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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4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전설에 담긴 자연주의 철학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전설에 담긴 자연주의 철학

    옛사람들은 사람살이에서 당장 실현해야 할 가치를 흥미로운 이야기에 담아 삶의 철학을 구현했다. 우리의 오래된 나무에 전해오는 갖가지 전설들도 속내에는 당시 사람살이에서 꼭 필요한 가치를 담았다.나무에 해코지를 하면 천벌을 받는다든가, 나무줄기에 천년 묵은 구렁이가 산다는 이야기를 비롯해 나라에 흉한 일이 벌어질 때면 나무가 울음소리를 낸다는 전설들이 모두 그렇다.경북 상주 상현리 반송에 얽힌 전설에는 자연주의 철학이 또렷이 담겨 있다. 500년쯤 된 이 나무는 나무높이 16.5m로, 반송 가운데에는 큰 규모에 속한다. 게다가 동서 방향으로 24m, 남북으로는 25m까지 고르게 퍼진 나뭇가지가 이뤄낸 수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반송이라 할 만큼 빼어나다.이 나무에는 나뭇가지를 꺾으면 천벌을 받는다는 흔한 전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경고성 엄포’까지 담겼다. 즉 이 나무의 가지를 부러뜨리거나 잎을 따는 것은 물론이고, 바닥에 저절로 떨어진 잎을 주...

    2025.04.14 21:24

  • [이대근 칼럼]국민의힘의 마지막 사명
    [이대근 칼럼]국민의힘의 마지막 사명

    매화,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개화 순서를 잊고 한 번에 피어나면서 온 천지에 꽃사태가 났다. 국민의힘에도 대선 출마예상자가 두 자릿수에 이르는 출마사태가 났다. 왜 대선을 치르게 됐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 좋은 계절을 놓칠세라 너도나도 화려한 꽃무리를 이루고 있다. 무도한 권력이 기어코 헌정 질서를 되돌릴 수 없게 파괴했다면 볼 수 없었을 봄날 풍경이다.시민들이 다시 자유의 숨을 쉬고, 국민의힘 출마자들이 봄 잔치를 하는 일상이 가능한 것은 헌정 질서를 회복한 덕이다. 헌정 질서는 산소와 같아, 사라질 위기에 처해서야 그 중요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존재다.국민의힘은 이번 대선에서 집권을 못하더라도 제1야당이 된다. 민주주의에서 야당은 집권 세력 견제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민주당 계열 정권이든 국민의힘 계열 정권이든 집권 세력이 권력을 대하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같다. 권력을 분산하기보다 집중하려 하고, 제한하기보다 확장하려 하고, 자제하기보...

    2025.04.14 21:24

  • [박래군의 인권과 삶]28세 청년 활동가 P에게
    [박래군의 인권과 삶]28세 청년 활동가 P에게

    P야, 내란의 밤부터 지난 파면 결정까지 이어진 광장에서 스태프가 되어 뛰어다니는 너를 보았다. 폭설이 내리고, 살을 에는 북풍이 몰아치는 남태령과 한남동에서 밤을 지새우는 너를 SNS를 통해 보았다. 그 밤을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하지만, 그때 밤을 같이 지새우지 못한 미안함보다 더 큰 미안함이 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쓴다.28세의 청년 활동가인 너는 내게 물었다. 열일곱살에는 세월호 참사, 스물두살에는 이태원 참사를 겪은 1997년생인 너. “우리 97년생은 저주받았어요. 세상은 바뀔까요?” 내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었겠니? 인권운동 오래 한 것밖에 내세울 게 없는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바뀌겠지, 아마 변할 거야.”이번엔 탄핵에 안주하지 말자P야, 너에게는 세월호도, 이태원도 남의 일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많이 울었고, 사건 해결을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다. 동료들과 대화의 장도 만들고, 추모 행사에도 친구들을 모아서 ...

