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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0
  • 여성할당제, 형식 아닌 ‘성평등 구조 재편’으로 [플랫]
    여성할당제, 형식 아닌 ‘성평등 구조 재편’으로 [플랫]

    개인적인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초등입시반’ 같은 아동학대 수준의 경쟁교육이 사라지고, 가난한 노인이 고립된 채 살다가 6개월 만에 발견되는 일이 없으며, 외모나 성 정체성 때문에 차별받거나 놀림거리가 되지 않고, 노동자가 혼자 일하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몸이 조각나는 일이 더는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정권이 성공했으면 좋겠다.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갸우뚱한 순간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유임이었다. 정부는 그 이유를 “진영에 상관없이 탕평인사를 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설명했지만, 나는 이 결정이 ‘여성 할당을 형식적으로 채우되 비중 낮은 부처에 배치하는’ 오래된 관행의 반복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여성이 동시에 홀대받는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개인적 감상일 수도 있다.의구심이 불쾌감으로 바뀐 계기는 강선우와 이진숙 두 장관 후보자의 지명이었다...

    2025.07.18 10:33

  • [세상 읽기]위기 극복의 플랫폼, 국회 사회적 대화
    [세상 읽기]위기 극복의 플랫폼, 국회 사회적 대화

    새 정부가 출범하고 사회적 대화에 관심이 쏠린다. 대선 공약 중 논의해야 할 쟁점이 많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부터 주 4일제와 같은 담론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의 조정이 필요한 의제들이다. 그 밖에도 국민적 기대에 부응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디지털 전환, 기후위기, 인구구조, 지역 격차, 사회 양극화 문제 등이다. 최근 대통령과 국무총리도 사회적 대화를 통한 접근과 활성화 의지를 표명했다. 사회적 대화는 전통적인 협의구조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여기저기 사회적 대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특히 윤석열 정부는 노동조합 탄압과 노동개악을 추진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했기에 비판을 받았다. 1998년 경제위기 이후 노사정 3자가 참여한 사회적 대화기구가 출범한 이래 평가는 상이하다. 지난 30년 동안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도출한 노사정 합의문은 105개였고 권고나 건의문은 64개였다. 경제위기 극복과 사회안전망 및 산업안...

    2025.07.17 21:05

  • [시론]‘어쩌면 해피엔딩’이 안긴 숙제
    [시론]‘어쩌면 해피엔딩’이 안긴 숙제

    방학 기간이라 조용해야 할 대학 캠퍼스가 서머스쿨에 온 전 세계 젊은 학생들로 북적거린다. 이들이 캠퍼스를 누비며 외국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외국 대학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무엇이 이들을 한국에 오게 한 것일까. 대체로, 한국이 너무나 매력적이라는 것이 요인이다. 지난 한 달 사이 넷플릭스 글로벌 시리즈 부문과 영화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오징어 게임> 시즌 3와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모두 한국 콘텐츠이니 그럴 만도 하다.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제78회 토니상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 상을 휩쓸었다. 우리와 상관이 없는 줄 알았던 올림픽 수영, 피겨·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 박태환·김연아·이상화가 금메달을 땄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영화나 뮤지컬은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보기도 한다. 그런데 뮤지컬은 현지에 가서 오리지널 팀 공연을 보려는 유인이 강하다는 점에 차이...

    2025.07.17 21:04

  • [에디터의 창]실용 인사도 공정하고 상식에 맞아야 한다
    [에디터의 창]실용 인사도 공정하고 상식에 맞아야 한다

    “이 직업을 선택한 이후, 가장 자괴감이 든다. 부끄럽기도 하다. 후배들에게 그토록 강조했던 신념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민주당보좌진협의회 회장을 지낸 한 여당 인사가 최근 SNS에 올린 글이다. 보좌진에 대한 갑질 등이 드러난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침묵해야 하는 처지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민보협 역대 회장단은 결국 강 후보자의 사과와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보좌진에게 변기 수리, 쓰레기 분리수거 등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실을 부인하다가 SNS 메시지가 공개되자 뒤늦게 사과하며 거짓 해명 비판까지 더해졌다. ‘사회적 약자 권익 보장’을 위한 적임자라는 대통령실의 지명 이유는 명분을 잃었다.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자녀 불법 조기유학이 확인됐다. 이 후보자는 두 딸을 미국 버지니아주의 기숙형 사립학교에 유학시키며 매년 1억원 상당의 학비를 지출했다. 이 과정에서 초등학생...

