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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6
  • [정동칼럼]소소한 존재들의 헌법
    [정동칼럼]소소한 존재들의 헌법

    지난겨울 한국 사회는 속성으로 헌법을 공부했다. 헌법의 귀퉁이 난제들에 골몰했고,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생중계를 강의처럼 지켜보았다. 여름마다 장마가 오듯 상처받은 헌법은 이제 개헌론에 직면하고 있다.헌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할지, 4년 중임으로 할지를 규정한 법인가?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누가 임명할지 규정한 법인가? 개헌론은 누구의,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주장인가.헌법이란 대한민국은 어떤 국가인지, 그 땅에 살아가는 시민들에게는 어떤 권리(와 의무)가 있는지, 그 시민들을 위해 봉사할 공권력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를 규정한 사회계약이다. 헌법은 총강, 기본권, 그리고 통치구조로 구성돼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제1조 제2항처럼 대한민국의 기본 구성에 대한 규정이 총강이다. 개헌론이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4년 중임제니 하는 것들은 통치구조에 해당한다. 가장 중요한,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실체는...

    2025.04.20 20:20

  • [아침을 열며]‘초고속 산불’이란 말장난
    [아침을 열며]‘초고속 산불’이란 말장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지난 15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브리핑룸에서 행정안전부, 산림청, 기상청 등이 정책설명회를 개최했다. 안건은 ‘초고속 산불 대비 주민대피체계 개선방안’이다.안건에 대한 보도는 다음날(16일)로 예정된 터였다. 기자들을 하루 일찍 불러 뭘 하려는지 싶었다. 혹시나 역대 최악의 산림·재산·인명피해를 낸 영남지역 대형산불을 놓고 대응의 문제점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있을까 싶었다.역시나 사과 따윈 없었다. 홍종완 행안부 사회재난실장은 “전력을 다해 대응했지만 기존의 대응체계로는 일부 한계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잠시 두 눈을 의심했다. 이것은 반성인가 사과인가. 아니면 참사를 지켜본 ‘관전평’인가. 인정할 수밖에 없다니. 혹여 인정해야 해서 분하고 억울한가.사과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해볼 수 있다. 우선 사과할 만큼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일 테다. 홍 실장의 말처럼, 전력을 다했는데 ‘대응체계’에 문제가 ...

    2025.04.20 20:18

  • [시선]좌와 우가 악수하는 곳, 성차별
    [시선]좌와 우가 악수하는 곳, 성차별

    “A와 B는 같은 학과에서 어떻게 그리 잘 지냈대?” 내가 있는 학교의 교수 A와 B를 언급하며 몇년 전 지인이 했던 질문이다. 이 둘은 사회적으로 이름난 교수인데 A는 ‘이른바’ 진보, B는 ‘이른바’ 보수 정권의 대통령 인수위나 전략기획팀에 영향력이 꽤 크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지인은 정치적 신념이 딴판인 A와 B가 어떻게 같은 학과에서 갈등 없이 지냈는지 물어본 것이다. “정치 지향적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달라 뵈는데, 젠더 관점에서 보자면 그 둘은 아주 똑같거든.” 망설임 없는 나의 즉답에 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2017년 촛불혁명 광장의 열기를 몰아 집권한 당시의 여당이 ‘적폐 청산’을 앞세웠듯, 2025년 ‘빛의 혁명’ 결과로 정권이 들어선다면 이번 여당은 분명 ‘내란 종식’을 내걸 것이다. 부끄럽고 부정한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새판을 짜겠다는 결연한 다짐, ‘청산’과 ‘종식’만큼 유권자에게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을 주는 정치적 구호도 없을 것이다. ...

    2025.04.20 20:18

  • [詩想과 세상]이것이 날개다
    [詩想과 세상]이것이 날개다

    뇌성마비 중증 지체·언어장애인 마흔두살 라정식씨가 죽었다.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 친구들 여남은명뿐이다.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점심식사 중이다.떠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0%·$&*%ㅒ#@!$#*?(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주실 거죠?)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트렸다.$#·&@\·%,*&#……(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일그러뜨리며 발버둥...

    2025.04.20 20:18

  • [기고]대한민국 ‘비상계엄령’은 ‘인권침해령’
    [기고]대한민국 ‘비상계엄령’은 ‘인권침해령’

    대한민국에서 국가폭력은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대통령의 한 문장으로부터 시작됐다. 1948년 10월21일, 대한민국 정부가 선포한 역사상 첫 비상계엄은 전남 동부 일대에서 발생한 ‘여순사건’을 진압한다는 명분 아래 시행됐다. 비상계엄하에 이뤄진 군경의 대규모 진압 작전으로 인해 약 1만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이들 중 상당수는 재판 절차 없이 집단적으로 불법 처형됐다. 같은 해 11월17일, ‘제주 4·3사건’에 적용된 두 번째 비상계엄도 최소 3만여명의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희생시켰다.이후로도 계엄령은 권위주의 정부들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동원됐다. 1972년 10월17일 유신체제 시행을 위해 포고된 비상계엄하에서는 긴급조치가 연이어 발동되며 양심과 사상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이 광범위하게 침해됐고 수많은 양심수가 투옥됐다. 1980년 5월17일 전국으로 확대된 비상계엄은 광주 시민에 대한 무력 진압으로 이어졌고, 계엄군은 ‘공공질서...

