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경향신문

오피니언

  • [공감]애쓰고 있다는 마음
    [공감]애쓰고 있다는 마음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이 조용히 파문을 만들고 있다. 보고 감동한 이들이 대관해 상영회를 열 만큼 가슴을 흔드는 힘이 있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고, 진료실에서 만나는 친구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덤이었다.주인공 주인이는 부산스럽고 쾌활한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친구와 잘 어울리고, 공부보다 태권도를 좋아하고, 진로 상담을 할 때 선생님과 농담을 하는 사회성 좋은 아이다. 그런데 아동 성폭행범이 출소 후 동네로 오는 걸 반대하는 서명을 받으려는 친구와 다투면서 숨겨온 사실이 드러난다. 그에게도 트라우마를 남긴 오래전 사건이 있었다. 주인이뿐 아니라 가족의 행동도 모두 그 사건과 관련이 있다.주인이가 쾌활하고 밝지만 진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몸을 쓰는 운동에 몰두하는 것, 엄마가 조용히 술을 마시고 약을 먹어야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 아빠가 멀리 시골에서 자연인으로 사는 것, 동생이 마술을 익히는 데 몰두하는 것도 모두 그 사건을 다루는 각자의...

    2025.11.04 19:59

  • [경제직필]차악을 윤허받아 기쁜가
    [경제직필]차악을 윤허받아 기쁜가

    한·미 관세협상 결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민주당은 명비어천가를 부르고, 국민의힘은 아무 말 대잔치다. 내란 잔당의 정부 비난은 너무 저열해서 “한국의 우익에게는 이념이나 사상이 없다”던 어느 학자의 수년 전 비평이 새삼 떠오를 정도다. 전문성도 수권 능력도 남아 있지 않은 구체제 세력이 지금이라도 트럼프 반대 투쟁에 나선다면 최소한의 일관성은 인정해줄 만하다. 분명한 사실은, 이 말도 안 되는 120년 만의 을사국치 협상은 트럼프 제국주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최악 대신 차악을 ‘윤허’받고 기뻐하는 민주당의 자화자찬은 위선이다. ‘노 딜’이 낫다며 권력 주위를 맴돌다가, 선방했다며 태세 전환한 소위 전문가들은 참혹할 지경이다.이제라도 협상 결과의 위험 요소를 정확히 짚고 대응 방안을 모색할 때다. 한국 정부의 2000억달러 대미 투자에 약정 기한과 집행 기간이 구분되어 있다는 점부터 조심해야 한다. 투자 대상 사업을 확정하고 약정을 체결하는 기한은 트럼프 임기...

    2025.11.04 19:58

  • [이기수 칼럼] ‘검찰짓’ 공수처, 이름 빼고 다 바꿔라
    [이기수 칼럼] ‘검찰짓’ 공수처, 이름 빼고 다 바꿔라

    11월 첫날,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채 상병 순직사건 특검에 출두했다. 지난해 8월 소속 부장검사가 국회 위증으로 고발된 사건을 344일이나 대검에 늑장 통보해 수사를 지연시킨 혐의(직무유기)다. 갓 5년째, 그렇잖아도 신생 수사기관은 바람 잘 날 없었다. 수장까지 피의자로 소환된 사진 한컷이 묻는다. 도대체 이 벼랑에 서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가. 뭘 숨기고 있는가. 까질수록, 권력 냄새 진동한다. 김건희가 또 등장한다. 2021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범 이종호를 변호한 공수처 2부장검사(송창진)가 2023년 채 상병과 김건희 디올백 수수 사건을 수사한다. 이종호가 누군가. 검찰의 도이치 수사 개시 직후 김건희와 수십번 통화하고,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구명로비 수사선상에도 오른 이다. 그 부장검사가 2024년 이종호와의 연을 국회서 위증하고, ‘윤석열의 (외압설) 통신기록’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막았다는 거 아닌가. 지난해 2~3월엔 1부장검사(김선규)가 “(...

    2025.11.04 08:49

  • [세상 읽기]어떤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가
    [세상 읽기]어떤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가

    수능 시험일이 다가온다. 수능을 치른다고 곧장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어른으로 가는 문턱을 넘는 일인 건 분명하다. 부모의 보호에서 자유로워지는 나이라는 뜻이다. 한편으로 부모에게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20대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르겠다. 대학생인 자녀의 성적 정정을 요청하는 부모가 비일비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국어사전에서 ‘어른’이라는 말을 찾으면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첫 번째로 나온다. 의미를 뜯어보면 나이가 들어 다 자랐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목적을 요약하면 민주시민 양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른이 되는 법은 어디에서 어떻게 배워야 할까.‘어른’의 다른 풀이로 ‘결혼을 한 사람’도 있다. 관혼상제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언어가 시대를 반영한다면 이 풀이는 이제 사전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 여부가 어른을 가르는 시대는 진작 끝났다. ...

    2025.11.03 20:14

  • [정동칼럼]AI는 ‘꿈의 노동자’가 아니었다
    [정동칼럼]AI는 ‘꿈의 노동자’가 아니었다

    2025년 7월, ‘오픈런’ 열풍을 일으킨 한 베이글 프랜차이즈에서 20대 노동자가 과로로 숨졌다. 유족 측은 주 80시간에 육박하는 노동, 심야 연장 근무, 제대로 식사조차 못했다는 메시지가 그의 마지막 기록이라며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다. 회사는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여러 증언들은 이와 다른 정황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계는 세 달 단위의 단기 계약, 잦은 지점 이동, CCTV 감시와 사소한 실수에도 작성해야 했던 사건 보고서 등 과도한 통제 시스템을 문제로 지적한다.이 비극은 인간의 한계를 무시한 노동 구조의 실상을 고통스럽게 드러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바로 그 인간의 한계가 ‘꿈의 노동자’에 대한 환상을 부추겨왔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의 장시간 노동, 청년층의 피로, 감정노동의 일상화는 이미 오래된 문제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새로운 형태로 변주하고 있다. 지치지 않고, 불평하지 않으며, 감정 기복도 시간...

