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그날’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면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면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몰락은 그날 분명해졌다.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아닌 ‘한동훈’이 이긴 효과는 특별했다. 재·보선 이튿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김건희 3대 요구’를 공개적으로 던졌다. 보수의 애정 대상이 바뀌었음은 분명했다.

윤 대통령은 그날 관변단체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를 찾아 “어려움이 있지만 4대 개혁을 완수할 것”이라 했다. 동문서답이었다. 김 여사 처분을 묻는데, 답은 엉뚱한 ‘개혁’이었다. 재·보선 민심을 똑바로 보며 제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을 힘도 이젠 없었다. ‘여사 문제’라는 왕조시대에나 있을 법한 ‘비행(非行)’을 제대로 처리 못한 당연한 대가였다.

같은 날 검찰은 4년 반을 끈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을 땡처리하듯 불기소했다. 이례적인 4시간 회견 내내 김 여사 ‘변호인’처럼 굴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렸고, 검사 출신 어느 차관급 인사의 과거 발언처럼 “모래 구덩이에 머리를 박은 타조”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검찰의 불기소는 한 대표의 퇴로도 끊어버렸다. 그가 ‘민심의 파도’에 올라타 “의혹 규명”을 요구한 이상 남은 것은 특검 외길이다. 제대로 한다면 금정의 신뢰는 수도권으로 북상하며 제갈량의 동남풍에 버금가는 ‘한동훈의 동남풍’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윤·한은 지난 21일 그런 외나무다리에서 마주했다. 윤 대통령은 여당 대표를 25분 바람맞히더니, 모든 요구를 따박따박 퇴짜놓았다. 말미에 과거 아랫사람 한동훈을 대하듯 잘 포장한 ‘언론 브리핑’도 당부했다. 한 대표는 쌩하니 집으로 가버렸다. 영화 속 대사 “내가 니 시다바리가”를 행동으로 보였다. 윤·한의 순간은 권력자의 ‘자멸’로 결판났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은 ‘그날’ 시작되었다. 닷새 뒤면 2년이 되는 그날 밤 이태원에서였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의 무도함에서 모든 것은 비롯되었다. 대통령은 ‘직접적·법적 책임’ 운운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수사를 받아야 할 경찰은 스스로를 수사했고, 참사 원인을 ‘군중’에게 돌렸다. “인력 배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발뺌하던 안전 주무 장관은 지금도 건재하다. ‘참사’는 ‘사고’로, ‘희생자’는 ‘사망자’로, 정부는 축소 모의에 급급했다. 대통령은 거부권으로 이태원참사특별조사위원회를 막다가 총선 참패 후에야 동의했다. 폭력과도 같은 정권의 무책임은 국민들 마음에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날은 ‘특이점’이었다. 권력의 책임이 무책임으로 돌변하고, 민심이 불신에서 분노로 넘어가는 특이점이었다. 정권엔 추락의 시간이 있다. 세월호의 강퍅한 처리가 박근혜 정권 몰락의 시작이고, ‘조국 파동’의 오만이 문재인 정권의 특이점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대통령은 상처를 똑바로 응시할 용기가 없었다. 자신의 상처였기 때문이다.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법적 책임’을 허울의 방패 삼아 우격다짐으로 버티는 정권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었다. “정치 참 모질게 한다”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의 공감 대상은 국민들 눈에 김 여사뿐이었다. 걸핏하면 격노하는 언행은 ‘자기 연민’으로 비쳤다.

‘책임 망각과 공감 부재.’ 윤석열 정부의 ‘무능·무책임·무도’한 우행(愚行)들은 그 다양한 얼굴이었다. 이태원 참사 1년 뒤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에선 원인 제공자를 재공천하는 만용으로 심판당했다. 4월 총선 땐 ‘런종섭’ 등 지지층조차 혀를 찬 무능으로 자폭했다. 명품백 수수, 주가조작, 비선 논란 등 김 여사는 내내 민심 눈 밖에 있었지만 사리분별 못하고 화근을 키웠다. 모두 차근차근 자멸을 향해 가는 길의 정거장들로 보였다. 단 한번이라도 멈췄다면 사정은 달랐을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정치학 연구 대상이 될 만하다. 민주적으로 선 정부가 임기 반도 안 돼 어떻게 이처럼 몰락할 수 있는가. 연구는 많은 교훈을 한국 정치에 남길 것이다. 민주주의가 늘 최선의 정부를 만들지는 못해도, 최선의 정부를 지향하도록 강제할 수는 있다. 시민의 통제와 권한 행사가 본질이기 때문이다. 민심과 멀어지고 민의를 무시해도, 막무가내 버틸 수 있다면 결함 있는 민주주의다.

나쁜 것은 늘 쉽게 기본값이 된다. 윤석열 정부 같은 ‘무도·무모’한 정권이 다시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윤석열 정권 몰락의 다른 역사적 의미는 한국 정치와 민심에 묻는 것일 수 있다. 정치적 책임과 운명(임기)이 일치하지 않는 제도를 계속 끌고 갈 것인가. 그래서 또 다른 윤석열 정권을 만나는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결함 있는 제도가 고쳐진다면, 새 역사의 시작 또한 ‘그날’이 될 것이다.

김광호 논설위원

김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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