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젠 아빠와 함께 저녁 밥상을

이기영 | 호서대 명예교수

얼마 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씨가 일주일에 120시간 일하는 것을 두둔하는 발언으로 많은 이들의 항의를 받았다. 이 때문에 대선공약 순위에서 밀려났던 노동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해 우리나라 노동자 들의 평균 노동시간 순위는 43개 나라 중 4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노동시간인 1687시간보다 221시간이나 많았다. 주 52시간제를 도입하기 전 2017년에는 연간 2024시간으로 멕시코에 이은 2위였다. 이런 세계 최장시간 수준의 업무로 능률이 크게 떨어지겠지만 산재사고도 OECD 최고 수준이다.

이기영 | 호서대 명예교수

이기영 | 호서대 명예교수

이젠 정부가 경제성장 위주로 단순히 긴 노동시간을 유지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의 생명과 인권은 물론 의욕을 중시해 산업재해를 부르는 과도한 노동시간을 확실히 줄이고 이로 인해 붕괴된 위기의 가정을 되살려야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1985년 8월, 독일에 처음 유학 가서 보니 연구원들이 오후 4시만 넘으면 퇴근했다. 물론 서머타임제로 오전 8시 전에 일찍 출근했지만 중간에 커피타임도 있고 여유 있게 일하다 일찍 귀가해 가족들과 마트에서 장도 보고 잔디를 깎고 정원 파라솔 아래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등 가족 중심의 삶이 일상화돼 있어 참 부러웠다. 특히 가정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은 매일 가족들이 모여 함께 저녁을 먹는데 이 규칙을 불문율처럼 지키고 있어 저녁시간에는 일절 외부 약속을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오후 8시가 넘어야 일이 끝나고 또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 한잔하는 경우가 많아 가장들은 거의 매일 밤늦게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금도 독일은 업무시간이 짧으면서도 세계 제1의 산업경쟁력으로 특히 중소기업들이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유대인들이 세계 노벨상의 40%를 차지하고 미국 경제의 절반 이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면 결코 업무시간만 늘린다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G7에 초대받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됐다. 따라서 노동은 물론 국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일, 즉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그동안 경제발전을 위해 아버지는 새벽에 직장으로 나가 밤늦게 들어오며, 집에서는 그저 돈이나 벌어다주고 자녀 교육은 아내에게 떠넘기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렸다. 사회에서 직장에서 소외된 어머니는 자녀에게 집착해 공부만 강요하며, 기죽는다고 인성·예절 교육은 무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였다. 입시지옥의 불 속에 내던져진 아이들은 처음엔 부모를 원망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1등이 되기 위해 자신만 빨리빨리 가야 하는 무례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성장해버렸다. 부모와 거리가 멀어진 요즘 아이들은 대학에 진학하면 대부분 집을 나가 원룸생활을 시작해 해외동포가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가족 간의 대화와 소통 부족으로 갈등이 증폭되고 이혼 증가율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져 안식처이며 사회 안정의 기본 단위인 가정의 절반이 해체될 위기에 처해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출세해 높은 자리에 올랐다 한들 자식들이 망가지거나 이혼으로 가정 자체가 해체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구나 입시 위주로 이웃에 대한 배려와 예절을 배우지 못하고 자란 자녀들이 일류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다닌다 해도 연세 많은 부모에게 효도하리라는 기대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일터에서 가장들을 가정으로 일찍 돌려보내 가장의 역할을 돌려주자. 그래서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삶의 원칙과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부모의 모습을 되찾아주자.

이를 위하여 작은 실천 운동 하나를 제안한다. ‘가족이 모여 함께 저녁을 먹자’는 운동이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밥상머리에서 맛있는 음식을 서로 양보하며 나눠 먹는 멋진 식사예절부터 가르치자. 식욕을 자제할 줄 아는 아이가 자기 욕심도 제어할 줄 안다. 이렇게 인내심을 키워 자기 욕심을 제어하고 남을 배려하는 것은 모든 예절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가족들이 다 함께 모인 밥상머리에서 배운 올바른 가치관과 예절은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만들어 가정은 물론 사회를 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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