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부가 연금개혁안을 내놓았지만 이것이 연금개혁을 진전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할지는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정부안은 지난 국회에서 진행한 시민공론화 및 여야 간 연금개혁 협상 범위를 벗어나 있을뿐더러, 자동조정장치와 세대 간 차등보험료율 인상과 같은 방안들은 다소 의아한 내용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안인 보험료율 13% 및 소득대체율 42%와 자동조정장치의 조합은 시민 공론화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은 보험료 13% 및 소득대체율 50% 인상안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나아가 국민연금을 사실상 삭감하는 방안이다.
정부가 제시한 자동조정장치는 국민연금의 물가연동률에 인구 요소를 반영하여 실질 급여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는 자동으로 작동하므로 연금액을 깎을 때 정치적 논란을 피할 수 있는데 그만큼 국민연금이 가져야 할 안정적 보장기능은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지금 국민연금이 많은 수급자에게 생계급여만큼도 보장하지 못하는 데에다 매해 계속되는 연금 삭감으로 청년세대의 연금액은 더 낮아질 수 있는 상황에서 정부안은 미래 고령노인의 삶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
2007년 국민연금 삭감으로 늦게 태어날수록 연금수준이 더 낮아지는 현 상황을 방치하면서 정부가 세대 간 형평성의 핵심 수단으로 내세운 게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출생연도에 따라 달리하는 것이다. 후세대의 국민연금 하락, 그로 인한 세대 간 연대 훼손을 정면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크게 떨어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피하다 보니 정부는 소득과 같은 부담능력과 무관하게 연금보험료를 차등부과하는 방안까지 내놓았다. 이는 부담능력을 고려한다는 사회보험 재정원칙과 세대 간 연대라는 공적연금 운영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필요한 분열을 야기한다.
구체적 설계도 비합리적이다. 출생연도 1년 차이로 1975년생과 1976년생, 그리고 1985년생과 1986년생, 1995년생과 1996년생은 상당히 긴 기간 동안 소득이 같아도 혹은 역전된 상태에서도 보험료 차이를 감수해야 한다. 그 기본 구상과 구체적 작동의 결함, 40, 50대에 대한 고용 페널티라는 부정적 영향까지 많은 문제점에도 정부 공식 연금개혁안에서 이를 충분히 고민한 흔적은 없다.
집권 초부터 정부는 연금개혁이 매우 시급하다고 하였다. 정작 정부 연금개혁안은 재정계산위원회나 국회 연금개혁특위 논의, 시민공론조사와 동떨어져 있어 논의 구도를 흐트러뜨린다. 한국의 연금개혁에는 노후소득보장과 재정의 균형 있는 접근, 그리고 이에 기반한 세대 간 연대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 지난 시민공론화의 교훈이다. 그러나 정부안은 재정론에 기울어져 있다.
국민연금에는 출생연도별로 보험료를 달리하는 것보다 세대 간 연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통한 적정보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재정 면에서는 미래 연금 수입을 늘리는 것에 관한 국가책임성 강화도 중요하다. 국민에게 보험료 인상을 요구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국가의 재정책임 강화 방안도 들어 있어야 한다. 국민연금기금 일부를 공공주거, 고용 창출, 공공사회서비스 인프라에 투자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통째로 바꿔 청년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안에서는 이 모든 것이 간과되었다. 국민연금의 사회적·재정적 지속성 기반을 변화시키기 위한 국가의 리더십은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면 가장 아쉬운 것은 함께 미래를 만드는 리더십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빠져 있는 이 모든 것들을 회복하는 것이 국회의 개혁 논의에 필수적일 것 같다. 연금개혁은 축소지향적인 미래가 아니라 균형 잡힌 진짜 미래를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