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경향신문

오피니언

2025.04.19
  • [정동칼럼]한덕수, 최상목 같은 사람들
    [정동칼럼]한덕수, 최상목 같은 사람들

    초등학교 자녀와 함께 부모가 퀴즈를 푸는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문제가 쉽지 않았다. 국민의 5대 의무가 뭐냐는 질문이 그랬다. 4대 의무까지는 알겠지만, 5대 의무도 있었나 싶었다. 국방, 납세, 교육, 근로에다 ‘환경보전’까지 보태서 5대 의무라는 거다. 근거가 있을까?답은 헌법 제35조 1항에 있었다.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규정이다. 환경보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지만, 받아들이긴 힘들었다. ‘노력’이 의무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국가가 앞장서야 할 환경보전을 마치 국민만의 의무인 것처럼 강조하는 것도 이상했다. 게다가 헌법은 환경보전 노력 이전에 모든 국민의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는 제쳐두고 의무만 강조, 아니 강요하고 있는 거다.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10조를 비롯해 우리 헌법이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2025.04.17 20:14

  • [세상 읽기]산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세상 읽기]산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경북 의성에는 흰 자두꽃이 한창이다. 산불 현장 답사에 동행한 농민은 저 꽃에서 열매가 제대로 열릴지 걱정했다. 산불 열기로 밭의 멀칭 비닐도 녹았는데 여린 꽃과 나무도 화상을 입었을까 싶어서다. 게다가 지력이 약해져 산사태가 날 수 있어 다가올 여름도 두렵다. 이런 형편이건만 산불로 금사과 사태가 날까 걱정하는 시중의 말들이 박절하다.31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 산불은 역대 최악이었다. 주민들은 불을 끄다 숨진 이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이웃을 구하지 못했다고 자책한다. 방재 연구자들은 대형화되는 산불의 추세를 꺾기 어렵다며 대형 인명피해를 우려해 왔다. 산불은 더 커지고 잦아지나 사람을 보호하는 대책은 더디다. 무엇보다 농산어촌에는 고령자가 많다. 귀도 어둡고, 볼 줄 몰라 대피 문자 메시지도 못 보고, 거동도 어려워 위험천만하다. 주기적인 재난 안전 훈련이 꼭 필요하다. 대피소에서 지내는 불편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관절 성치 않은 노인들에게 딱딱한 바닥은 고역이다. 그러나 ...

    2025.04.17 20:14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을사 봄 풍경 몇 점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을사 봄 풍경 몇 점

    차창이 캔버스처럼 풍경을 시시각각 갈아 끼운다. 희끗희끗 잔설과 파릇한 새싹들. 멀리 뭉클뭉클 굴뚝을 빠져나가는 연기. 브레히트의 짧은 시 ‘연기’가 떠오른다. “호숫가 나무들 사이에 조그만 집 한 채/ 그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연기는 세상에서 나가는 법을 감쪽같이 알려주고, 봄꽃은 세상으로 나오는 방법을 아름답게 가르쳐준다.겨우내 지면에 착 엎드려 고난의 시절을 이겨낸 달맞이꽃. 훈훈한 기운에 정신을 차리며 어디까지 대궁을 들어 올릴까, 자신이 처한 주위를 살피며 떠들썩하게 일어난다.도심의 은행나무는 가지가 뭉툭하다. 물푸레나무는 겨울눈이 완강하다.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기운을 맵시 있게 감아올린다. 금슬 이 좋은 부부처럼 대칭한 잎이 밤마다 포개지는 자귀나무는 끝이 여리고 가늘가늘하다. 솔기 없는 바느질 자죽처럼 하늘과 희미하게 섞인다.공중을 지휘하는 새, 표면장력이 최대치인 ...

