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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칼럼]고요한 아침의 나라
    [정동칼럼]고요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의 새벽은 분주하다. 지난 두어 주 공론장을 강타한 쿠팡 새벽배송 논쟁은 국가의 관리를 벗어나 질주하는 시장의 복잡한 이면을 드러냈다. 하나의 사업 모델로 출발한 새벽배송은 한국 사회의 노동권, 노동자들의 분화, 건강과 소득, 규제와 자유, 소비의 필요와 윤리, 그리고 멈추지 않는 자본주의에 대한 자각을 일깨웠다. 사실 새벽은 그 이전에도 국가적으로, 산업적으로, 종교적으로 전략적인 시간이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朝鮮)’의 후예들에게 새벽은 과연 어떤 시간이었는가.산업사회 이전에 새벽은 희망과 재생 같은 추상적 가치와 연결된 우주론적 시간이자, 생명의 휴식과 활동이 전환되는 중요한 경계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매일 일어나는 작은 천지개벽의 시간이었다.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소원을 비는 절박한 시간이자, 깨어 있는 신앙을 신에게 증명하는 기도의 시간이었다. 새벽은 신성했다.개발연대에 새벽은 국가 주도의 강력한 근대화 프로젝트와 결합하면서 ‘근면’의 시간이 ...

    3시간 전

  • [미디어세상]방송 협찬, 무법 상태로 둬도 되나

    지난달 30일 국정감사에서 반상권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위원장 직무대리는 내년 상반기까지 방송법과 시행령을 개정해 방송광고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답변했다. 중간광고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시간별로 광고량을 제한하던 방식에서 일일 광고량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하루 동안의 총광고량은 같더라도 광고단가가 비싼 시간대에 더 많은 광고를 편성할 수 있게 됐다. 간접광고·가상광고에 대한 규제도 완화될 전망이다.지상파 방송광고만 엄격히 규제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공적 책무가 더 큰 지상파 방송이 오히려 재원제도 면에서 더 불리하게 되어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방송사들이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안정적 재원을 확보하는 일이 매우 시급하고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거래질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동시에 시청권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방송...

    3시간 전

  • [세상 읽기]‘노동’은 있고 ‘권리’는 없다
    [세상 읽기]‘노동’은 있고 ‘권리’는 없다

    지난 한 주 우리는 두 가지 풍경을 마주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의 20대 직원이 과로로 목숨을 잃은 사건과 쿠팡 등 e커머스나 택배 물류회사의 ‘심야시간 새벽배송 제한’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다. 전자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서비스사회화 시대의 유연한 고용과 노동환경 모습이다. 후자는 플랫폼노동이라는 제도 밖 사각지대의 경계가 모호한 노동문제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서비스경제에서 플랫폼경제로 산업구조가 변화한 데 따른 노동시장 현실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확장 과정에서 은폐된 노동의 단면일 뿐이다.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노동은 존재하지만 그 노동을 하는 이들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포착해야 한다. 지난 한 주 ‘런베뮤’의 비즈니스 모델을 파헤친 기사보다는 휘발성 기사들이 적지 않았다. 비표준적 계약과 파편화된 고용 형태보다는 자극적인 소재들을 주로 다루었다. 왜 홀 서비스와 베이커 업무 직원의 9...

    2025.11.06 22:15

  • [정동칼럼]혐오의 프레임 밖에서
    [정동칼럼]혐오의 프레임 밖에서

    학생들과 대림동에 방문하기로 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이주민들이 정착해 살아온 거리를 걸으며 역사를 배우는 지역탐방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영상 동아리 학생들은 방문 후기를 대화로 나누는 콘텐츠를 찍기로 했다. 그런데 회의 중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영상에 혐오 댓글이 달리면 어떡해요?”주지하다시피 대림동은 중국 혐오 시위의 표적이 된 장소다. 학생들은 영상이 혹시라도 알고리즘을 타서 공격을 받게 될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얼굴을 드러내도 될까, 가면을 써야 할까, 이야기할수록 걱정은 커졌다. 그저 디아스포라 지역탐방 후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콘텐츠가 될 테고, 냉정히 생각하면 높은 조회 수를 기대하기 쉽지 않은데, 모두들 순간 두려움에 압도되어 영상을 찍어도 될지 주저하고 있었다.학생들만의 두려움은 아닐 것이다. 나도 차별에 관해 말할 때 움츠러드는 경험을 한다. 성차별, 인종차별, 성소수자차별, 장애인차별 등 각종 차별에 관해 의견을 말할 때, 비난...