    2025.04.14 21:23

  • [생각그림]당근이세요?
    [생각그림]당근이세요?

    당근~ 당근~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과의 어색한 만남입니다. 다 당근이시죠? 서로 어색한 인사를 하며 어서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싶어 합니다. 재빨리 물건을 대충 확인하고, 후다닥 현금이나 휴대폰으로 물품 대금을 지급합니다. 눈도 못 마주치고 꾸벅 인사를 하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빠른 걸음으로 갈라섭니다. 그리고 한숨 돌리고 나서야 물건을 꼼꼼히 살펴봅니다. 누구에게는 필요 없고, 누구에게는 필요한 물건을 사고파는 중고장터. 낯선 사람들을 만날 일이 없어진 이 시대에, 첨단 기술이 만들어주는 타인과의 새로운 연결고리입니다.

    2025.04.14 21:23

  • [직설]애순이는 좋은 사람이니까?
    [직설]애순이는 좋은 사람이니까?

    “본연의 공약은 없는가? 남 욕하느라 돈만 쓰고 댕기는 것 같은디?”최근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대사 한 대목이다. 제주 도동리 어촌계장 선거에서 경쟁자 오애순(문소리)에 ‘네거티브’ 공세를 퍼붓는 부상길(최대훈)에게 도동리 주민이 한 질문이다. 그런 공세에도 애순은 당당히 계장 자리에 올라 그를 지지한 주민들과 가족, 시청자에게 감동을 준다. 그런데 사실 애순을 당선시킨 것도 ‘네거티브’였다. 부상길이 바람피웠다는 소문을 낸 것이다. 애순 본연의 공약이 있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해외는 몰라도 한국 시청자들은 여기서 이상한 점을 거의 못 느꼈을 것이다. 어쨌든 부상길은 나쁜 사람이고 애순은 좋은 사람이니까.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이번 선거는 무엇보다도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계기여야 한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졌다. 준비한 동영상에서 온화한 모습을 보인 것은 반대파들이 퍼트려 온 부정적 이미지를 벗으...

    2025.04.14 21:23

  • [기고]‘재난 최초 대응자’ 공무원의 건강과 안전
    [기고]‘재난 최초 대응자’ 공무원의 건강과 안전

    지난 3월 경남에서 시작된 산불은 경북, 울산 등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는 31명에 이른다. 이 중 산불 진화 과정에서 안타깝게 사망한 사람도 5명으로 확인된다.산불 진화가 마무리된 후, 조속한 피해 복구와 이재민의 일상 회복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 그러나 이에 그쳐서는 안 된다. 다시는 대규모 국가적 재난이 재발하지 않도록, 적어도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원인을 철저히 되짚어 보아야 한다. 진화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근본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정부는 긴급한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사람의 안전도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비상 상황이나 재난 현장에서 가장 먼저 대응하는 사람들을 ‘최초 대응자(First Responder)’라고 한다. 대규모 재난 상황에서는 소방, 경찰뿐만 아니라 산림청 등 중앙...

    2025.04.14 21:23

  • [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숲이 없는 미래는 없다
    [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숲이 없는 미래는 없다

    산불은 산림을 태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수질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산불 발생에서 또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산사태와 홍수 그리고 탄소다숲은 인류의 동반자이자 미래다. 좀 더 가꾸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미래를 다루는 공상과학 영화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나무가 있는 미래와 그렇지 않은 미래. 2100년 이후에도 인류가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아남아 있는 밝은 미래를 그리는 영화 대부분은 나무, 꽃, 곤충, 동물이 공존하는 식생이 가득한 초록색 숲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이뿐만 아니라 화성을 탐사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영화에서도 결국 인간의 생존을 결정짓는 것은 식물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맞이하고 싶지 않은 척박한 미래를 그리는 영화들은 대부분 어두운 색의 배경에 숲은 고사하고 단 한 그루의 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숲이 없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은 어떤가....

