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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4
  • [경향의 눈]다 끝났다고? 아직은 아니야
    [경향의 눈]다 끝났다고? 아직은 아니야

    윤석열이 파면되기만 하면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 착각이었다. 12·3 내란부터 지난 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기까지 123일 동안 불면의 밤을 버텨왔는데도 바뀐 게 없다. 탄핵의 ‘약발’은 며칠 가지 못했다. 대통령 자격을 상실한 윤석열은 일주일을 관저에서 뭉개더니 마치 환영식에 나온 개선장군처럼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사저로 돌아갔다. 주먹을 불끈 쥐고 지지자들을 향해 웃어 보이는 모습은 지난달 서울구치소 석방 장면을 빼다박았다.“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5년 하나 3년 하나…” 자신의 처지를 망각해도 유분수지 파면당한 내란 우두머리의 초현실적 ‘정신승리’는 할 말을 잊게 만든다. 대체 누구를 이기고 돌아왔단 말인가. 더 기가 막힌 건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아니면 모른 척한다)는 것이다. 불법 계엄에 대한 일말의 사과도, 반성도 없었다. 피고인 자격으로 선 형사법정에서는 공소사실은 물론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인정된 기본적 ...

    2025.04.16 20:03

  • [겨를]‘모두의 AI’와 딥소트 혁신

    기술은 정말 가치중립적일까? 랭던 위너는 ‘기술의 정치성’이라는 논문에서 의미심장한 사례를 소개했다. 1920년대 뉴욕 롱아일랜드의 해변으로 향하는 도로의 다리가 의도적으로 낮게 설계돼, 버스가 통과하지 못하게 만들어졌다. 그 결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서민들은 해변에 갈 수 없게 됐고, 해변은 자동차를 소유한 부유층만의 공간이 됐다. 겉보기엔 단순한 건축 설계였지만, 실제로는 계층 간 차별을 구조화한 정치적 기술이었던 것이다.이는 기술이 겉으로는 중립적으로 보여도, 그 설계와 적용 과정에서 특정 가치를 반영하고 강화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인공지능(AI) 기술도 마찬가지다. AI 알고리즘이 채용 과정에서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이 특정 정치적 의견을 확산시키는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이는 기술이 단순한 도구가 아닌 사회적 가치와 권력관계를 담는 그릇임을 시사한다.이런 맥락에서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의 ‘모두의 AI’ 정책은 시의적절하나 더 깊은 ...

    2025.04.16 20:02

  • [경제직필]트럼프 관세와 상호주의, 다자주의
    [경제직필]트럼프 관세와 상호주의, 다자주의

    미국 건국의 아버지 알렉산더 해밀턴의 추종자였던 19세기 경제학자 헨리 캐리는 당시 영국이 자유무역을 앞세워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면서 관세 인상을 부르짖었다. 캐리의 주장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에 의해 연방 정책으로 채택됐다. 남북전쟁은 노예 해방이라는 허울로 장식됐지만 실상은 면화 수출에 의존하던 남부 농장주들의 반발에 따른 관세 내전이었다. 20세기 초에도 미국의 통상정책은 고립주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대공황을 심화시킨 1930년 스무트 홀리 고관세도 그 자장 안에 있었다.변화의 계기는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1934년 호혜관세법에 따른 저관세 국제주의로의 전환을 거치며 마련됐다. 뉴딜의 철학은 국가에 의해 관리되는 자유무역을 지향했다. 양국 간 품목별 교섭이 추진됐으되 양허는 국내 생산자와의 경합이 제한적인 품목을 대상으로 했다. 각국 경제 발전 차이와 국내 정책의 요구가 고려됐기에 국가들은 서로 동일한 시장 접근 조건을 제공할 의무가 없었다.뉴...

