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전략기획부, 어떻게 만들까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인구전략기획부, 어떻게 만들까

사흘 전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에 관한 토론회에 다녀왔다. 정부는 인구 감소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전담부처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부처를 새로 만들려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려면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데, 분위기 띄우는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가 토론회다. 이 칼럼은 정부 청탁 없이 순전히 내 의지로 쓰는 것이지만, 어쨌든 칼럼 쓰는 것도 그중 하나이긴 하다.

토론의 첫 번째 의제는 과연 필요한가였다. 기존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라는 것이 있고,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 등에도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들이 있는데, 왜 또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가이다. 이런 경우 가장 안전한 (그리고 멋져 보이는) 토론은, 약간은 냉소적인 말투로 ‘중요한 것은 조직 신설이 아니라 하겠다는 의지’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까지 담당 조직과 정책이 없어서 이 지경 되었는가, 조직 새로 만들어도 잘하리라는 보장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제대로 정책을 펼치려 하느냐이다’처럼 말하는 것이다.

당연히 저출생 문제는 정부가 밀어붙인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혼인과 출산에 관한 개인 선택이 관건으로, 사회 전반의 여건·문화가 중요하다. 그리고 토목건설 사업과는 달라서, 설사 정책이 효과를 보더라도 출생률 반등은 서서히 진행된다. 그러니 담당부처를 새로 만들어도 수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는 없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기존대로 내버려둬야 하느냐이다.

‘위원회’ 한계 넘을 부처는 필요

필요성 의제에 대한 제대로 된 토론은 ‘기존 조직 구조를 유지할 때’와 ‘새롭게 만들었을 때’ 중 그나마 어느 쪽이 문제 해결에 더 낫겠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조직의 목적은 주어진 임무를 달성하는 것이다. 외교부는 외교 업무에 전념하고 국토교통부는 건설과 교통 업무에 전념한다. 인구 감소 대응을 임무로 하는 조직이 만들어지면 그 조직은 거기에 전념한다. 기존의 보건복지부나 여성가족부 임무에는 여러 가지가 섞여 있고 인구 감소 대응 자체는 아니라서 집중의 강도가 전혀 다르다. 물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인구 감소 대응이 주임무이다. 그러나 자문기구 성격의 위원회라는 한계로 인해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전담부처를 만든다고 얼마나 달라질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적어도 현행보다는 나을 것 같다. 그렇다면 ‘필요한가’에 대한 내 답변은 ‘필요하다’이다.

두 번째 의제는 어떤 업무를 담당하느냐였다. 정부가 제시한 업무는 기획·조정·평가 및 관련 예산 심의 참여 정도이다. 고유 사업, 가령 일·가정 양립 지원이나 이민 등 인구 감소 대응 사업은 없다. 고유 사업이 없는 데는 이미 담당부처가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다. 그런데 고유 사업이 없으면 힘이 없으니, 인구 감소 대응 관련 주요 사업은 인구전략기획부로 가져오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정부조직은 원·부·처·청으로 구성된다. ‘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감사원과 국정원이 이에 해당하는데, 일반 부처보다 힘이 세다. 감사원과 국정원 업무는 특성상 부처가 맡기 어려우니 원이 합당하다. 과거 개발연대의 ‘경제기획원’도 여기에 해당하는데 조금 이례적이긴 했다. ‘경제기획’이라는 것 자체가 시장경제체제에서는 특이한 것이지만, 어쨌든 당시엔 정부 주도 경제개발이 지상 목표였고, 그래서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 ‘원’으로 설치했다.

한편 외교, 교육, 환경처럼 특정한 사업 분야를 담당하면 ‘부’로 설치한다. 정부 부처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처’는 주로 정부조직 내부 업무면서 부처 일반이 관련된 일을 처리한다. 정부 내 인사업무를 담당하는 인사혁신처라든가, 과거 예산 편성을 주관했던 기획예산처가 여기에 해당한다. ‘청’은 국세청과 노동청처럼 직접 사업 집행을 담당하는데, 대개 ‘부’의 소속기관으로 설치한다.

예산 편성권과 연구기관이 핵심

정부조직 원리를 따를 경우, 그리고 정부안대로 업무를 기획·조정·평가 등에 한정하면 ‘처’가 되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부’로 하겠다는 것은 추후 고유 사업을 가져오려는 심산인 듯하다. 인구 관련 고유 사업이라면 국민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기업을 규제하는 게 될 텐데, 이런 권한을 지니면 정부 내 기획·조정·평가 업무만 할 때보다 훨씬 목에 힘줄 수 있다. 고유 사업 담당 여부는 잘 판단이 안 선다. 저출생 관련 사업을 인구전담부처가 담당하면 좀 더 효과적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저출생 관련 사업은 매우 광범위한데, 그중 몇개만 가져오면 거기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소홀하게 될 것 같아 걱정이다.

고유 사업을 갖느냐 마느냐와는 별개로, 인구 정책을 기획하고, 관련부처 간에 조정하며, 평가해 환류하는 업무를 제대로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꼭 필요하다. 하나는 예산권이다. 돈줄을 쥐어야 기획이든 조정이든 평가든 수용하기 때문이다. 예산 편성은 기획재정부 권한이다. 하지만 연구개발 예산은 뭉텅이로 떼어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담당한다. 마찬가지로 인구 관련 예산은 인구전략기획부가 주도해야 한다. 국가재정전략회의라는 게 있다. 매년 봄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모여 국가재정 운용의 큰 틀을 정하는 자리다. 다분히 형식화되었지만 제대로 운영되면 의미가 크다. 이를 실질화하고 여기서 중지를 모아 인구 예산 몫을 정한 후, 구체적인 편성은 인구전략기획부가 주도권을 갖게 하면 효과적이겠다.

또 하나는 기획·조정·평가를 지원할 연구기관이다. 과거 경제기획원이 경제개발을 강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데는 KDI라는 걸출한 연구기관의 지원도 큰 몫을 했다. 과거의 KDI에 맞먹는 인구문제 연구기관이 필요하다. 아예 KDI가 담당하면 좋겠지만, 아니라도 꼭 필요하다.

신설되는 인구전담부처가 과거 경제기획원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졌으면 한다. 과거 경제개발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면 이제는 인구 대응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었다. 사상 유례없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상 유례없는 대책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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