    2025.07.17 20:59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밝은 방, 퇴이, 신비복숭아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밝은 방, 퇴이, 신비복숭아

    봄꽃 눈뜰 무렵 사진 하나를 받았다. 무릇 사진에는 인물이나 풍경이 서로 나오려고 기를 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휑한 사진이었다. 사진이란 피사체까지 닿았다가 튕겨 나온 빛들의 집합이다. 빛을 물줄기처럼 조절할 수 있다면 이 세계의 표면적은 얼마나 늘어날까. 너와 나 사이, 그 어떤 섬 하나 있을지도 모를 일. 애석타, 카메라는 그걸 포착하지 못한다.텅 빈 방을 보여주는 사진. 모처럼 벽과 바닥이 우쭐한 방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없는 듯 있었던 형광등과 유리창이 그 큰 눈을 껌뻑거리는 게 이제야 보였다. 밝은 방. 품 안의 거울처럼 나는 종종 사진을 꺼내보았다.그 사진은 가르치는 업에 진심이던 내 일생의 친구가 정년을 맞이하며 보내준 것이다. 나도 여러 번 가본 방. 어쩌다 바둑 둘 때 장고 끝에 흰 돌을 떨어뜨려 바닥에서 찾으려면 먼지는 물론 학생들과 나눈 대화가 낙엽처럼 쌓여 있던 방. 공부의 기쁨과 슬픔, 때로는 일의 의무나 억압을 전달하며 ...

    2025.07.17 20:59

  • [녹색세상]소설이 빠뜨린 세계
    [녹색세상]소설이 빠뜨린 세계

    인도 출신 소설가 반다나 싱은 “현대의 많은 사실주의 소설에서는 인간이 마치 동물도 바위도 나무도 없는 진공 상태에 존재하는 것처럼 물리적 우주와 단절돼 있다”고 지적한다. 인도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도 비슷한 발언을 한다. “나는 확실하게 믿는다. 이곳 땅이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살아 있다는 것을, 그것이 오직, 혹은 심지어 우연히, 인간 역사가 펼쳐지는 무대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인간이 기후위기를 가속한 시기에 문학의 내용이 급격하게 인간 중심적이 됐다고 말한다. 이 작가들은 인간이 독점해버린 세상과 그 세상을 닮은 소설 속에서 한 번도 주어의 자리를 차지해본 적 없는 자연물들에 자기 장소를 찾아주려고 애쓴다.전자제품으로 둘러싸여 날씨조차 체감하기 어려운 한국에서는 소설가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런 종류의 깨달음에 아무래도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10년 동안 출간한 10권의 소설책 중 한 권에도 자연물에 주인공 자리를 ...

    2025.07.17 20:59

  • [이희경의 한뼘 양생]여성할당제, 형식 아닌 비전으로
    [이희경의 한뼘 양생]여성할당제, 형식 아닌 비전으로

    개인적인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초등입시반’ 같은 아동학대 수준의 경쟁교육이 사라지고, 가난한 노인이 고립된 채 살다가 6개월 만에 발견되는 일이 없으며, 외모나 성 정체성 때문에 차별받거나 놀림거리가 되지 않고, 노동자가 혼자 일하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몸이 조각나는 일이 더는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정권이 성공했으면 좋겠다.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갸우뚱한 순간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유임이었다. 정부는 그 이유를 “진영에 상관없이 탕평인사를 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설명했지만, 나는 이 결정이 ‘여성 할당을 형식적으로 채우되 비중 낮은 부처에 배치하는’ 오래된 관행의 반복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여성이 동시에 홀대받는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개인적 감상일 수도 있다.의구심이 불쾌감으로 바뀐 계기는 강선우와 이진숙 두 장관 후보자의 지명이었다...