    2025.04.15 21:28

  • [공감]기록하지 않은 기억
    [공감]기록하지 않은 기억

    달리기를 한 지 몇년 됐다. 신던 운동화로 뛰다가 러닝화를 샀고, 앱을 설치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몇㎞를 몇분에 뛰는지 평균 속도를 관리하면서 동기부여가 되고 뛰는 거리가 늘고 속도가 빨라졌다. 1년이 지난 후 스마트워치를 사서 차고 나간 다음에는 몸이 더 가벼워지고, 심박수까지 관리가 되면서 더 많은 기록을 축적할 수 있었다. 어느새 그 기록이 기억이 되기 시작했다. 앱을 켜지 않고 뛰다가 한참 후 알게 되면 망연자실하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이미 숨을 헐떡이고 있지만, 기록은 남지 않은 것이니 사실상 뛰지 않은 것이다. 기록이 없으면 기억도 사라질 것이다.겨울에 실내 러닝으로 전환하면서 두 번째 문제가 생겼다. 러닝머신 위에서 설정한 속도에 맞춰 달리면 정확한 거리와 시간이 화면에 나온다. 그런데 스마트워치를 차고 뛰어보니 머신의 기록과 차이가 나는 것이다. 5㎞를 뛰었는데 워치는 아직 4.5㎞밖에 안 된다. 속도를 높이면 격차는 더 커졌다. 이제 그만 뛰고 싶지만 매번 ...

    2025.04.15 21:28

  • [송혁기의 책상물림]사람을 평가하는 일
    [송혁기의 책상물림]사람을 평가하는 일

    관중은 춘추시대에 제나라 환공을 첫 번째 패자(者)로 만든 인물이다. 하지만 힘에 의한 패도가 아니라 덕에 의한 왕도를 이상적인 정치로 추구해온 유교와 성리학의 관점에서 소환된 관중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150여년 뒤인 공자의 시대에 이미, 관중은 자신이 모시던 공자 규를 환공이 죽였을 때 따라 죽지 않고 오히려 환공을 도왔다는 행적 때문에 인(仁)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지목되곤 했다.그러나 공자의 생각은 달랐다. 환공이 제후들을 규합함으로써 약육강식의 침탈을 멈추게 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인(仁)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관중이 천하의 질서를 바로잡음으로써 백성들이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그가 없었더라면 중화 문명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라며 칭송했다. 작은 신의를 위해 헛된 죽음을 택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나 의미가 있을 뿐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의리마저 상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관중의 공적을 크게 인정한 것이다.공자...

    2025.04.15 21:27

  • [국제칼럼]트럼프발 ‘한덕수 출마’의 진실
    [국제칼럼]트럼프발 ‘한덕수 출마’의 진실

    지난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화에서 주목받은 것은 관세도, 방위비 분담금도, 미국산 LNG도 아닌 ‘한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였다. 보도를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인사말도 없이 “그런데 대선에 나갈 것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고민 중이나 결정 못했다”는 한 권한대행 답에 꼬리를 문 여러 해석이 주말을 지나며 ‘한덕수 차출론’으로 번졌다.트럼프 대통령은 왜 한 권한대행에게 대권 도전 의사를 물었을까. 인사치레로 던지기엔, 질문이 가볍지 않다. 한 권한대행 출마가 유력하다고 판단했을 리도 없다. 양 정상 통화는 한 권한대행 차출론이 본격 거론되기 전에 이뤄졌고, 거꾸로 트럼프 대통령의 질문이 차출론을 지핀 불씨가 됐다. 혹자는 중국 압박에 한국 협조가 절실한 트럼프 대통령이 한 권한대행에게 구애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는데, 그리 협조가 절실했다면 애초 한국이 ‘미국 삥 뜯는 국가’로 찍혀 관세폭탄을 맞는 일도 없었다....

    2025.04.15 21:27

  • [정희진의 낯선 사이]여성학이란 무엇인가, 계명대 여성학과의 경우
    [정희진의 낯선 사이]여성학이란 무엇인가, 계명대 여성학과의 경우

    “여성학자”라는 지칭이 있다. 이 단어를 접할 때마다 ‘여성’과 ‘학자’의 개념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두 표현 모두 논쟁적이기 때문이다. ‘여성학자’는 우리의 앎, 지식, 학문에 대한 인식을 뒤흔든다. 여전히 여성학자를 여성주의 연구자(feminist scholar)가 아니라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female)인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상당수 기관이나 대학들이 여성주의자를 뽑아야 할 때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단지 여성이라는 조건만 맞으면 선발하는 경우가 많다.내 생각에 여성학자는 학위가 있는 페미니스트를 긍정적으로 뜻하는 말인 듯하다. 여성학을 아예 학문으로 취급하지 않는 경우에 비하면, 그나마 고마운 일일까. 내가 가장 그리고 자주 곤란할 때는 사람들이 내 전공을 물을 때다. 나는 전공이 없다. 특정 학과에 대한 소속감도 없다. 대신 나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다학제적인 주제에 관심이 있다. 자주국방, 아내폭력, 식민지 남성성, 탈식민주의, 미군 ‘위안부...

