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용익 이사장님께 - 끼니 말고 직을 걸고 건강보험공단을 바로 세워주십시오

김재광|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김재광(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김재광(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안타깝게도 안부를 묻기에는 선생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아 보입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기억하시기는 어려우실 겁니다. 1990년대 의료보험 통합과 국고지원 확대 운동 시기 민중의료연합 상근 활동가로 함께하였으나, 당시 저의 역할이 미미하여 선생님이 기억하실 만한 많은 분들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활동에 함께한 것에 큰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선생님에 대한 좋은 기억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장님’보다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더 익숙합니다.

몇 해 전 암으로 투병하셨던 어머니께서 과거 건강보험 강화를 위한 활동을 했던 아들이 용케 떠오르셨는지 “그래도 네가 싸운 덕에 암 때문에 치료비 대느라 집안이 망하지는 않았다”고 공치사하실 때 참 뿌듯했습니다. 당시 활동하고 지금까지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했습니다. 과거 “암 때문에 집안 거덜나야 되겠습니까? 병 걸린 것도 억울한데 가족 모두를 거덜내야 합니까”라며 시민과 노동자를 설득했던 제가 세월이 지나 그 혜택을 보았으니 말입니다.

당시 ‘의료보험’은 직장의료보험조합과 지역의료보험조합으로 나뉘어져 대기업 의료보험조합은 갈수록 재정이 쌓여가지만 소기업 의료보험조합과 지역의료보험조합은 만성적 재정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각각의 보험조합 형편에 따라 보험급여(의료비 보장) 및 기여(보험료)가 불균형·불평등하여 ‘전국민의료보험’이라고 칭하기에 부끄러운 지경이었습니다. 그 상태가 지속되다가는 의료복지의 극단적 양극화가 불 보듯 뻔했습니다. 이에 선생님을 필두로 한 많은 전문가와 노동조합 및 노동자, 사회운동단체들이 힘을 모아 직장의보와 지역의보 통합 운동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변화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았으나 그럴수록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투쟁하였습니다. 당시 모두의 목표는 공공성과 연대성에 기초한 제대로 된 의료보험이었습니다. 급여(의료비 보장)의 확장 역시 중요한 목표였지요. 많은 이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직장의보와 지역의보는 하나의 보험으로 통합되어 지금의 건강보험이 되었습니다. 한계가 있다고는 하나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사회보험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활동과 투쟁에 늘 선생님은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15일 강원 원주 건보공단 본사 로비에서 단식농성 중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15일 강원 원주 건보공단 본사 로비에서 단식농성 중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그래서 가끔 선생님이 보건복지부 장관 물망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하면 마음으로 응원했고,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되셨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할 만한 분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제(14일) 선생님의 단식 소식은 귀를 의심하게 하는 난데없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단식에 임하시면서 “공단의 최고 책임자가 노조를 상대로 단식을 한다는 파격에 대해 갖은 비난이 있을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한 저로서는 이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라고 하셨습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이미 주류언론은 노노갈등을 비웃으며 난도질하고, 선생님의 무능을 질책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단식으로 문제의 본질이 더 호도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것을 의도하신 겁니까? 노노갈등에 치인, 선하고 힘없는 관리자로 자신의 위치를 정하신 듯 하지만, 실상 선생님은 건보공단을 올바로 경영할 의무와 권한을 가진 최고경영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올바른 경영은 설립 취지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건보공단의 설립 취지는 무엇입니까? 공공성과 연대성을 기초로 한 보편적 국민의료보장입니다. 바로 선생님이 과거 저희와 노동자들에게 설파하신 참뜻입니다. 과거 전문성과 효율성을 이유로 고객센터를 외주화했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비용 절감이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외주화로 인해 전문성이 향상되고, 공공성과 연대성이 확장되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습니다. 효율성은 경비 절감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중간 이윤을 취하는 ‘통행세’로 민간회사의 배를 불리고, 노동자는 자신의 소명을 다하기에 부족한 노동환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건보 이용자인 국민의 손해이고, 건강보험 취지에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의지가 아니었더라도, 선생님이 이사장이 되는 순간 최고경영자로서 했어야 할 여러 사안 중 하나가 고객센터 직영화입니다. 국민연금공단과 근로복지공단 고객센터가 직영화될 때 그곳에서도 잡음과 반대,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공성과 연대성을 기초로 한 사회보험 운영기관들은 이를 극복하였습니다. 왜 건보공단만 안 되는 것입니까? 정규직노조의 저항이 거세기 때문입니까? 명분 없는 저항과 불의에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던 지식인 김용익은 어디 간 것입니까? 혹시 선생님도 ‘직영화가 문제다’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그래서 애초 들어올 생각도 없는 ‘사무논의협의회’에 정규직노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고객센터노조와 일체의 공식 협의를 하시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경영자로서 결단을 하셔야 합니다. 끼니를 거는 것이 아니라 직을 걸고 옳고 그름을 제시하셔야 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15일 강원 원주 건보공단 본사 로비에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을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15일 강원 원주 건보공단 본사 로비에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을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선생님의 단식을 접하니 건강도 염려되는 한편 서글퍼집니다. 힘없는 자가 최후로 선택하는 단식투쟁마저도 언제부턴가 권한 있는 분들이 차지하시니, 정말 없는 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착잡합니다. 선생님, 간곡히 청하건대 건보의 내일을 위해서 부디 단식을 거두어 주십시오. 주류언론의 비아냥거림을 쳐내십시오. 고개센터 직영화는 건보공단 설립이념에 부합하는 것이고, 이를 반대하는 것이 공공성과 연대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천명해 주십시오. 책임지는 경영자이자 건보의 가치를 세우는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을 회복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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