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경향신문

오피니언

  • [정동칼럼]관세 판결과 내란죄 판결에 대한 단상
    [정동칼럼]관세 판결과 내란죄 판결에 대한 단상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정책에 대한 연방대법원 판결이 마침내 내려졌다. 그동안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이 행정명령을 통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어젠다 실현에 대체로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관세 유지 판결이 예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관세 부과의 근거로 제시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며 상호관세를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판결의 후폭풍도 거세다. 한편에서는 천문학적 규모의 환급 소송이 제기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무역법 조항에 근거한 새로운 관세 부과 계획이 발표되는 등 글로벌 경제는 극도의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판결 이후의 혼란한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판결 자체에서의 논증은 정파적 입장을 초월해 6인의 대법관이 법정의견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로 합리적이며 질서정연했다. 보수·진보 연합의 대법관들은 관세 부과를 비롯한 조세권은 연방의회의 고유권한이라는 것이 헌법 조항의 명백한 의미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

    2026.03.05 19:53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과학과 무한
    [김범준의 옆집물리학]과학과 무한

    첫술에 배부를 리 없지만, 밥 한술 뜨는 것을 여러 번 계속하다보면 배가 부르다. 사과 하나 먹고 또 하나를 먹으면 두 개의 사과를 먹은 것이듯,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더하기 전 하나보다 더 크다. 꼭 그런 것은 아니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외가 있기는 하다. 1+1=2지만 0+0=0이어서 크기 없는 0을 서로 더한다고 크기가 0보다 커질 리 없다. 아무리 여러 술 떠도 배가 차지 않는 숟가락은 빈 숟가락일 수밖에. 같은 둘을 더하면 처음 하나보다 커진다는 것은 0을 제외하면 다른 반례가 없는 절대적 진리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여러 장갑이 뒤죽박죽 쌓여 있는 무더기에서 왼손 장갑과 오른손 장갑을 하나씩 꺼내 짝짓는 것을 이어가자. 모두 짝을 짓고 나니 왼손 장갑이 남았다면 당연히 처음 무더기에는 왼손 장갑이 오른손 장갑보다 더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확히 몇개인지 세지 않고도 이 방법으로 두 집합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다. 왼손 장갑마...

    2026.03.04 20:11

  • [역사와 현실]메가시티와 대동법
    [역사와 현실]메가시티와 대동법

    정부가 수도권 일극체제와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행정통합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5극3특(5대 메가시티, 3대 특별자치권역)’ 체제가 그것이다. 5대 메가시티는 수도권, 동남권(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대전·충남, 전남·광주이고, 3대 특별자치권역은 강원, 전북, 제주이다. 메가시티는 교통망을 연결해 전체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는 것을 목표로, 특별자치권역은 지역 특성에 맞는 산업 육성을 목표로 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5대 메가시티가 단순히 지역 내 교통망 연결을 최종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학과 직장을 찾아 서울과 수도권으로 가지 않아도 되고, 나고 자란 곳에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짜 목표일 것이다. 정부는 오는 6월3일 선거 전에 행정통합을 완료해 단체장을 선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원활히 추진되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고 한다. 추진이 잘 안 되는 곳에는 정치인들 간에 존재하는 복...

    2026.03.04 20:09

  • [기고]복합위기의 시대, 사회적 대화의 역할
    [기고]복합위기의 시대, 사회적 대화의 역할

    새 정부의 제1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다. 노동 현장을 지켜온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로서, 이번 경사노위 출범이야말로 복합위기의 시대를 돌파할 가장 실효적이자 지속 가능한 해법이라 확신한다.필자는 한국노총 위원장 시절, 스스로를 사대주의자 즉 ‘사회적 대화주의자’라 불렀다. 노사정이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합의를 도출하는 일은 더디고 어렵지만, 결국 우리 사회를 조금 더 진보하게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노무현 정부 시절 노사정위원회는 전력산업 분할 민영화 정책을 노사정 합의로 중단시켰다. 문재인 정부에서 경사노위가 가동될 때도 그러했다. 당시 노동계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국가 전체를 위해 결단했다. 탄력근로제 확대 논의에 협력하면서도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과 근로자대표제 개선 합의를 끌어냈다.오늘의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

