 지나간다. 명절에만 보는 영화를 보고, 둥근 보름달을 보고, 한가위에만 먹는 음식들을 먹는다. 바다나 공중에서 오고, 산에서 온 여러 음식들. 논에서 온 것도, 밭에서 온 것도 있고, 생선은 바다에서 왔다. 이제 몇 번 남았는가, 나의 추석. 나물 반찬 옆 감자나 토란이나 고구마를 먹기 좋게 한입에 맞춘 것을 젓가락으로 집을 때, 거친 파도 아래 몸집을 키우며 돌아다니는 고래의 푸르른 등을 건드리는 기척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