    2025.04.20 20:15

  • [지금, 여기]산 자를 위해 투쟁하라
    [지금, 여기]산 자를 위해 투쟁하라

    때 이른 선거의 계절이 찾아왔다.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TV 토론과 지역 유세 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조용하고 차가운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살인기업은 어디인가요?”를 묻는 시민 투표다.4월28일 ‘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날’을 기념해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 민주노총은 2006년부터 매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진행해왔다. 산재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노동자 건강과 안전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촉구하는 유서 깊은 행사이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으면서 ‘왕중왕’을 뽑는 투표를 하게 된 것이다. 엄선된 아홉 후보 중에서 두 곳에만 투표를 할 수 있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업종별로도 제련소와 중공업 같은 전통 제조업에서부터 반도체 생산 같은 첨단 제조업, 건설업, 플랫폼 유통업체까지 골고루 포진한 가운데 후보들의 이력이 워낙 화려해서 선택이 쉽지 않았다. 경쟁에 밀려 안타깝게(!) 후보에 오르지 못한 과거 수상자들의 이...

    2025.04.20 20:15

  • [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이재명 당선 때 재판 중단 여부 밝혀라?
    [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이재명 당선 때 재판 중단 여부 밝혀라?

    지난 8일자 한국일보에는 ‘이재명 대통령 당선 땐 재판 중단?… 헌법 84조 해석 묻자, 대법·헌재 변죽만’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이 중단돼야 하나, 아니면 계속해도 되나라는 문제를 두고 한국일보가 대법원·헌법재판소·법무부·법제처에 법령 해석을 의뢰했더니, 대법원은 이를 “어물쩍” 넘겼고 헌재는 “사실상 발을 뺐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는 사법기관이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하면서 “국민의힘 소속 율사 출신 한 의원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는 사법기관이 조기 대선에 앞서 소추의 명확한 의미와 대통령 임기 중 재판이 중단되는지 여부를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썼다.아닌 게 아니라 대법원은 왜 어떤 법률적 문제가 생길 경우 꼭 이에 관한 소송이 없더라도 친절하게 법령의 일반적 해석론을 펴고 나아가 그 문제의 해결에 대한 견해를 밝혀 당장의 불확정성을 제거해 주고 또 당사자나 ...

    2025.04.20 20:14

  • [조현철의 나락 한 알]올해, 봄은 언제 올까
    [조현철의 나락 한 알]올해, 봄은 언제 올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인가 했더니 4월 중순에 눈보라가 쳤다. 파면으로 일단락되나 했더니 집으로 돌아간 윤석열은 “다 이기고 돌아왔다”며 개선장군인 양 행세한다. 우두머리가 쫓겨났는데 졸개들은 여전히 활보한다. 국회 몫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다 탄핵소추된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는 헌재의 기각 판결로 직에 복귀하자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을 지명하며 ‘헌재 알박기’에 나섰다. 헌재가 제동을 걸긴 했지만, 대통령이 파면돼도 직속 수하가 권한을 이어받는 체제에서 일어날 만한 일이 일어났다. 윤석열의 분탕질을 수습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세월호 참사, 박근혜 파면, 코로나19. 우리는 때마다 ‘이제는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는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냥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그건 현상 유지가 아니라 퇴행이다. 그렇게 되도록 놔두기에는 지난겨울부터 광장에 쏟아부은 열정과 시간이 너무 아깝다. 해서, 이전의 일상으로는 절대 돌아가지...

    2025.04.20 20:12

  • [반복과 누적]천부적 재능, 악마적 태도
    [반복과 누적]천부적 재능, 악마적 태도

    카녜이 웨스트(사진)는 스타다. 자신이 속한 힙합 신을 넘어 대중음악 전체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따라서 그는 빌보드가 규정한 것처럼 ‘팝’ 스타가 된다. 그렇다. 스타는 장르로 구속할 수 없다. 시제마저 뛰어넘어 과거의 유산을 호출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카녜이 웨스트는 걸작이라 인정받는 음반도 여럿 발표했다. 상업적, 비평적 업적에 관한 한 그의 성취에 이견은 있을 수 없다.그중 2010년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와 2016년의 <The Life Of Pablo> 등은 음악적으로 깔 구석이 거의 없다. 전자가 수많은 장르를 탐욕스럽게 먹어치운 팽창의 앨범이었다면 후자는 지독한 절제의 결과물이었다. 감탄을 부르는 음악적 재능. 듣는 순간 천부(天賦)란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음악으로 빼곡했다.데뷔하고 20년이 지난 지금, 카녜이 웨스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예술가가 겪을 수...

    2025.04.20 20:12

  • [한입 우리말]이름 때문에 오해받는 큰 소, 황소

    나의 옛 이름은 한쇼다. 우리말에서 ‘한’은 크다 또는 많다를 뜻한다. 한쇼는 큰 소란 의미다. 어느 날 사람들이 나를 황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멋진 누런 황금빛 털옷을 입은 건 사실이지만 겉모습만 보고 지레짐작으로 황소라고 부르는 것 같아 살짝 아쉽다. 누런색 털옷 때문에 그렇게 여길 수도 있겠으나 황은 한자 黃과는 다른 우리말에서 비롯되었다.‘한’은 참으로 신기한 글자다. 원형 그대로 활발히 활동하기도 하지만 나처럼 ‘황’ 또는 ‘할’로 다양하게 변주하며 우리말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한숨은 길게 몰아 크게 내쉬는 숨을 말한다. 슬프거나 답답할 때 자기도 모르게 큰 숨을 쉬게 된다. 그게 한숨이다. 한바탕, 한걸음, 한밭도 크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나와 ‘성’이 같은 황새도 마찬가지다. 황새를 보고 누런 새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황새의 옛 이름은 한새이고, 이는 큰 새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새 중 하나가 황새 아닌가. 예나 지금이나 나와 성...

    2025.04.20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