    2026.03.04 20:08

  • [이용균의 초속 11.2㎞](야구는) 이제 삭발하지 않는다
    [이용균의 초속 11.2㎞](야구는) 이제 삭발하지 않는다

    3연패까지는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6연패가 넘어가면 미소가 사라진다. 두 자릿수 연패가 가까워지면 상황은 심각하다. 두산과 KT 사령탑을 지낸 김진욱 전 감독은 “연패가 길어지면 어떻게 아는지 우리 집 강아지도 눈치를 본다”고 말한 적이 있다.선수단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연패 숫자가 ‘10’을 넘으면 자연스럽게 ‘행사’가 열린다. 예전엔 다들 라커룸에 ‘바리깡’ 2~3개씩은 두고 있었다. 중고참급 선수들이 솔선수범에 나선다. 서로가 서로의 머리를 밀며 연패 탈출 의지를 다진다. 다음날 다들 일부러 모자를 벗고 빡빡머리를 드러낸 채 그라운드에 나와 경기 전 연습을 한다.삭발을 하면 귀신같이 연패가 끝나는데, 그게 삭발 때문인지, 불운이 다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스포츠심리학에서 이를 ‘응집력 강화’라고 부른다. 집단의 동질성을 높이고, 이에 따른 수행능력 향상 효과를 기대하는 행위다.스포츠심리학에서 응집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사회 응집력(Social C...

    2026.03.04 20:06

  • [교육 돌아보기]‘인지도’ 교육감 선거, 올해로 끝내야 한다
    [교육 돌아보기]‘인지도’ 교육감 선거, 올해로 끝내야 한다

    오는 6월에는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가 있다. 대체로 지방선거에 눈길이 가겠지만 학부모와 학생은 향후 교육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교육감 선거를 주시할 것이다. 교육감은 관할 지역 교육 예산 집행권과 인사권을 한 손에 쥐고 미래 세대 가치관을 형성하는 막강한 자리라, 소위 ‘교육 소통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화려한 수식어 뒤에는 ‘깜깜이 선거’라는 부끄러운 그림자가 따라붙는다.누구나 입을 모아 미래 세대 교육을 걱정하면서도 교육감 선거는 여전히 유권자에게 후보자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치러진다. 지방선거와 비교해도 유권자는 교육감 후보가 누구인지, 어떤 차별성이 있고 어떤 교육 철학을 가졌는지 모른 채 투표용지를 마주하는 일이 잦다.이와 관련해 필자의 경험을 소개하려 한다. 수년 전, 필자는 모 교육단체로부터 교육감 출마를 진지하게 권유받았다. 필자가 전혀 준비돼 있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결심만 하면 정책, 자금, 인력을 모두 지원하겠다”며 설...

    2026.03.04 20:05

  • [예술과 오늘]인상주의 전시 유감
    [예술과 오늘]인상주의 전시 유감

    방학 기간에 맞춰 대형 전시공간에서는 이른바 블록버스터 전시가 선을 보인다. 신문사나 방송사, 혹은 전시 전문업체가 외국의 미술관 등에서 소장품을 빌려와 치른다. 다른 곳들은 그만한 예산을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열리는 대형 전시는 대부분 서양미술, 그중에서도 인상주의 전시(후기인상주의 포함)가 주를 이루었다.상당한 비용을 투입한 기획사 입장에서 최대한 수익을 보장받으려면 많은 관람객을 동원해야 하니 대중이 좋아한다고 여기는 작품을 전시해야 하고 그런 맥락에서 선택되는 것이 인상주의다. 그림 안에 인지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 난해하지 않고 상당히 익숙해서 거부감도 없는 인상주의 그림이 가장 적합한 사례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이 어려워하거나 낯설어한다. 이처럼 블록버스터 전시는 철저히 상업적인 계산 아래 조율된다.그래도 매번 유사한 작품을 빌리는 데 머물지 않고 뛰어난 작품을 잘 선별하는 안목과 능력이 기획사에 요구된다. 뛰어난 미술작품은 ...

