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동학대’ 조기발견만이 능사 아니다

유서구 |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17년 말 고준희양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접한 온 국민은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준희양의 친부와 동거녀는 차마 언어로 형용키 어려울 정도로 아이를 학대했고, 결국엔 사망에 이르게 했다. 충격적인 사건이 연이어 보도되면서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던 지난 1월 대통령은 아동학대 대책의 실효성을 높일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고, 이어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국무총리가 기존 아동학대 대책에 대한 점검과 보완을 요구했다.

[기고]‘아동학대’ 조기발견만이 능사 아니다

아동학대에 대한 법적 개입이 시작된 2001년부터 아동학대 사례 건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2001년 2105건에 불과하던 사례가 2016년에는 1만8700건으로 9배 정도 늘어났다. 특히 2016년은 전년 대비 사례 증가율이 59.6%로 가장 높았는데, 이는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시행으로 신고가 활성화되고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한 데 따른 현상으로 보인다. 올해부터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아동학대 조기발견 시스템’을 가동한다고 하니 신고가 더 급증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는 학대 피해아동과 가족들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을까? 우리 사회는 지난 10여년간 아동학대 신고와 조기발견, 학대행위자에 대한 처벌 강화에 나름 차별적인 노력을 해온 것이 사실이고, 이를 위해 정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이 보여준 리더십은 부분적으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학대 피해아동들이 적절한 환경에서 서비스를 제공받아 후유증을 치료하고, 가족관계를 회복해 원가정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예”라고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동학대에 대한 조사와 서비스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현재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조사만도 벅찬 상황이다. 지난 4년간 신고가 116%가량 증가하는 동안 아동보호전문기관은 18% 증설에 그쳤다. 충분한 자원과 서비스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는 이상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학대 신고와 조사에 대한 대응만으로도 지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아동학대 특례법 시행 이후, ‘사법적 접근’이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학대 피해아동과 가정에 대한 전문서비스의 확대 논의가 배제되거나 자원 투입이 위축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현상이 우려스럽다.

아동학대는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실천이나 이미 발생한 후에는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 지원하는 것이 가장 주요한 전략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대 피해아동과 가족에 대한 관리와 지원을 전담하는 인프라를 충분히 구축하고, 전문가를 배치해 집중적이고 통합적인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정부의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의지를 지지하면서 이번만큼은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근본적이며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인프라 확대와 학대 피해아동 및 가정에 대한 서비스 대책이 빠진 채 아동학대 업무의 주체를 변경하는 것만으로는 실효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번 정부의 고민이 아동학대 신고와 조기발견에만 집중되는 대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대 피해아동들과 가족의 관리 및 지원에 대한 실질적인 보완책들로 나타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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