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중심주의라는 자충수

이경식 국제신문 논설위원

특별기고

중심에선 중심이 보이지 않는다. 중심을 보려면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도한 중심 집착증은 탈중심을 막아 기형화를 촉진한다. 우리나라의 수도권 중심주의가 그렇다. 전국의 절반이 넘는 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절반이 넘는 인구를 수도권으로 불러들였다. 수도권 인구 집중은 인구 감소를 야기한다. 지난해 수도권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전국 평균(0.84명)을 밑돈다. 감사원은 지난 8월 “2117년 229개 시·군·구 중 8곳만 살아남는다”며 우리나라에 100년 시한부 판정을 내렸다. 국가 소멸 경고령이 발령됐는데도 수도권 집중에는 계속 가속도가 붙는다. 그 배후에는 견고한 수도권 중심주의가 버티고 있다.

이경식 국제신문 논설위원

이경식 국제신문 논설위원

‘이건희 미술관’을 수도권에 두려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수도권은 많이 볼 수 있는 접근성이 있는데, 미술관을 지방에 둘 경우 ‘빌바오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쇠락한 스페인의 소도시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매년 관광객이 인구의 2배가 넘는 100만명에 달한다. 빌바오는 문화자원 분산을 통한 지방 회생 가능성도 보여준다. 그런 효과를 대한민국의 지방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니, 이보다 더한 수도권 중심주의가 있을까 싶다. 현재 박물관·미술관·공연장 등 국립문화시설의 48%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황 장관의 논리대로라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문화 양극화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의 마인드 또한 마찬가지다. 국토부는 지난 8월 국내 주요 교통거점을 지역 랜드마크로 만드는 계획을 발표했다. 교통, 도시,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환승센터사업 총괄계획단을 꾸려 미국의 세일즈포스 트랜짓센터나 스위스의 아라우역 같은 유명 랜드마크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 양재, 경기 수원, 인천 송도 등 시범사업지 9곳이 모두 수도권에 있다. 비수도권에는 환승센터가 필요하지만, 랜드마크 환승센터는 불필요하다는 것인가.

가덕신공항 반대 논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지역민의 편의는 고려하지 않는다. 1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김해공항의 치명적인 안전 결함이나, 항만과 연계한 24시간 복합물류가 불가능한 김해공항의 기능 한계에는 별 관심이 없다. 부울경 화주들의 인천공항 왕래비용이 연간 7000억원에 달하는 것이나, 부산항과 인천공항 간 화물통관에 인천공항(연평균 3.06시간)의 3배나 되는 9.35시간이 소요되는 건 지역의 사정일 뿐이다.

국가 정책을 시행하는 국책은행도 예외가 아니다.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기업은행이 투자한 벤처기업 231곳 중 80%(185곳)가 수도권에 있다. 특히 기업은행은 실질적 투자라 할 수 있는 보통주 투자를 비수도권 벤처기업에는 한 건도 하지 않았다. 같은 기간 산업은행의 수도권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도 75%(184곳)에 달한다. 국책은행의 이런 행태에는 정부의 미약한 균형발전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중심주의는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조롱으로도 표출된다. 일부 언론은 “수도권을 집중 개발하고 비수도권은 청정 전원지역으로 유도하는 등의 중장기 대책이 필요하다”며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아예 도시와 농촌 구도로 파악한다. 수도권 중심주의는 비수도권을 소멸 위기로 몰아간다. 결국 그 죽음의 부메랑은 수도권으로 돌아온다. 수도권마저 삼키는 공멸의 자충수가 된다. 이는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일본도 지역인구의 도쿄권 유입으로 2040년 896개의 기초지자체가 소멸하고, 장기적으로 도쿄권 인구도 줄어 국가 소멸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마스다 보고서’에서 전망한 바 있다. 그러나 수도권은 이런 보편적 이치를 외면한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 창간 75주년 기획 ‘절반의 한국’ 연재와 관련해 ‘수도권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지역 언론의 특별기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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