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15대 임금인 광해군은 임진왜란 때 세자로서 분조(둘로 나뉜 조정)를 이끌며 왜적과 싸웠다. 즉위 후에는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 노선을 취해 백성이 사지로 내몰리는 일을 막았다. 전후 복구에 힘쓰고, 대동법 등 합리적인 정책도 펼쳤다. 성군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어머니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등 비인간적 악행도 저질렀다. 잦은 옥사(獄事)로 많은 신하의 목숨을 앗은 폭군이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그릇된 풍수론에 사로잡혀 국가 재정을 거덜내고 백성들의 삶을 곤궁하게 만들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백성들에게 버림받고 역사에 부끄러운 이름으로 기록됐다.
광해군은 즉위 직후 전란 때 소실된 종묘를 다시 짓고, 아버지 선조가 시작한 창덕궁 중건도 재개했다. 전란으로 궁궐들이 불에 타 없어졌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러나 광해군은 해도 해도 너무했다. 경덕궁, 인경궁, 자수궁 등 궁궐을 짓고 또 지었다. 왕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요사스러운 풍수론에 현혹된 탓이다.
당시 이런 광해군에게 아첨하는 이들도 많았다. 누구는 건축자재를 바치고, 누구는 자기 땅을 내놓았다. 광해군은 이들에게 관직을 주었다. <연려실기술>에 “궁궐을 짓는 일에 재물을 바치는 일로 관직을 받은 자들을 비꼬아 ‘오행당상(五行堂上)’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오행’은 우주만물을 이루는 5가지 원소인 물·불·쇠·나무·흙이며, ‘당상’은 정삼품 이상의 벼슬이다. 지금 권력자의 힘을 빌려 격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은 ‘낙하산 인사’의 장본인들이 현대판 오행당상이다.
한편 “일이 확실해 조금도 틀림이 없다”의 의미로 쓰이는 ‘따 놓은 당상’이 오행당상에서 유래했다. 20여년 전의 국어사전들에는 대부분 ‘떼어 놓은 당상’만 올라 있었으나 지금은 둘 다 맞는 표현으로 본다. 그러나 이를 ‘떼어 논 당상’과 ‘따 논 당상’으로 써서는 안 된다. ‘높이 쌓은 탑’을 ‘높이 싼 탑’으로 쓸 수 없듯이 ‘놓은’이 ‘논’으로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엄민용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