    2025.04.17 20:12

  • [에디터의 창]병든 사회와 지구에서 건강한 삶은 불가능하다
    [에디터의 창]병든 사회와 지구에서 건강한 삶은 불가능하다

    밭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 고단한 몸을 뉘였다가, 요양원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을 맞다가, 어디론가 이동하던 중 자동차 안에서… 난데없이 들이닥친 뜨거운 불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느꼈을 고통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하룻밤 사이 강풍을 타고 경북 의성 산골에서 영덕 바닷가까지 100㎞ 가까이 이동한 산불에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화를 당한 사람이 많았다.그렇게 죽은 사람이 31명, 다친 사람도 52명이나 됐다. 대부분 60~80대 고령이었다. 인구과소지역의 재난 방지 역량은 턱없이 부족했고, 정부의 안전취약계층을 위한 재난 대피 매뉴얼은 사실상 없거나, 그나마 있는 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진화 헬기는 낡았고, 진화대원도 거의 맨몸이나 다름없이 투입된 고령 노동자였다.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집이 다 타버려 오갈 데 없어진 수천명의 이재민이 지금도 절망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 생활이 언제 끝날지 기약하기 어렵다. 그런 와중에 재난 대응 실패의 ...

    2025.04.17 20:12

  • [녹색세상]극우 정치와 지구위기
    [녹색세상]극우 정치와 지구위기

    “민주주의가 나의 무지나 너의 지식이나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오해되는 풍토가 퍼질 때, 결국 득을 보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가장 큰 목소리일 뿐이다.” 20세기를 살다 간 미국 과학자이자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말이다. 이 말은 2025년 현재를 뚜렷하게 관통한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라는 절체절명의 난제 앞에 지성과 이성은 아무렇지 않게 조롱당하고 공격받는다. 세계 곳곳에서 극우 포퓰리즘은 반지성주의를 부추기고, 현실의 위기를 부정하거나 과학적 경고를 쉼 없이 깎아내린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후위기를 ‘중국이 날조한 사기극’이라고 말한다. 풍력발전이 암을 유발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과학 부정과 반지성주의 풍토는 결국 멸종위기종 보호법 완화나 국립공원 내 석유 시추 허용 등 생물다양성을 뒤흔드는 정책들로 연결된다. 최근에는 산업시설에서 탄소 배출량을 보고했던 의무를 폐지하기로 했다. 지구상 두 번째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미국에서 기업에...

    2025.04.17 20:12

  • [고영의 문헌 속 ‘밥상’]뻔해서 허름한 조선 말고
    [고영의 문헌 속 ‘밥상’]뻔해서 허름한 조선 말고

    숙수(熟手) 박이돌(朴二乭)은 토란을 가지고 별미를 만들었다. 조선 숙종도 이를 달게 먹었다. 숙수란 전문 요리사이다. 주방장직을 맡을 수 있는 최고 실력의 요리사가 곧 숙수이다. 박이돌은 자신이 만든 음식의 자취도, 요리사로서 제 이름도 남겼다. 더덕 또한 반찬을 넘는 별미가 될 만하다. 관청에 딸린 노비 강천익(姜天益)은 더덕으로 일종의 튀김과자를 만들었다.사복시의 거덜 지언남은 붕어를 황토에 싸 약한 불로 굽는 방식의 붕어구이를 잘했다. 사복시는 조선 임금의 가마 그리고 말과 마구와 목장을 관리하는 부서다. 거덜은 높은 사람이 탄 말의 고삐를 잡고 다니는 사복시 소속 종이다. 말 탄 높은 사람의 몸은 흔들리게 마련이다. 높은 분 모시고 비싼 말 이끄는 종놈 또한 공연히 우쭐거리게 마련이다. 우쭐에 흔들, 거만한 태도를 가리키는 ‘거들먹이다’가 ‘거덜’에서 나왔다고 한다. 우쭐대기는 허튼짓과 한 쌍이다. 허랑방탕 살던 자가 재산을 결딴내면 ‘거덜 냈다’라고 한다. 이 역시...

    2025.04.17 20:10

  • [김해자의 작은 이야기]장화와 왕관
    [김해자의 작은 이야기]장화와 왕관

    폭설에 세상이 갇히면토방에 장화 한 쪽 뒤집어 세워놓고그 신발 바닥 뒤축에 모이를 올려놓았습니다.마당에 뿌려놓지 그래요. 새 머리마냥 갸웃거리면쉿! 조용히 창호지 문구멍으로 내다보라 했습니다.저것 봐라. 힘 있는 새가 혼자 다 먹으려고장화에 올라타지. 그럼 어찌 되겄냐? 장화가 넘어지면서모이가 마당에 흩뿌려지지. 그러면 병아리도 먹고굴뚝새도 먹고 참새도 먹고 까치도 먹는 거지.처음부터 흩뿌려놓으면 되잖아요. 그건 다르지.크고 힘센 놈은 작은 새들 앞에서저렇게 굴러떨어져 망신 좀 당해봐야 해.혼자만 먹어서는 안 된다는 걸 깨우쳐줘야지.새대가리라서 번번이 까먹지만, 참새는 짹짹지빠귀는 뽁뽁, 날개짓으로 가슴 치며 웃어봐야지.장화 속에다 모이 한 줌 넣어놓으면, 왕관이라도 쓴 양몸통을 통째로 처박고서는 마루 밑을 기어다니는 꼴이야뉴스 첫머리에서 늘 보지만 말이다. 아버지는넘어진 장화를 가지런히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2025.04.17 20:10

