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와대에 학술연구수석 필요

이강재 서울대 중문과 교수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위드 코로나’가 곧 시작된다. 지난 2년 동안 삶의 방식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중대한 변화를 목도했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인류 문명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았다. 당연하게 여겼던 습관과 제도에 대해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적 재난에 대한 대처 역량과 민주적 리더십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기에 하는 말이다. 이제 위드 코로나,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이강재 서울대 중문과 교수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이강재 서울대 중문과 교수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후보들 사이에는 판단하기 어려운 비난과 비판이 흘러넘친다. 곧 ‘공약 대잔치’가 시작되면 여야의 어느 후보 할 것 없이 ‘경제발전’을 내세울 것이다. 하지만 경제발전은 방법과 수단의 하나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모두가 행복한 나라 만들기라는 목적의 한 수단에 불과하기에. 경제발전만으로는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목표로 하는 ‘선도국가’가 어렵다. 이는 ‘성숙한 대한민국’의 과정을 거칠 때에 가능하다. 경제발전은 소위 ‘추격형 국가’의 전형적인 성장 엔진이다. 대한민국이 지속 성장이 가능한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성장 엔진이 필요하다. 그 엔진은 다름 아닌 ‘성숙 성장’ 전략이다. 그 전략의 토대가 인문사회 학술이다. 경제발전과 지속 성장을 동시에 뒷받침해준다는 점에서 인문사회 학술의 힘을 이용하는 성숙 성장 전략은 중요하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전통시대에는 외견상 문인들이 정치의 중심을 차지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국가 간의 무한한 경쟁은 군비의 확충을 필요로 했고 그를 위해 사회적 생산력을 높이는 문제와 신기술을 장착한 무기를 필요로 했다. 다른 국가보다 먼저 철기로 무장한 군대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문관과 무관의 구분이 있었지만 문무의 겸비는 모두에게 중요한 덕목이었다. 공자가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6가지 덕목을 언급하면서 예법, 음악, 문자 익히기와 함께 말을 몰고, 활을 쏘며, 계산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중시한 점에서도 확인된다.

현대사회에 오면서 분과 학문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다른 영역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인문사회 분야와 과학기술 분야는 문과와 이과라는 서로 전혀 다른 영역처럼 분리되었다. 그러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빅데이터의 기반이 되는 콘텐츠는 상당수가 문과적 지식에서 생산된 것이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인공지능(AI)은 ‘이루다’와 같은 문제를 야기함을 보았다.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어느 것 하나 홀시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게 단시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평가된다. 경제개발과 과학입국의 덕분이며, 인문사회 영역에 대한 교육 덕분이기도 하다.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은 새의 양쪽 날개 같아서 어느 것 하나만으로 세상을 이끌어갈 수 없다. 사회의 발전을 견인하는 ‘속도’는 과학기술이 담당하지만 올바른 ‘방향’은 인문사회의 역할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다.

이것은 현재의 국가 학술정책을 생각하면 오히려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예산부터 조직, 법령 등 많은 영역에서 과학기술 중심의 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눈앞의 속도만을 중시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간다면 이후에 더 큰 사회적 비용이 청구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관용과 포용의 부족으로 인한 갈등이 양산되고 있다.

AI 등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과 세계적 재난인 코로나의 경험 등 문명조건의 변화 속에서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사회의 문제는 특정 분야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이 융합해 국가와 인류를 경영해가는 학술경국(學術經國)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현재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부처는 분리되어 있고 학술을 기반으로 과학기술과 법, 제도, 교육을 아우르는 통찰력 있는 정책 결정을 지원할 조직이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차기 정부에서는 청와대에 학술연구수석을 신설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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