    2025.11.06 22:14

  • [루페로 보는 시선]자본주의라는 매트릭스
    [루페로 보는 시선]자본주의라는 매트릭스

    한 청년이 사망했다. 과도한 노동의 결과다. 그의 부고를 접하자마자 슬픔과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노동이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 독일 언어학자 로렌츠 디펜바흐가 1873년 출간한 소설의 제목이다. 이 소설은 산업화 초기 빈곤과 불안이 가득한 독일 사회에 대한 해법으로 노동윤리를 제시한다. 주인공 프리드리히는 노동의 가치를 천시하지만, 결과적으로 노동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소설의 제목은 1920년대 오스트리아와 독일 전역에서 윤리성을 회복하는 구호로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진실된 노동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준다고 믿었다.아이러니하게도, 이 구호를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도록 만든 집단은 2차 세계대전 때의 나치였다. 1차 세계대전에 패하고, 전쟁배상금과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붕괴한 뒤 집권한 나치당은 불안의 원인을 유대인과 공산주의자에게 돌리고 적으로 규정된 이들을 잡아들여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을 시켰다. 노동이 자유를 준...

    2025.11.06 22:12

  • [김경식의 이세계 ESG]코스피 5000? ESG 경영에 답이 있다
    [김경식의 이세계 ESG]코스피 5000? ESG 경영에 답이 있다

    지난 3일 코스피 지수가 4200을 돌파했다. 코스피 지수는 상장종목 전체의 시가총액을 기준연도와 비교한 수치다. 2007년 7월 2000을 돌파한 이후 2021년 1월 3000을 돌파하는 데 14년이 걸렸다. 그러나 지난 10월28일 사상 최초로 4000을 돌파하는 데 걸린 시간은 4년10개월에 불과했다. 앞으로 등락이 교차하겠지만 그동안 상상도 못했던 수준인 코스피 지수 5000도 눈앞에 어른거린다.그러나 이렇게 화려한 상승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장 참여자들의 체감지수는 높다고 보기 힘들다. 4200을 돌파하는 순간에도 상승 종목 수는 250여개인 데 비해 하락 종목은 650여개나 됐다. 코스피가 순간순간 기복이 있더라도 꾸준히 상승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의 실적이 받쳐주고, 그 실적이 주주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 모두와 공유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부동산에 과도하게 집중된 자산 축적의 욕구도 분산될 것이다. 이렇게 지수가 급등한 시점에야말로 기업 실적에 중요한 영향을 미...

    2025.11.06 22:11

  • [정지아의 할매 열전]고상한 욕쟁이 할매
    [정지아의 할매 열전]고상한 욕쟁이 할매

    아랫마을 욕쟁이 할매는 남원 양반가 출신이었다. 그런 집안에서 왜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보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가난보다 양반 족보가 더 중요했겠지.남원떡이라 불린 할매는 시집온 뒤로 죽자고 고생만 했다. 재산이라고는 지픈(깊은) 논 - 지픈 논은 비가 조금만 와도 잠기기 일쑤였다 - 두 마지기에 산기슭의 밭뿐이었다. 자식은 줄줄이 일곱이나 낳았는데 어쩌자고 남편은 빨갱이가 되어 산으로 갔다. 여순사건 뒤 집에서 쫓겨난 할매는 좀 큰 자식들은 친정으로 보내고 막둥이만 들쳐업은 채 산에서 일 년을 보냈다. 다람쥐가 숨겨놓은 밤을 훔쳐먹으며 겨울을 났다던가.다행히 친정 오빠가 경찰이라 남편은 몸 성히 집으로 돌아왔다. 옆에 있달 뿐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남편은 허구헌날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 어느 가을, 남원떡이 밭에서 김을 매는데 소나기가 퍼부었다. 퍼뜩 그놈이 치울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한걸음에 달려왔으나 고추는 이미 물에 잠겨 있었다....

