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구·개발 과제 성공률 99%’라는 우상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철학자 베이컨이 말했다. 개인과 사회는 많은 편견과 우상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더 많은 우상이 확대 재생산된다고. 하지만 근거가 없는 우상은 곧 허상으로 밝혀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항상 합리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한다는 과학기술계 역시 종종 근거 없는 우상을 만들어 확증편향에 빠지기도 하고, 이것이 과학기술계 전체의 운행 법칙으로 작동되기도 한다.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최근에는 ‘정부 연구·개발(R&D) 과제의 성공률 99%’라는 명제가 점차 우상이 되고 있다. 과학자들이 성공하기 쉬운 연구에만 도전하고, 연구과제 관리 기관은 과학기술 연구를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으로 평가하며, 우리 사회가 과학기술의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비판에까지 이른다. 이 같은 비판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책 제언이 쏟아졌고 일부는 이미 실행 중이다.

하지만 ‘정부 R&D 성공률 99%’라는 명제는 과연 참인가? 그전에 정부 R&D의 성공률이라는 지표가 존재하기는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23년간 정부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한 번도 성공과 실패의 잣대로 평가를 받아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정부는 R&D 과제를 성공·실패로 나눠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R&D 예산을 가장 많이 집행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연구·개발 성과를 ‘S/A/B/C/D’ 혹은 ‘최우수/우수/보통/하위/최하위’라는 5단계 척도로 평가한다. 두 번째로 R&D 예산이 많은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우수/완료/불성실수행’이라는 3단계 척도를 쓴다. 성공률이라는 지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정부 R&D 성공률 99%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이전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연구과제 성공률을 제시하라는 질문이 있었고, 이에 대한 답변으로 불성실하게 수행된 과제 약 1%를 제외한 우수·완료 과제의 비율을 99%로 보고한 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 과학기술 연구성과를 성공과 실패로 나눠 제시하라는 질문도 어리석었고, 답변 역시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다. ‘성공률 99%’가 아니라 ‘성실률 99%’인 것이다.

당시 자료에 의하면 2017년부터 2021년 9월까지 수행된 연구과제 중 아주 우수한 성과를 도출한 성공적인 연구는 2%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 연구·개발은 어려운 과제들에 대해 도전적으로 수행되고 있고, ‘실패할 자유’는 이미 허락돼 있다. 잘못된 근거에서 비롯된 잘못된 주장인 것이다. 과학기술계가 당시 국회 논의의 내용과 데이터의 허상을 제대로 보지 않고 단편적 언론 보도에 근거해 분석하고 정책을 제언해 온 것이다. 어리석은 우상화의 과정이고 무의미한 사회적인 에너지 낭비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과학기술계에서 여러 정책 논쟁이 활발하다. 과학은 데이터를 만들고 해석하는 일이다. 제대로 된 과학은 기존의 데이터와 해석을 의심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문제는 일부의 정책 논의가 비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과학자가 중심이 되는 정책이라는 것도 얼마든지 비합리적인 우상일 수 있다는 점을 늘 경계해야 한다. 정책은 그 자체로 과학이 아니고 직업적인 과학자가 합리적인 정책 입안자와 동일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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