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추가 재원 없는 누리과정 사업, 지방교육재정 압박읽음

반상진 |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

누리과정의 탄생은 2011년 5월2일 당시 국무총리가 2012년 3월부터 만 5세 어린이의 교육과 보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만 5세 공통과정’을 도입·시행한다고 발표하면서다. “5세 누리과정에 이어 만 4세, 만 3세까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같이 적용되는 공통과정을 마련하고,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로 정부는 ‘만 3~4세 누리과정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누리과정은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기고] 추가 재원 없는 누리과정 사업, 지방교육재정 압박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2016년부터 각 시·도교육청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지출 경비로 편성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하고, 2016년 예산에 누리과정용 목적예비비 3000억원만을 책정하면서 시·도교육청과 갈등이 더욱 불거지고 있다. 교육부는 내국세 총액이 증가하면서 매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증가했고, 시·도교육청이 예산을 절약하면 지방교육재정에 여유가 있어 누리과정 예산을 감당할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교육부가 낙관하고 있듯이 시·도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을 부담할 정도로 여유가 있느냐이다. 실제로 2012∼2015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증가 누적액은 1568억원에 불과하다. 반면에 시·도교육청이 부담해야 하는 누리과정, 채무 총액, 교직원 인건비 등의 증감 누적액은 증가했고, 교육부가 비효율적 운영이라고 지적했던 불용액·이월액의 증감 누적액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시·도교육청 교육비 특별회계의 주요 세입 재원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비중은 감소 추세(2012년 77.8%→2015년 73.8%)인 반면, 주요 경직성 경비인 인건비 세출 비중은 증가(2012년 58.4%→2015년 61.2%)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5년 기준으로 누리과정과 교육시설비(BTL) 등으로 인한 시·도교육청의 채무 총액은 18조1000억원을 넘는 수준으로 그 비중이 급격히 증가(2012년 27.8%→2015년 33.9%)하고 있다.이미 각 시·도교육청은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를 뺀 가용재원이 절반 이상 줄어 각종 교육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2015년 기준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기준재정수요액 산정 시 지방교육재정의 90.9%(48조4000억원)는 교직원 인건비, 학교 신·증설비, 학교운영비, 지방채 상환 등 경직성 경비이고, 가용재원은 9.1%(4조8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액이 가용재원의 41.8%(2조원) 규모이기 때문에,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추가 증가 없이는 정상적인 학교 교육 지원을 할 수 없다. 2016년에 4조원 정도의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채로 편성할 경우 지방재정구조는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을 것이다.

누리과정 비용 부담 주체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여전히 불명확하다는 점도 쟁점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교육기관(유치원 포함) 및 교육행정기관의 설치·경영에 필요한 재원 확보를 목적으로 함에도, 정부가 유아교육법 시행령과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을 개정해 교육기관이 아닌 어린이집 보육료 재원까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부담하도록 규정한 것은 법적 정당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누리과정 관련 법률이나 시행령이 상호 법리적으로 상충되는 측면이 있고, 누리과정 지원의 권한과 책임의 주체, 법률에 구체화되어 있지 않은 사무 영역 등을 시행령에 강제함으로써 법리적 충돌 양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도교육감들의 누리과정 예산 편성 불가 입장을 정치적 행보로만 해석하지 말고, 누리과정은 국정과제인 만큼 중앙정부 의무지출 경비로 지정해야 한다. 그에 따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의 근거가 되는 시행령(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 유아교육법 시행령, 영유아보육법 시행령)과 관계 법률의 불일치를 해소해야 한다. 지방교육재정 갈등의 원인은 중앙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채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교육청에 이를 충당하라고 강요한 데 있다. 정부가 누리과정을 통해 교육이념 갈등을 유발시켜 정치적 이득을 얻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면 누리과정을 설계할 당시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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