    2026.03.04 20:04

  • [정동칼럼]불확실성의 시대에 산다는 것
    [정동칼럼]불확실성의 시대에 산다는 것

    한때 삼성그룹을 모티브로 인기를 끌었던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죽음과 환생, 복수의 서사가 중심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미래를 미리 아는 한 인물의 ‘실패 없는 베팅’이 자리한다. 그가 하는 투자, 사업, 결정은 백퍼센트 성공한다. 왜냐하면 장차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투자가 이렇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하지만 그런 세상은 없다.2000년대 초 유행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한국 사회의 전환을 상징한다. 전자는 노동소득의 한계를, 후자는 불안한 변화에 적응하는 인간형을 강조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성실한 임금 축적 모델은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축과 근면이 미래를 보장하던 확정성의 시간은, 변화를 감지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확률의 시간으로 이동했다.산업사회에서 임금은 단순한 소득이 아니었다. 매달 반복되는 보수는 삶의 예...

    2026.03.04 20:03

  • [문화와 삶]잘 사는 삶의 기준
    [문화와 삶]잘 사는 삶의 기준

    지난 2월24일, 대구에 있는 ‘책방아이’에서 독자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날은 대구에 대설주의보가 발표된 날이었다. 대설주의보는 통상 24시간 동안 눈이 5㎝ 이상 내릴 것이 예상될 때 발표된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곧잘 접하던 소식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동대구역에 도착했을 때도 놀라지는 않았다. 단지 맑은 서울 날씨와 대비되어 약간 신기했을 뿐이었다. 오히려 대구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눈은 처음이라는 듯 눈을 홉뜨고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 혹시라도 넘어질까 살금살금 발을 떼는 사람, 벤치 위에 쌓인 눈을 신기한 듯 가만히 쥐어보는 사람, 장화를 신고 눈길 위를 신나게 미끄러지는 사람이 보였다. 대구에 오랜만에 큰 눈이 내렸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거센 눈발을 헤치고 책방에 도착했다. 책방 앞에는 곰을 똑 닮은 눈사람이 서 있었다. 이 커다란 ‘눈곰’을 만들기 위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쳤을 것이다. 눈이 귀한 지역에서 눈은 이렇게 환대받...

    2026.03.04 20:02

  • [겨를]3월의 숨
    [겨를]3월의 숨

    겨우내 언 땅에 시큰둥했던 강아지가 온종일 마당에 나가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번씩 얼굴과 발을 씻겨야 한다. 무른 흙을 밟고 다니며 곳곳에 코를 파묻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따라 나도 흙을 한 줌 쥐고 코를 가까이 대본다. 미지근해진 흙에서 약간의 단내와 옅은 시큼함이 올라온다. 살아 있는 것의 냄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강아지가 귀를 쫑긋 세운다. 뿌리들이 내뱉는 숨소리가 들리는 걸까.아직 삭막한 3월의 땅이지만 그 아래에서는 미생물이 깨어나고 공기가 토양의 틈을 부지런히 오간다. 어느덧 시골 생활 3년째. 마당을 가꾸고 흙을 만지는 일에 여전히 서투르지만, 흙이 숨 쉰다는 말이 문학적 은유가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토양은 숨을 쉰다. 흙의 허파는 흙 속의 생명체들이다. 박테리아, 연체동물, 절지동물, 식물의 뿌리들이 산소를 쓰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낸다. 이 기체 교환은 육체를 가진 모든 것과 다르지 않다. 몸을 가...

    2026.03.04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