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유독 조바심이 났다. 폭염일수가 지속될수록 지겹게 떠나지 않는 여름 끝자락이 징글징글했다. 올여름은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죽을 만큼 더웠다. 더위를 못 견디고 노동자가 죽는 여름을 원망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미국의 공학자 윌리스 캐리어가 에어컨을 발명한 것이 1915년의 일이다. 에어컨이 처음 설치되던 곳은 가정집이 아니라 산업현장이었다. 100년이 훨씬 지나고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에어컨은 인권이다’를 외치며, 작업장에 에어컨 설치를 요구하는 시위와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즈음부터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폭염 시기 달궈진 물류현장과 혹한기 냉동창고보다 더 추운 물류현장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여름이 되면 박스를 옮기다, 배송을 하다 소리 없이 사망하는 노동자들이 늘었다. 겨울이 되자 알량한 핫팩 두 개에 의지하다 새벽녘 핫팩의 온기가 식을 즈음 내가 흘린 땀이 순식간에 내 몸을 얼게 만들어 돌연사로 생을 마감하는 노동자가 나왔다.
여름의 끝,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9월26일 국회는 산업안전보건법 제39조를 개정해, 사업주가 폭염과 한파에 따른 노동자들의 건강장해를 예방해야 할 의무를 부과했다.
그러나 올해 5월에서 8월 사이, 6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쿠팡과 폭염 속에서 쓰러져간 노동자들의 죽음 앞에 국회가 내놓은 산안법 개정은 한참 모자란다. 핵심적으로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 조항이 삭제됐다.
더위와 추위에 가장 심각하게 노출되는 노동은 건설, 배달, 방문노동처럼 사업주의 일괄적 예방조치가 어려운 불특정한 거리와 장소에서 수행되는 노동이다. ‘물·휴식·그늘’처럼 폭염을 대비하는 기본적인 조치가 잘 이뤄지지 않아, 온열질환을 방치해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50인 미만 사업장이 가장 많다. 2023년 KBS가 근로복지공단 산업재해경위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최근 온열 산재 117건 중 70건, 이 중 사망자 19명 중 15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자본이 취약한 사업장에서 사업주의 높은 안전보건 의식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업주의 안전 의식은 법과 행정의 규제와 노동자의 집단적인 힘에 의한 압력이 있을 때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100인 미만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1.3%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비정형의 노동을 수행하는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사업주의 ‘의무’뿐 아니라 위험에 대해 스스로와 동료의 위험을 함께 막을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절실하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기존의 산안법상 작업중지권이 이미 보장되고 있다는 이유로, 관련 신설법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그러니 묻겠다. 기존의 작업중지권이 잘 잘동되었다면 폭염이나 한파가 몰아치는 위험 앞에 노동자들은 왜 작업중지권을 사용하지 못했을까? 고용노동부 주장대로, ‘폭염’이나 ‘한파’를 산안법에 기입하지 않더라도 노동자가 위험 앞에 작업중지권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파와 폭염을 굳이 법에 기입한 까닭은 법의 미비로 인해 고용노동부가 행정력을 행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무기력한 행정실패에 대한 법적 강제로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