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깐날엔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으로 인기를 끈 가수들이 꽤 있었다. 드라마 <작은 연인들>도 그랬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애창곡 가운데 하나였다지.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 만남도 헤어짐도 아픔이었지…” 노래를 부른 가수 김세화는 여고생 때 디제이 이종환 아저씨가 알아보고 즉석 데뷔를 시켰단다. 본명은 김홍진, 통기타 가수 김세환을 추앙한 나머지, 이름을 김세화로 바꿨다지. 영화 <겨울 여자>에서도 ‘눈물로 쓴 편지’를 구슬프게 불렀다. 심장을 졸게 하는 애처로운 노래를 즐겨 부른 가수다. 그중에 ‘야생화’란 노래가 있는데, 외국곡에다 가사를 입혔다. “난 한적한 들에 핀 꽃, 밤이슬을 머금었네. 나를 돌보는 사람 없지마는 나 웃으며 피었다네. 누굴 위해 피어나서 누굴 위해 지는 걸까. 가을바람이 불면 져야 해도 나는 웃는 야생화…”
서울에서 전시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산길에 꽃무릇이 와륵 피어 반긴다. 구겨진 빵봉지 속 남은 조각은 강아지들 주고, 먹다 남긴 낙원떡집의 떡보따리를 풀어 냉동칸에 넣었다. 음반 한 장과 우전 녹차 한 잔으로 심장에 맺힌 땀을 씻고, 바깥마당과 산길로 접어들며 꽃구경. 오가는 이 드문 동네라 나 말고는 특별히 보아주는 이 없겠다만, 애썼다~ 수고했다~ 꽃들아!
나는 공터란 말을 되게 좋아한다. 채워지지 않은, 휑하니 빈 그곳에 부는 바람이 좋아. 공터에 찾아온 가을이 좋아라. 공터나 마찬가지 한적하고 외딴 마을에 뜬 별들, 산길에 핀 붉은 꽃무릇. 좋아하는 곳에 살아서 좋고, 거기다가 좋은 일이 많이 생기면 더 좋고. 꼬이고 답답한 일도 좋게좋게 풀어야지. 야생화 곁에서 야생인처럼 살며 나와 당신, 야물어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