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노동의 역사를 직시하는 유일한 장소이기에 남겨야만 한다.”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달 28일, 홋카이도(北海道) 북단의 조그마한 마을인 슈마리나이(朱掬內)에 강제노동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에 세워진 일본 최초의 박물관이다. 새롭게 문을 연 슈마리나이 강제노동박물관의 이야기는 약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는 고켄지(光顯寺)라는 사찰이 있었다. 신자가 줄어 문을 닫은 사찰의 본당 뒤편에서 이름, 사망 일자 등이 적혀 있는 위패 80여개가 발견된 것은 1976년의 일이다. 이 위패 중에는 조선인의 이름도 여러 개 있었다. 당시 슈마리나이에 건설 중이던 댐과 철도 공사에 3000명이 넘는 조선인이 강제동원되었다. 위패를 처음으로 발견한 도노히라 요시히코 주지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소라치민중사강좌 회원들)은 지역 주민의 증언을 토대로 위패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공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조선인 50여명의 시신이 공사 현장 근처에 있던 고켄지로 옮겨진 후 매장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의 위패가 발견된 것이다.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80년부터 3년간, 4차례에 걸친 발굴을 통해 희생자 유골 16구를 찾아냈고, 1995년에는 희생자들의 유품을 전시하는 사사노보효 전시관을 만들었다. 이곳은 한·일 학생들의 교류의 장으로도 활용되었다. 시민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만들어낸 화해와 평화의 공간이다. 안타깝게도 지어진 지 90년이 넘은 목조 건물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2020년 1월 무너졌다. 하지만 기억하려는 사람들은 재건을 위해 움직였다. 건축을 위한 모금 활동을 시작했고, 코로나 팬데믹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모금을 위한 전국 순회 전시회를 진행했다. 그 결과 국내외에서 6600만엔이 모금되었다. 시민의 힘만으로 슈마리나이 강제노동박물관은 재건되었다.
“식민지 지배가 없었다면 우키시마호도 없었을 것이다. 명단을 신속히 공개해야 한다.” 기억하려는 사람은 또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에서 열린 우키시마호 승선자 유족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일본인 기자 후세 유진이 바로 그 사람이다. 우키시마호는 해방 직후 조선인 노동자 등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하던 중 폭발 사고로 침몰했다. 승선자 명부가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던 일본 정부는 지난달 한국 정부에 승선자 명단을 내놓았다. 비극이 일어난 지 79년 만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한국 정부의 노력도, 일본 정부의 노력도 아니다. 후세 기자가 승선자 명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내고, 정보공개를 통해 19건의 명단을 확보해 이를 세상에 처음 알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 정부가 받은 명부가 바로 이 19건에 해당된다. 후세 기자는 앞으로도 600여건에 이르는 관련 자료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계속할 계획이다.
과거를 잊으려는 사람도 있다. 군마현의 강제동원 희생자 위령비가 철거되고,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된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노동은 숨기려 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를 방관하고 있다.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눈에 과거를 잊으려는 국가권력은 어떻게 비칠까? 한·일 정부는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