    2025.11.06 22:07

  • [음식의 미래]트럼프와 햄버거
    [음식의 미래]트럼프와 햄버거

    음식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지난달 29일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주의 한 호텔에서 룸서비스로 시킨 햄버거가 그렇다.트럼프 대통령이 보좌진을 통해 햄버거를 시킨 시간은 이날 오후 4시30분. 그는 이미 오후 2시39분 한·미 정상회담을 겸해 늦은 점심을 먹었다. 새우, 전복, 관자 해산물 샐러드와 미국산 소고기로 만든 갈비찜이 메뉴였다. 회의는 오후 4시6분에 끝났다. 이어 그는 오후 6시30분 7개국 정상 초청 특별만찬에 참석했다. 만찬 메뉴는 영월 오골계, 트러플을 곁들인 만두, 경주 남산 송이버섯, 구룡포 광어, 지리산 캐비아 등이었다.그의 햄버거 주문은 디테일했다. 햄버거에 소스는 바르지 말고, 아메리카 치즈를 올려달라고 주문했다. 또 케첩을 많이 달라고 했다. 트러플, 캐비아 같은 산해진미를 먹는 와중에 그는 왜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햄버거를 시켰을까? 그것도 ‘아메리카 치즈와 케첩 듬뿍’이라는 특이한 주문을 덧붙여서.트럼프 대통령...

    2025.11.06 22:07

  • [이희경의 한뼘 양생]무덤의 미래
    [이희경의 한뼘 양생]무덤의 미래

    4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묘를 이장(移葬)했다. 당시 정신없이 구했던 묘지는 경기도 모 공원묘지에서도 거의 산꼭대기 자리였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장례식 풍경. 사람들이 무거운 관을 낑낑대며 운반했고, 어린 동생들은 눈 쌓인 산에서 계속 미끄러지면서 울었다. 지금은 접근성이 좋아졌다지만, 노쇠한 어머니에게 그곳은 어느 날부터 갈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1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집 근처에 평장묘를 마련했고, 이번에 그곳으로 아버지를 이장한 것이다.그런데 부모 묘와 관련된 이 같은 고민이 나만의 것은 아닌 것 같다. 선산에 부모를 모신 친구는 성묘 한 번 다녀오려면 하루가 꼬박 걸린다며, 언젠가 이장하고 싶어도 어디까지 모셔와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조부모 묘가 고향 뒷산에 있는데, 이제 그곳엔 아무도 살지 않아 다음 세대가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부모를 돌보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돌봄을 기대하기 어려운 첫 세...

    2025.11.06 22:07

  • [에디터의 창]‘집벌’ 난제 앞에 선 어느 삼수생
    [에디터의 창]‘집벌’ 난제 앞에 선 어느 삼수생

    당신은 과연 몇 급지입니까? 온라인에는 주거 계급도가 나돌아다닌다. 이른바 서울시나 경기도 ‘급지 분석’이다.강남·서초구는 1급, 동작·강동구 6급, 금천·강북·도봉구 10급…. 한눈에 들어오게 서울 25개 구나 경기 시·군을 1~10급으로 갈라치기 해놓았다. 경기도는 과천·판교 1급, 고양·김포는 6급 등으로 칼질을 그어놨다.참으로 작위적인 데다, 천박하기 그지없는 분류다. 한편으론 현실의 격차를 얼추 반영한 것이어서 씁쓸하다.“이제는 ‘학벌’보다 ‘집벌’이다. 점수보다 평수로 신분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작금의 세태를 압축하는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의 지적이다. 하필 ‘부자 옹호당’이라 비판받아온 국민의힘 부동산정책 정상화 특별위원회의 지난달 28일 청년간담회에서 한 말이다.한국 사회를 주무르는 대표선수들은 몇 급지에 위치할까. 일례로 이억원 금융위원장의 경우를 보자. 2013년 강남 개포주공 1단지를 8억5000만원에 샀는데, 재건축 후 지금...

    2025.11.06 2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