    2025.07.17 20:57

  • [음식의 미래]단단하고 깨끗한 전통주
    [음식의 미래]단단하고 깨끗한 전통주

    얼마 전 강원도 횡성으로 전통주 체험을 다녀왔다. 미쉐린 3스타인 밍글스를 비롯해 국내 유명 레스토랑에 공급할 정도로 그 맛을 인정받고 있는 양조장이어서 궁금해하던 곳이었다.나는 5년 전 전통주를 사업으로 접근했다. 그때 귀리로 누룩을 직접 만들었다. 그 누룩으로 단양주(막걸리)와 이양주·삼양주(청주)를 빚었다. 그리고 소주까지 증류했다. 초보자인 내가 만든 술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고두밥을 지어 누룩을 섞어 스테인리스 통에 넣고 며칠 동안 저어준 게 전부였는데 맛있는 술이 나왔다. 술을 배우는 하루하루가 감탄의 연속이었다. 우리 미생물과 곡물의 저력을 깨달은 순간이었다.하지만 손수 만든 누룩에, 우리 쌀에, 거기에 투입된 내 품과 시간을 감안하면 가격이 나오지 않았다. 특히 증류 소주는 최소 5만원은 받아야 수지가 맞았다. 1만원도 하지 않는 와인이 전국 편의점에 깔리는 시대에 누가 이런 비용을 지불하겠느냐는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1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2025.07.17 20:57

  • [정지아의 할매 열전]작고 작은, 나의 째깐이 할매
    [정지아의 할매 열전]작고 작은, 나의 째깐이 할매

    오늘은 내 고향 마을에 뜨내기로 들어와 잠깐 살다 떠난 째깐이 할매 이야기다. 한 4~5년 살다 갔나?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데리고 빈 몸으로 들어와 빈 몸으로 떠났다. 째깐이 할매는 모든 게 다 작았다. 키도 작고 몸피도 작고 얼굴도 작고 눈코입도 작고, 말하기 좀 그렇지만 가슴도 작았다. 옆집 박센떡과 나란히 서 있으면 작은 가슴이 더 도드라졌다. 박센떡은 째깐이 할매처럼 자식이 넷인데도 가슴이 어찌나 풍성한지 늘 저고리가 벌어져 더러는 허연 젖무덤이 아슬아슬 볕 구경을 하기도 했더랬다. 가슴만 풍성한 게 아니라 몸 전체가 풍성했던 박센떡은 고된 일 따위, 발가락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고 뚝딱뚝딱 해치웠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런 것처럼 보였다. 박센도 힘깨나 쓰는 일꾼이라 그 집 살림은 하루가 다르게 윤택해졌다. 애들도 푸둥푸둥 살이 올랐다.째깐이 할매네 아이들은 다 엄마 닮아 째깐한 데다 비루먹은 개처럼 볼품이 없었다. 안 그래도 조그만데 송곳 하나 꽂을 데...

    2025.07.17 20:57

  • [느린 이동]공중 뿌리
    [느린 이동]공중 뿌리

    “가족이라는 바깥” “팝업 행사와 닮았다” “취약한” “다시 지어지는” “공간이나 사물은 한동안 집이 된다” “무엇이 미래를 담보할 수 있나”.집을 떠올리자 산발적인 표현이 쏟아진다. 어떤 단어는 이어지고 몇 문장은 멀어서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 같다. 집이 내 안에 그렇게 남았구나. 여기저기 동시에. 찢어진 채로. 여러 번 허물어지고 다시 구축되며, 뼈와 살이 서로를 뒤덮은 채로.우리가 머무는 어떤 물성은 얼마간 집이 된다. 언어는 잠정적인 소파이고, 몸은 우리의 또 다른 거실이다.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의자가 계속 새로 생겨난다. 우리는 부지런히 수납되고 폐기된다.사흘만 존재하고 사라지는 거실을 만들었다. 전시 ‘공중 뿌리’는 2025년 7월11~13일 서울 성수동 베르탁에 존재했다.베르탁은 한때 누군가의 집이었으나 이제는 생활을 상상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벽지가 갈라지고 콘크리트가 드러나 있다. 전시를 위해 여기 다시 한번 집을 지었다. 물...

    2025.07.17 2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