    2025.04.14 21:19

  • [기자칼럼] 트럼프가 UFC를 찾은 이유
    [기자칼럼] 트럼프가 UFC를 찾은 이유

    키드록의 요란한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입장한다. 과격하기로 이름난 종합격투기 UFC 경기장이다. 지난주 토요일 밤, 79세의 트럼프는 피로를 잊은 채 격투기 경기장을 찾아 새벽 1시까지 다섯 경기를 내리 관람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DNI) 등 그의 측근 혹은 충복들을 거느린 채 위세를 과시했다.세계를 상대로 고율의 관세를 퍼붓던 트럼프가 미국 국채 시장이 요동치자 한발 물러서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아마 트럼프는 링 위에서 상대방에게 무차별적 공격을 퍼부은 뒤 포효하는 승자의 모습에 자신을 이입했을 것이다. 현실에서 일방적 승리를 거두지 못하니, 그런 식으로라도 도파민을 공급해야 했다.트럼프는 UFC의 오랜 팬이다. UFC는 전통이나 품위, 규칙과는 거리가 멀다. 주짓수, 무에타이, 태...

    2025.04.14 20:28

  • ‘소년의 시간’ 속 비극은 이미 진행되는 중이다, 당신 아들의 방과 스마트폰 속에서 [플랫]
    ‘소년의 시간’ 속 비극은 이미 진행되는 중이다, 당신 아들의 방과 스마트폰 속에서 [플랫]

    “내가 아무 것도 안 한 것 믿어?” “당연히 믿지. 넌 내 아들이잖아.” 지난 3월 13일에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 1화에서 이른 아침부터 경찰들에게 살인 혐의로 잡혀간 13살 소년 제이미의 질문에, 영문도 모르고 쫓아와 동석 보호자가 된 아버지 에디는 답한다. 경찰의 사무적이지만 꽤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국선 변호사를 선임하고 취조에 동행하는 과정 동안 에디는 계속해서 오늘 아침부터 자신과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날벼락처럼 덮친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다 첫 화 말미, 경찰은 제이미가 전날 저녁 같은 학교 여학생인 케이티를 흉기로 찌르는 CCTV 증거 영상을 보여준다. 그날 아침 갑자기 들이닥쳤다고 생각했던 파도는 실은 이미 그 전에 밀려왔던 것이다. 그저 그 사실을 몰랐을 뿐. 그렇다면 이 파도는 살인이 벌어진 어젯밤에 시작된 걸까. 살인의 동기는 언제부터 형성된 걸까. 언제 어떤 시간을 거쳐 제이미는 살인자가 되었을까. <소년의 시간&...

    2025.04.14 15:24

  • [詩想과 세상]무
    [詩想과 세상]무

    시골집 텃밭에 쭈그려 앉아 무를 뽑았다희고 투실투실한 무였다너희들 나눠 주고도 이걸 다 어떻게 하냐시장에 나가서라도 팔아 볼거나어머니는 뜻하지 않은 욕심이 생겼다머릿속을 텅 비게 해 주는 무였다손이 부지런히 움직였고 마음은 쉬었다뽑아낸 자리마다 근심을 묻었다이 무를 숭숭 썰어 넣고 국을 끓이면 얼마나 시원하려나내 근심 묻은 자리마다 무가 다시 자라날 것을어머니도 알고 나도 알았다애초에 어머니도 무였고 나도 무였으니그러니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하상욱(1967~2023)시인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을 읽는다. 시인은 ‘달나라 청소’라는 상호가 적힌 명함을 들고 다니면서 계단 닦는 일을 했다. 그는 청소용품을 차에 싣고 어디든 달려갔을 것이다.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계단을 닦다가 자신을 비춰보기도 했을 것이다. 시인은 어느 날인가 시골집에 가서 어머니와 함께 “텃밭에 쭈그려 앉아 무를 뽑았다”. “희고 투실투실한 무” ...

    2025.04.13 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