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주유공자 예우는 정치권 흥정거리가 아니다읽음

이영재 | 한양대 제3섹터 연구소 연구교수

지난해 2월 한국은 EIU의 ‘민주주의 지수 2020’ 평가에서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았다. 결함 있는 민주국가가 52개국, 혼합형 정권이 35개국, 권위주의 체제가 57개국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이 5년 만에 완전한 민주국가 대열에 합류한 것은 지난해 6월 G7 정상회의에 초청국 자격으로 참석한 것만큼이나 쾌거다.

이영재 | 한양대 제3섹터 연구소 연구교수

이영재 | 한양대 제3섹터 연구소 연구교수

한국은 일제강점, 분단, 전쟁, 독재를 다 경험한 세계 유일의 국가다. 이 중 한 가지만 겪어도 회복하지 못하고 혼합형 정권이나 권위주의 체제에 머물러 있는 나라가 태반이다. 한국은 과거사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이 격변들을 다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이러니 쾌거라 할 만하다.

지난겨울 팬데믹 상황에서 전 세계가 긴장과 공포의 시간을 보낼 때 세계가 한국의 국격에 놀랐다. 대한민국이 과거 목숨을 걸고 이역만리 한국 땅에서 분투한 참전용사들과 평화봉사단 단원들을 잊지 않고 ‘코로나19 생존 박스’를 전달한 것은 단연 화제였다. 이 소식을 접한 전 세계 누리꾼들이 한국의 품격에 박수를 보냈다. 과거청산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 평화와 인간애에 기초한 수고에 예우를 다함으로써 인류가 그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는 것이 과거청산이다.

일제강점, 분단, 전쟁, 독재 시기에 각종 국가폭력과 고문, 살인, 정치공작이 난무했다. 그 후 대한민국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운 독립투사와 참전용사, 4·19와 5·18 희생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했다. 2005년 제정된 국가보훈기본법은 “대한민국의 오늘은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분들의 숭고한 정신으로 이룩된 것이므로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그 정신을 기억하고 선양하며, 이를 정신적 토대로 삼아 국민 통합과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국가보훈의 기본이념”으로 천명했다. 세계가 배우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품격에 부족하지 않은 국가보훈 이념이다.

그러나 완전한 민주국가라고 자축하기엔 아직 멀었다. 민주주의 심장부인 국회 앞 귀퉁이에서 혹한의 추위에 노구의 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이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것이 2022년을 맞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한 1인 시위가 7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묵묵부답인 국회 앞에서 지난해 10월 급기야 천막농성이 시작되었다. 그 천막에는 전태일 열사와 박종철 열사가 함께한다. 그 천막에는 6월항쟁의 거대한 물결을 만든 이한열 열사의 모친이 앉아 계신다. 아직까지 죽음의 원인조차 명백히 밝히지 못한 채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의문사한 청년의 부모가 계신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빚진 고귀한 희생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하루빨리 민주화운동 관련자라는 애매한 호칭을 거두고 민주유공자로 예우해야 할 때이다. 민주유공자 예우를 정치권의 흥정거리로 전락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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