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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6
  • [정동칼럼]수능이라는 교육 포퓰리즘
    [정동칼럼]수능이라는 교육 포퓰리즘

    대선 주자들이 또 수능을 부추기고 있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의 첫 공약이 1년에 수능을 두 번 치는 것이었고, 경선 1차에서 낙방한 나경원 후보도 수능 100% 전형을 연 2회 실시할 것을 강조했다. 내가 볼 때, 대선 공약으로 수능을 들고나오는 것은 전형적 포퓰리즘이다. 수능 때문에 교육이 왜곡되는 것은 눈여겨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공정성’의 화신으로 부각시키기 때문이다.수능이 교육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는 엄청나며, 수능을 폐기함으로써 얻는 교육 본질 수호의 이익은 수능 폐기에 따르는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 수능은 암기식 문제풀이 학습-정답주의 교육-무한경쟁의 연결고리를 가속하는 동시에 재수생과 반수생들을 양산한다. 또 학벌, 대학 서열화, 능력주의 신화 등을 만드는 주범이다.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의사나 법률가 엘리트 집단은 모두 수능 경쟁에서 그 서열의 꼭대기를 차지하며, 그 결과 그들의 독점적 지위를 ‘능력지배주의(merit...

    2025.04.23 20:31

  • [문화와 삶]몰라도 좋아요
    [문화와 삶]몰라도 좋아요

    청소년 시집 <마음의 일>(창비교육, 2020)에 나는 ‘몰라서 좋아요’라는 시를 실었다. 청소년 시기의 나는 모르는 것이 많았다. 보기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을 골라낼 줄 알고 삼각함수 문제를 풀 수도 있었지만, 친구의 의중을 파악하고 말의 속뜻을 알아차리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모르는 목소리/ 모르는 얼굴/ 모르는 맛/ 모르는 감정/ 모르는 내일// 모르는 것투성이이지만/ 내가 모른다는 것만은 알아요// 몰라요/ 몰라서 좋아요”라는 구절에는 ‘모름’을 긍정할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아는 게 힘이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모르는 게 약이라고 애써 믿을 수밖에 없었다.어른이 되면 궁금했던 것들이 상당 부분 해결될 거라 믿었다. 성장하면서 몰랐던 것을 자연히 알게 될 것임은 물론, 언젠가는 삶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경험이 자신감을 키워주고 상상력을 넓혀줄 거라 믿었다. 어려운 결정도 뚝딱뚝딱 내리고 “몰라서 좋아요”라는 말 ...

    2025.04.23 20:31

  • [임의진의 시골편지]번아웃
    [임의진의 시골편지]번아웃

    영적 지도자 프랭크 바이올라는 <흔치 않은 지혜>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한다. “유명세를 멀리하라. 빈집에 들어가지 마라. 기대치를 낮추라. 계절을 분별하라. 늪지가 아닌 수로가 되라. 기회를 놓치지 말고 곧바로 사과하라.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라. 허세를 부리지 마라. 유해한 사람을 피하라. 시련을 낭비하지 마라. 소진(번아웃)을 피하라.” 요즘 보면 녹초가 된, 소진된 사람들이 많아 보여. 태우고 나면 남는 건 한 줌 재와 공허함뿐. 그러니 전부 다 불태우지 말고 적당히 체력을 남겨두고, 쉴 만한 물가와 휴일을 가져야 한다.‘빼다간’ ‘빼다지’란 말이 있는데 서랍을 말하는 사투리. 보통 빼다간에 뭘 넣어두지. 사람도 좀 넣어두고(자기가 들어가기도 하고) 한참 꺼내지 말아야 해. 잘 안 보이고 가만 지내는 사람들 보면, 눈이 맑고 총총하다. 간만에 만나면 배나 반갑고, 쓰일 때 귀하게 쓰이면 되지. 만날 길에서 부딪히는 ‘흔한’ 사람들 보면 번아웃 직전....