    2025.11.03 20:13

  • [신주백의 사연 史淵]1919년 4월10일의 장소성, 대한민국 뿌리 찾기
    [신주백의 사연 史淵]1919년 4월10일의 장소성, 대한민국 뿌리 찾기

    상하이시 황푸구는 진션푸로 22호의 서양 가옥 대한민국 국호 확정한 기념비적 장소로 특정 이광수가 ‘나의 자서전’서 제1회 임시의정원 열었다고 묘사한 장소와 필자가 찾아가 확인한 진션푸로 22호 인상과 유사 따라서 첫 번째 임정업무 그곳서 보았을 가능성 높아 미궁 속의 그곳을 포함해 장소에 대한 종합 접근으로 정부 수립 80주년 때까진 상하이의 임정 주소지 모두 해명했으면 좋겠다이번 여름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역사 탐방 기회가 많았다. 그중 MBC와 함께 상하이에서 임시정부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했다. 상하이를 방문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러봤을 곳을 필자도 찾아다녔다. 그리고 임정과 관련해 한국인이 많이 가지 않는 곳도 다녀왔다. 그곳은 1919년 4월10일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확정한 기념비적인 장소라고 상하이시 황푸구가 특정한 장소다.중국 측의 의견대로 하면 그곳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

    2025.11.03 20:11

  • [박래군의 인권과 삶]누구도 법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박래군의 인권과 삶]누구도 법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인기작이었다.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은 학교 시절 폭력을 당한 뒤 선생님으로부터 오히려 폭행을 당한다. 선생님은 피해자인 동은이 아니라 힘센 부모를 둔 가해자들을 대놓고 편들었다. 이 드라마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면서 학교폭력 문제에 우리 사회가 더 큰 관심을 갖게 됐다.로봇개, 안전대책이냐 노동자 감시냐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의 산업재해 국가라고도 하고, 대통령이 나서서 산업재해를 근절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도 법 위에 군림하면서 산업안전을 위한 교섭은 무시한 채 ‘로봇개’를 도입한 회사가 있다. 우리나라 철강업계 1위인 현대제철이다.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는 지난 9월6일 원료공장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현장 사진을 보면 지붕을 받쳐주던 기둥이 기울면서 한쪽으로 지붕과 함께 건물이 넘어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고 발생 닷새 뒤, 안전대책도 세우지 않은 채 하청노동자를 사고 현장에 ...

    2025.11.03 20:03

  • [기고]교육, 주체성을 북돋는 힘이 될 수 없을까
    [기고]교육, 주체성을 북돋는 힘이 될 수 없을까

    가을이 깊어지며, 다시 ‘교육’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사람의 목은 이렇게 그리지 않아. 다시는 이렇게 하지 마.” 초등학교 3학년 미술 시간, 선생님은 내 그림을 가리키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림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나는 그림을 못 그린다’는 낙인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몇년 뒤 외국 유학 시절 나는 현지 아이들이 그린 인물화를 보았다. 나보다 훨씬 비현실적으로 그렸지만, 그들은 가족의 따뜻한 칭찬과 격려를 받고 있었다. 그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고, 교육 방식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동아시아권에서는 오랫동안 치열한 입시경쟁이 이어져왔다. 그러나 ‘하나의 정답’을 추구하는 주입식 교육은 사회의 엘리트를 길러내는 동시에 비판적 사고를 기를 기회를 빼앗고 학생들의 복종 의식을 강화했다. ‘질문하는 법’이 아니라 ‘정답 맞히는 법’을 가르친 것이다.이러한 교육의 영향은 이미 사회와 일상의 여러 영역으로 스며들었다. 많...

    2025.11.03 20:02

  • [생각그림]낭만 고릴라
    [생각그림]낭만 고릴라

    나는 낭만 고릴라. 큰 덩치에 불룩 나온 배, 커다란 콧구멍 그리고 뾰족한 머리까지 좀 무섭게 생겼어요. 그러나 외모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지. 나는 꽃을 사랑하고 꾸미는 것을 좋아해요.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능력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 처음에는 다가오기 좀 힘든 외모지만, 같이 지내다 보면 점점 나에게 빠져들게 될 거예요. 그러나, 요즘 현실은…

    2025.11.03 20:00

  • [직설]혁신이 없었다는 게 문제다
    [직설]혁신이 없었다는 게 문제다

    엘리자베스 홈스라는 여성이 있다. 혈액 한 방울로 250가지 질병을 진단하는 의료키트 ‘에디슨’을 개발했다 주장한 그는 2014년 기준 10조원 이상 가치로 평가받은 벤처기업 ‘테라노스’ 최고경영자(CEO)였다. 한때 ‘여자 스티브 잡스’로 불릴 만큼 인기를 끌었지만 얼마 후 ‘에디슨’ 기술이 크게 과장됐다는 폭로가 나왔다. 기업 가치는 0원으로 추락했고 그는 사기죄로 수감됐다. 금발의 매력적 외모와 집안, 학력, 언변 등 다른 장점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런 건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를 세상에 알린 그 기술, 그 혁신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나머지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새벽배송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심야(0~5시) 배송을 금지하자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찬성 의견도 있지만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다. 새벽배송은 이미 일상이 되었고 맞벌이 부부 등 꼭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다는 의견, 이 노동을 원하는 노동자들도 있다는 ...

    2025.11.03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