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의 문해력에 대한 얘기가 최근 들어 사회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나중에 알리겠다”는 의미의 ‘추후(追後) 공고(公告)’를 ‘추후공업고등학교’의 준말로 이해했다거나 “매우 깊고 간절하게 사과드린다”는 뜻의 ‘심심(甚深)한 사과’를 “지루하고 재미없게 사과한다”로 받아들였다는 말이 그 사례로 떠돌기도 한다.
그러면서 문해력이 부족한 원인 중 하나로 ‘한자 교육 미흡’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가 평소 쓰는 말 중 6할 이상이 한자말이므로, 그런 주장은 꽤 설득력 있다. 아울러 한자말 중엔 한글 표기가 같지만 의미가 다른 말이 많아 한자 공부가 부족하면 말하는 사람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해력 문제의 해결 방법을 읽는 사람에게서만 찾는 것은 옳지 않다. 한 예로, 지금 우리 국민 중 기미년의 독립선언문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원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이는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지금은 편하게 ‘우리는 지금’으로 쓰는 표현이 당시에는 ‘吾等(오등)은 玆(자)에’로 어렵게 쓰인 탓이다.
이처럼 문해력 문제는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으로 인해 생기기도 한다. 요즘 시대에 맞게 쉽고 편한 말을 쓰지 않고 어려운 한자말을 오남용하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얘기다. ‘추후 공고’를 ‘추후 알림’ 또는 ‘나중에 알림’으로, ‘심심한 사과’를 ‘깊은 사과’로 표현했다면 애초에 문해력 논란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읽기 바라는 글이라면 누군가를 배려한 언어로 쓰여야 하는데, 그 누군가들은 연령·학업 정도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을 모두 이해시키는 데 가장 쓸모 있는 것이 ‘쉽고 편한 말’이다. 또 한자말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대다수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를 고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려운 외래어나 한자말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결국 문해력 부족의 문제는 ‘한자 교육’보다 ‘쉽고 편한 우리말을 바르게 쓰려는 사회적 노력’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10월9일은 578돌을 맞는 한글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