    2025.04.23 20:30

  • [서의동 칼럼]그날의 마음들
    [서의동 칼럼]그날의 마음들

    KBS가 지난 2월부터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라는 영상물을 공개하고 있다. 비상계엄이 내려진 지난해 12월3일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의 증언을 담은 영상물로, 그날의 마음들이 드러난다. 이재승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국회 출입구에 잠시 틈이 열려 현장에 함께 있던 낯모르는 7~8명과 국회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국회 본청까지 걸어가는 도중에 인생 전체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딸들에게 잘못한 일도 떠오르고, 대학 다닐 때 비겁했던 일도 떠올랐다고 한다. ‘주마등’은 주로 죽음의 위기를 자각한 뇌의 작용에 의해 과거의 일들이 순식간에 재생되는 현상을 형용할 때 쓰인다. 그 심야에 군인들과의 충돌이 뻔히 예상되던 국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행위였다.블록체인 전문가 오현옥 한양대 교수는 함께 가자는 배우자를 만류하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국회로 향했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12·12쿠데타 당일 시민들이 달려나와 막았더라면…’ 하고...

    2025.04.23 20:30

  • [겨를]봄에 알게 되는 것
    [겨를]봄에 알게 되는 것

    지난주에는 퇴근길에 차가 막혔다. 일 년에 한 번, 벚꽃이 만개할 때 겪는 일이다. 만경강의 벚꽃을 보려고 몰려든 이들이 차창을 열고 천천히 달렸다. 차를 세우고 내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벚나무 아래 해사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이들을 누가 나무랄 수 있겠나. 그 길에서 조급한 건 꽃잎뿐이었다. 왜 그리 빨리 떨어지는지…오늘 아침에는 한산해진 벚나무 길을 걸었다. 주말 비와 함께 인파는 물러났고, 연둣빛 잎을 틔우기 시작한 나무들은 동네 할머니들 차지가 됐다. 할머니들은 꽃잎을 반쯤 떨군 나무들을 올려다보며 자주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셨다. 급히 갈 이유가 없으니까. 살다 보면 ‘천천히’ ‘가만히’ 같은 부사가 어울리는 시간이 오는 듯하다. 나는 그런 노년을 기다린다. 길에서 이웃 할머니를 만났다. 저만치 걸어오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멈춰 몸을 작게 웅크리셨다. 어디 불편하신가 여쭈었더니, 조용히 고갯짓으로 바닥을 가리키신다. 거기, 봄이 한 움큼 있다. ...

    2025.04.23 20:30

  • [예술과 오늘]귀신과 간판
    [예술과 오늘]귀신과 간판

    중학교 시절 한문 선생님의 별명은 귀신이었다. 뒤돌아 칠판에 판서하면서도 졸거나 딴짓하는 학생을 정확히 호명하는 능력이 있어서 붙여진 별명이다. 선생님들의 별명은 좀 살벌했다. 교련 선생님은 살모사, 체육 선생님은 미친개였다. 엄한 한문 선생님 덕분에 신문에 실린 한자 정도는 읽을 줄 알게 되었다. 미술 시간을 통해 형식적이나마 서예라는 것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그것마저도 다 사라졌다. 나는 중학교 시절의 그 짧은 한문 시간과 미술 시간의 소중함을 평생 간직하고 있다. 그런 공부가 계속 이어졌더라면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나이 들어 이런저런 일로 중국을 가끔 다니고 있다. 박물관을 다니고 책을 사고 고완품 가게를 순례하는 여정이다. 중국에 가면 가게 간판을 보는 일이 무척 즐겁다. 대부분 행서체나 전서체로 쓴 손글씨들인데 그 솜씨에 놀라고 또 그 전통을 여전히 간직하는 문화가 부럽다. 특히 고완품 상점들의 간판은 일품이다. 뛰어난 서...

    2025.04.23 20:27

  • [송현숙의 공통감각]이 괴물 엘리트들을 어찌해야 할까
    [송현숙의 공통감각]이 괴물 엘리트들을 어찌해야 할까

    “너무나 이상한 일을 많이 하는데, 자기들끼리 싸여 있다 보니 자신들이 얼마나 이상한지 판단을 못하는 것 같아요.” “몇달 동안 그자들의 민낯이 얼마나 초라한지 분명히 알게 됐죠”지난 주말 경향신문 유튜브 채널 ‘경향티비’를 보다가 고개를 몇번이나 크게 끄덕였다. 주제는 ‘시험권력’ 고시 엘리트들의 종말. 내란 사태가 드러낸 엘리트 관료, 정치인들의 민낯을 보며 내가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짚어줘서였다.3년도 안 되는 기간, 윤석열 정부의 어이없는 실책 릴레이와 비현실적인 친위 쿠데타, 그로 인한 자멸로 치러지는 조기 대선이 40일 앞으로 다가왔다. ‘엘리트’라는 관점도 주목해야 할 핵심 포인트 중 하나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엘리트’를 ‘사회에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사람. 또는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정의한다.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한 우익 언론은 칼럼을 통해 ‘엘리트 리더’의 등장을 콕 집어 찬양했다. “윤석열의 등장이 갖는 또 다...

