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전 관리 허술한 대전 핵폐기물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원자력연구원(원연)의 방사성물질 누출을 지난 1월10일 보고받고 원내 자연증발시설에서 방출된 것을 확인하고 1월30일 조사보고서를 공개했다. 누출 원인은 시설운영자의 미숙으로 인해 방사성 오염수가 넘쳐흘러 바닥 배수탱크로 들어가서 탱크 PVC 출구배관을 통해 외부로 방출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원안위 손명선 안전정책국장은 원연 외부 하천에서 측정된 방사능은 미미한 수준으로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언론에 설명했다.

[기고]안전 관리 허술한 대전 핵폐기물

그러나 이는 12월30일 원연 정문 앞에서 시료를 채취, 분석한 결과다. 방사능이 방출된 건 이보다 한참 전인 9월26일이다. 그럼에도 원안위의 조사보고서엔 방사능이 방출된 날로부터 몇 달간 수차례 빗물에 섞여 갑천과 세종시를 거쳐 금강하구로 씻겨나간 뒤 측정한 값이라는 설명은 없다. 게다가 카이스트의 한 핵공학 교수는 미미한 측정값만 언론에 언급해 핵산업계의 전형적인 은폐 특성을 대변했다. 또한 측정된 핵종이 핵연료에서 나온 물질로 의심되지만 이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다음은 자연증발시설 자체의 문제이다. 자연증발시설은 방사능을 외부로 배출하지 않기 위해 저준위 액체 폐기물을 자연증발, 농축시켜 부피를 감축, 고화시키는 시설이다. 그런데 배수탱크 출구배관을 계통으로 되돌리지 않고 외부 우수배관에 바로 연결해 자연 방출되도록 했으며 감시기가 없어 실시간 방출을 확인할 수도 없다. 원안위는 그간 자연증발시설이 무방출(zero release) 개념의 설비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는 방출되도록 설비됐으므로 이번 방출이 운영자 미숙에 따른 단순 실수가 아닌 ‘의도성’으로 보이는 이유다. 원안위는 PVC 배출배관을 설치한 경위와 30년간 시행한 규제기관의 주기검사 내용과 이 배관으로 지난 20~30년간 방사성물질이 얼마나 많이 배출됐는지 해명해야 한다. 원안위조차 원연의 범죄행위를 함께 은폐하려 한다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는 이러한 무능함은 원연의 지속되는 방사능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

2017년 핵폐기물 무단배출 문제로 자연증발시설을 포함해 대전시원자력안전성검증단이 조사, 제시한 개선 권고사항은 이행되지 않았으며 원안위는 이를 방치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대량 핵폐기물이 원연에 존재하는 한 이런 범죄행위는 계속될 것이다.

200만명의 인구가 사는 도심 한복판에 쌓인 3만드럼 분량의 핵폐기물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으며 시민안전을 위협하는 동시에 원연과 지역 상생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원연과 정부는 핵폐기물이 많이 발생되는 핵연료 취급 연구에 앞서 현재 쌓인 핵폐기물부터 해결하려는 책임의식을 보여야 한다. 대전시민을 우롱하듯 연구용 원자로 해체폐기물을 서울에서 원연으로 몰래 대량 이전하고 철근, 콘크리트 등도 무단으로 폐기하다 위법처분을 받았다. 원연의 핵폐기물은 계속 증가 중이며 안전대책은 물론 기준도, 관리도 허술하다. 2018년 대전시장 선거 때 핵폐기물 제로화를 공약으로 요구했지만 무시됐다. 작년 안전기준 강화를 추진할 때도 원안위에 강력히 요구했건만 대전 핵시설을 굳이 제외시킨 합당한 이유도, 해명도 없다. 이제는 다른 곳에서 핵연료 취급 연구를 하겠다는데 대전에 남은 대량 핵폐기물은 어쩌라는 것인가? 이러한 무책임한 연구에 올해 특별 연구비 증액까지 해준 과기부와 탈원전을 표방하는 현 정부, 대전시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원연과 정부와 대전시는 핵폐기물 제로화 로드맵을 당장 구축해야 한다. 그때까지 한시적인 관리기준을 강화하고 도심에서 폐기물을 양산하는 무모한 연구는 지양해야 하며 방사선 융복합연구 등 미래지향적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연구를 위해 당장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그때마다 반복되는 꼬리 자르기식 처벌은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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