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요즘 식당에 가보면 바닥에 앉던 자리가 없어지고 식탁과 의자로 바뀐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유를 물으면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서라 한다. 무릎을 자주 꿇고, 허리를 구부려가며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한때는 있었는데, 이제는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장면 둘. 가사 청소 노동자 매칭 플랫폼 기업에서 들은 얘기다. 이 시장은 서비스 이용 희망자는 넘치는데 일할 사람은 늘 모자라는 공급자 위주 시장이다. 이 때문에 비즈니스의 핵심은 50대 이하 여성 노동자들을 확보하는 것이다. 서비스 이용 조건에 ‘무릎 꿇는 손걸레질, 손빨래는 하지 않습니다’라고 명시하고, 분쟁이 생기면 회사가 적극 개입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달리 말하면, 이 시장을 이미 떠난 고령 노동자들은 오랜 세월 어떤 보호도 없이 궂은 일을 도맡아 해왔다는 의미다.
장면 셋.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20여년 전만 해도 시골에서 올라와 손주를 돌봐주는 어머니 덕에 맘 놓고 회사 다니던 맞벌이 부부들이 많았다. 육아뿐 아니라 살림도 거의 해주고, 주말이면 집에 내려가 다른 식구들 건사하고 일주일치 반찬까지 해놓고 다시 부리나케 올라와주는 어머니들이었다. 언젠가부터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싶더니 맞벌이 부부에게 육아란 재앙이라 할 만큼 어려운 일이 됐다. 출생률이 급전직하한 시기와 이 어머니들이 사라진 시기가 거의 맞물리는데, 이는 진작 떨어졌을 출생률을 이 어머니들이 한동안 떠받쳤다는 뜻이다.
이 장면들이 떠오른 것은, 필리핀 가사관리사에 대해 “임금이 너무 높다”는 여론과 함께 ‘생산성’ 운운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한국은행이 보고서에서 “돌봄 부문은 생산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은 여러 미디어에 반복 인용된다. 이는 얼핏 그럴 듯하지만 따져보면 틀린 내용이다. 노동생산성이란 노동의 부가가치를 노동시간으로 나눈 것일 뿐이다. 돌봄 등 서비스 노동의 생산성이 낮은 것은 시간당 임금이 너무 낮아서이지 정말 제조업 등 다른 노동보다 가치가 낮은지 측정해서 산출한 결과가 아니다. 관행적으로 임금이 낮아서 생산성 지표가 낮은 것을 두고 “생산성이 낮으니 임금을 낮춰 주자”고 하는 모순적 주장이 반복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플랫]가사노동자 법적 보호 강화하는 일본, 최저임금도 못주겠다는 한국
📌[플랫]“최저임금 받는 통·번역사, 결혼이주여성이면 돈 적게 줘도 되나요?”
다만 이렇게 주장할 수 있겠다. 임금이 낮아도 유지된 것 자체가 생산성이 낮다는 증거 아니냐고. 이런 주장 앞에 내밀고 싶은 것이 앞의 세 장면이다. 이 노동들은 유지될 만해서 유지된 게 아니다. 진작 사라질 것을 한 세대의 여성들이 지탱해준 것이다. 뼈마디가 아프다 못해 뒤틀리고 변형되어도 그저 참고, 가족을 위해 쥐꼬리만 한 돈에도 웃으며 일했던 그들이 떠받친 것이다. 그들이 거의 여든에 가까워서야 일을 놓았음에도, 이들을 대신할 사람도 제도도 준비하지 않고 그저 당연하게 여겨온 결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이제는 그렇게 일할 사람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외국에서 데려와도 당연히 똑같을 수 없다. 세상은 바뀌었고, 그런 노동은 시켜서도 안 된다. 현실이 이렇게 명백한데도 부정하는 사람들, 여전히 ‘시골 우리 어머니’만 찾는 꼴인 당신들이야말로 어머니의 가치를 가장 무시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