    2025.04.15 21:21

  • [기고]막 오른 대선…국민이 변화와 혁신의 중심에 서야
    [기고]막 오른 대선…국민이 변화와 혁신의 중심에 서야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란 말은 권력의 유한함과 무상함을 상징한다. 아무리 강력한 권세도, 아무리 찬란한 영광도 결국엔 덧없이 사라진다는 이 교훈은 그동안 역사를 통해 수없이 증명됐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주 이 진리를 망각한 채 권력의 함정에 빠져 권좌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죽음을 맞기도 했다.8년 전, 우리 사회는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게이트’로 촉발된 국정농단 사건을 보면서 권력의 무상함을 생생히 목격했다. 당시 박근혜를 필두로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은 자신들의 부귀영화가 영원할 것처럼 무소불위의 힘을 남용하며 국민 위에 군림했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으로 임기 5년도 못 채우고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권력의 사유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이를 방치했을 때 국가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지금, 불행하게도 우리는 8년 전과 똑같은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며 집권한 대통령 윤석...

    2025.04.15 21:21

  • [이기수 칼럼] 모두 이재명을 본다
    [이기수 칼럼] 모두 이재명을 본다

    늦게 핀 벚꽃이 바로 졌다. 긴 꽃샘추위로, 매화·목련·벚꽃이 함께 핀 ‘4월의 요지경’도 잠시, 며칠 몰아친 비·돌풍·눈·우박에 후두둑 다 떨어졌다. 그새 윤석열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주권자인 국민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한” 죄였다. 3년 못간 윤석열 정권과 1주일 화려했다 사그라진 저 벚꽃이 닮았다.윤석열은 철면피다. 관저 나오며 “새 길을 찾겠다” 했고, 사저 들어가면서는 “다 이기고 돌아왔다”고 했다. 이런 정신승리가 없다. 아직 다 무너지지 않았다는 자기최면일 게다. 막후정치 해보겠다는 복심일 게다. 그러고보면 기는 꺾였어도, 한때의 집권당 친윤 지도부도, 그 ‘쌍권(권영세·권성동) 위 쌍전(전광훈·전한길)’의 극우집회도, 그를 탈옥시켜준 형사 재판부와 심우정 검찰도 그대로다. 한덕수가 윤석열의 ‘집사 변호사’ 이완규를 대통령몫 헌법재판관에 지명한 평지풍파도 일어났다. 내란의 잔불은 꺼지지 않았다.보수의 대선이 진창에 빠졌다. 첫 컷오프 전, 오세훈·유승민이 ...

    2025.04.15 18:22

  • [세상 읽기]파면 결정에 담긴 실마리
    [세상 읽기]파면 결정에 담긴 실마리

    넉 달 걸려 ‘윤석열 파면’을 맞았는데 기쁨의 유효기간이 나흘도 가지 않았다.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던 한덕수 권한대행은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지명을 감행했다. 지명된 이들의 면면도 놀랍다. 헌재 결정을 무를 수 없으니 헌재에 얼룩이라도 묻히겠다는 심산인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던 계엄 선포 담화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취를 부정하는 세력들과 맞서 싸워야 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김문수의 대선 후보 출마 선언이 이어받았다. 윤석열의 대장놀이는 유효기간이 늘고 있다.계엄을 떠받친 극우. 민주주의의 파괴를 정당화하고 지지할 준비가 된 세력이 있음을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모두 알게 됐다. ‘윤석열 파면’이 남긴 숙제는 계엄 이전의 민주주의 회복에 그칠 수 없다. 극우가 사라지고 나서야 민주주의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를 살려낼수록 극우의 세력화가 저지된다. 계엄 이후 우리는 극우를 살피기도 버거웠다. 그만큼 다시 세워야 할 민주주의가...

    2025.04.14 2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