    2025.04.23 20:27

  • [교육 돌아보기]대입 제도, 정말 그 정책이 최선입니까
    [교육 돌아보기]대입 제도, 정말 그 정책이 최선입니까

    또 시작됐다.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여야 가릴 것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교육 정책에 저마다 말을 보탠다. 특히 대입과 수능 관련 공약은 선거 단골손님이다. 예기치 않은 대선을 앞두고도 예외 없이 백가쟁명이 벌어진다. 대선 레이스가 본궤도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벌써 대입 공약이 보도된다. 정시모집 중심 입시 체계, 연 2회 수능을 치른 후 대입에 최고 성적 반영, EBS 강좌 80% 이상 반영 등 내용도 다양하다. 공약을 발표하지 않은 분도 있으니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교육학자들이 각 대권 주자 캠프에 들어가 정책 제안을 쏟아내는 시기가 되면 교육 공약은 더 늘어날 것이다.현재 거론되는 정책의 면면을 보면 난감한 부분이 꽤 있다. 수십년을 이른바 ‘입시판’에서 지낸 필자가 보기에, 교육 현장에 적용하기 어렵거나 오히려 지금보다 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요소가 있는 탓이다. 헤집어 놓을수록 학부모와 학생 부담만 느는 것이 대입 제도다. 대선 주자들이 이를 깊이 알고 대입을 ...

    2025.04.23 20:27

  • [기고]12·3 계엄군의 ‘케이블타이’가 남긴 고문의 그림자
    [기고]12·3 계엄군의 ‘케이블타이’가 남긴 고문의 그림자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케이블타이는 익숙한 도구다. 야외 간이집회 무대의 구조물을 단단히 고정할 때 이만큼 톡톡히 제 역할을 하는 것도 없다. 이걸로 사람을 ‘묶을 수’ 있다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 내 일상 속 도구였던 케이블타이는 12·3 불법계엄 사태를 거치며 인권침해를 드러내는 상징이 됐다.12·3 비상계엄의 밤,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한 취재기자를 케이블타이로 포박하려는 장면이 국회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공개됐다. 케이블타이는 “문을 잠그기 위해 준비한 것”이라던 김현태 전 707특임단장의 헌법재판소 증언이 거짓임을 드러낸 것이다. 기자에 대한 무력 체포 시도는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다. 또 대한민국이 비준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 보장하는 고문 금지, 자의적 구금 금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다.피해자인 기자는 계엄군에 강제로 연행당하는 과정에서 폭행이 있었고, 케이블타이로 여러 차례 ...

    2025.04.23 20:26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아침마다 나는 500억개의 유산균이 든 요거트를 먹는다. 달고 맛도 좋다. 창밖으로 봄이 성큼 지나간다. 매화꽃이 피었나 싶더니 어느새 손톱만 한 열매가 초록 잎 뒤로 숨는다. 아마 살구와 앵두 열매도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어린 과일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땅으로는 봄나물이 빈 곳을 채우며 무성하지만, 슬쩍 데친 두릅나무 순처럼 과일과 나물의 봄맛은 쌉싸름할 뿐이다.우리는 다섯 가지 정도로 세상의 맛을 느낀다. 단맛, 쓴맛, 짠맛, 신맛 그리고 감칠맛이다. 최근에는 지방 맛을 감지하는 또 다른 미각 수용기가 알려지기도 했다. 미각을 담당하는 수용기는 대개 혀에 분포한다. 음식물을 담고 줄곧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소화기관은 항문을 맨 뒤에 포진하고 맛은 물론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 온갖 감각기관을 전면에 배치한 채 먹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파리는 입은 물론 다리에도 맛을 느끼는 수용체를 갖고 있다. 목표물에 착지하자마자 먹을 것인지 아닌지 바로 판단할...

    2025.04.23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