  • [사유와 성찰]세상이 장터로 변할 때
    [사유와 성찰]세상이 장터로 변할 때

    오늘은 기독교인들이 성금요일이라 일컫는 날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기억하는 날에 ‘거룩한 성(聖)’자를 더한 것은 그의 죽음의 숭고함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십자가형은 인간이 고안해낸 가장 잔인한 처형 방식이다. 사형수는 장시간의 고통을 견뎌야 하고, 완벽한 고립감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옷까지 벗겨진 채 십자가에 달림으로 그들은 인간적인 품격조차 박탈당했다. 사람들의 눈에 고스란히 노출된 그들의 몸은 더 이상 존엄하지 않았다. 십자가 아래에 있는 이들은 조롱과 모욕을 가함으로 처형당하는 이들과 자기들을 구별했다. 인간의 잔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현장에서 죽어가는 한 인간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조롱거리로 삼는 순간 인간의 소외는 절정에 이른다.무지가 열정과 결합하면 폭력이 된다. 폭력은 자기 속에 깊게 자리 잡은 두려움의 이면인 경우가 많다.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 폭력은 생명에 대한 부정이기에 거기에는 아름다움이 없다. 적나라한 폭...

    2025.04.17 20:09

  • [시간의 전설]횡재를 불러오는 힘
    [시간의 전설]횡재를 불러오는 힘

    서민 생활에서 뜻밖의 재물을 얻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뜻밖의 손실을 보는 경우가 더 허다하다. 그래서 실낱같은 뜻밖의 행운을 바라며 겨우 복권이나 한 장씩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횡재는 꼭 재물에만 한정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대통령 윤석열의 횡포가 극한으로 치달을 때, 조국혁신당은 ‘3년은 너무 길다’라는 구호를 냈다. 그 말에 실감하는 많은 국민조차 그것은 허무한 바람이라고 여겼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서슬 퍼런 제왕적 대통령을 어떻게 끌어내린단 말인가.“飄風不終朝(회오리바람은 아침을 넘기지 못하고)/ 驟雨不終日(소나기는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 天地尙不能久(하늘과 땅조차 오래가지 못하는데)/而況於人乎(하물며 인간이야 어떠하랴).” 노자 도덕경 23장 구절이다.장기 집권의 상징적 인물인 이승만 대통령은 12년 재임 기간 중 발생한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혁명에 따라 직에서 물러났고, 하와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

    2025.04.17 20:03

  • [조희연의 시대사색]복기와 횡단, 미래를 여는 두 개의 공약 실행 열쇠
    [조희연의 시대사색]복기와 횡단, 미래를 여는 두 개의 공약 실행 열쇠

    12·3 이후 탄핵을 둘러싼 치열한 갈등의 시간은 막을 내렸다. 이제는 선거의 시간이다. 선거 국면이 본격화되면 곧 공약을 ‘생산’하는 시기에 돌입할 것이고, 대선이 끝나 새 정부의 가치 방향이 결정되면 ‘공약 실행’의 시간으로 바뀔 것이다.과거와 달리 대선 이후 공약 실행 과정이 순탄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 허니문 기간도 없어지고, 심지어 ‘승리한 후보가 다시 실패하길 바라는’ 식의 정서에서 ‘묻지마 반대’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약 실행에 사소한 결함이 있거나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면 큰 정치적 갈등으로 번질 위험이 크다. 설익은 정책은 아예 실행해보지도 못하고 좌초할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 초기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이 그 사례다.이런 맥락에서, 나는 생산된 공약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두 가지를 새롭게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복기(復棋)’적 관점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을 떠올려보자. 타임슬립 능력을 가진...

    2025.04.17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