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체코 방문은 정부 스스로 인정하듯 체코 신규 원전 사업의 우선협상자로 한전이 선정된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된 듯하다. 하지만 야권에서 이 원전 수주의 경제성이 의심된다며 문제를 제기하자 대통령은 여야가 따로 없어야 할 국가적 성과에 대해 국경선을 넘는 ‘정쟁’을 벌인다며 발끈했다.
그렇다면 정쟁은 나쁜 것인가? 정책의 옳고 그름을 서로 따져 묻는 논쟁과 국민들의 동의를 위한 경쟁이야말로 정치의 자연스러운 방식이 아닌가? 다툼 없는 정치가 과연 가능하기나 할 것인가? 아마도 대통령이 비난한 정쟁이란 실내용에 대한 상세하고 성실한 주고받음 없이 양편으로 갈려서 자신의 주장만을 내놓으며 상대편을 악마화하는 ‘과도한 정쟁’ 양상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과도한 정쟁은 양적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한국 정부와 국회에서 원전 등 에너지 정책이 충분한 빈도와 분량으로 다루어져 왔는지를 돌아본다면, 부동산이나 증시 대책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질적으로도 에너지 정책에 대해 대통령실과 국회의원들이 피력하는 식견과 발언은 함량 미달일 경우가 많다. 다수의 정치인들은 에너지 정책은 매우 기술적이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수반하는 탓에 연구원과 기업의 전문가들이 큰 방향과 세목을 만들어 가져오면 그것을 검토하고 첨삭하는 정도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널뛰기하는 에너지 믹스, 계속 실패하는 온실가스 감축, 정부를 믿지 않고 스스로 RE100에 대처하는 기업들, 살고 있는 동네에 갑자기 발전과 송전 시설이 들어선다는 통보를 받는 지역민들의 모습은 그렇게 빚어진 결과들이다. 근시안적이고 전문성 없는 행정부와 국회, 기득권에 안주하는 관성적인 기술 관료, 희생당하며 저항하는 지역 주민들 사이에 거대한 공백이 존재한다. 그것은 제도 정치의 빈 구멍이다. 지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도 시민 참여 민주주의의 좋은 사례라기보다는, 오히려 제도 정치의 책임 회피가 만들어낸 이벤트였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정책에서 제대로 정쟁해야 할 문제들은 차고 넘친다. 방사능 괴담, 태양광 괴담을 넘어 책임 정치를 펼쳐야 할 많은 이슈들이 있다.
지난 6월21일 김성환 의원 등이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수립 또는 변경 시 국회 동의 절차를 의무화하는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 발의했다. 예산안보다 결코 덜 중요하지 않은 전력계획이 지금까지는 형식적인 공청회 이후 국회에 보고만 하면 되었다. 이 때문에 국회 상임위의 동의를 구하도록 하자는 것은 사실 당연하며 반드시 입법화되어야 할 제안이다. 하지만 상임위 동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계기로 국회에서 심도 있고 책임 있는 에너지 정책 토론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전 사회적인 논의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11차 전기본 수립을 앞두고 특히 원전 비중과 수명연장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에너지 정책은 과소한 정쟁이 문제였다. 국회가 입법과 전기본 검토를 통한 책임 정치에 나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