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586세대, 사회적 상속에 나설 때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사례 1. 1920년대 초, 부자 곡물상 아버지를 둔 독일의 펠릭스 바일은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를 창설했다. 그가 자유로운 독립 연구를 지원해 독일의 사회 연구와 사회사상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사례 2. 얼마 전에는 1980년대 독일의 대기업 소유주 아들인 양 필리프 렘츠마가 유산을 모두 팔아 ‘함부르크 사회연구소(HIS)’를 만들었다. 다양한 사회적 후원과 연구 지원을 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칼럼을 읽었다.

사례 3. 586세대인 A대의 B교수가 최근 10억원을 기부하고 다른 친구들의 기부를 받아 ‘세대연대기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의 포부는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하는 생태환경 연구 및 실천 지원을 위한 허브(공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쁜 권력과의 투쟁을 통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온 586세대 중 다음 세대를 위한 사회적 상속과 기부, 지원 활동을 병행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 B교수의 작심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1989년 경실련이 출범할 때, 손봉호 교수 등이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기윤실)를 만들고 그 활동 과정에서 ‘유산 안 남기기 캠페인’을 한 적이 있다(최근 손 교수는 자신의 약속을 실행하는 의미에서 재산 13억원을 ‘밀알복지재단’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시민사회에 참여하면서 가장 부럽고,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 운동이었다. 유산 안 남기기는 양면적이다. 자신에게는 유산 포기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상속시킨다는 의미를 갖는다. 사회적 상속의 형태는 주로 기부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기부활동이 있다. 서울교육청에만 1000여개의 공익재단 및 비영리법인이 등록되어 있다. 최근에는 노동조합들도 공익재단을 만들고 있다. 우분투 재단에서부터 한국금융산업공익재단 등도 있다. 노조에 기반한 공익재단들은 기업에 기반한 공익재단과는 다른 지원을 할 것이다. 충분히 의미 있고 좋은 일이다.

나는 586 민주화 세대들도 이제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적 상속과 기부, 그를 위한 연대의 진지들을 더 다양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그동안 586세대의 기여로 민주화가 되면서 국가와 시장이 많이 개혁됐다. 그 과정에서 국가가 담당하는 영역이 넓어졌다. 복지 같은 분야가 대표적이다. 이전에는 어려운 학생들에게 수업료와 학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장학재단이 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상교육이 확대되면서 민간의 헌신을 공적 기관이 대체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공적 권력이 담당하지 못하는 영역들이 존재한다. 이를 위한 비전과 대안을 만들 다양한 진지들이 필요하다. B교수의 기부가 생태환경 분야라면, 이외의 다양한 주제 영역에서 사회적 상속과 기부, 지원을 위한 진지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나도 한때 긴급조치 9호 친구들과 같이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기금’을 작게나마 만든 일이 있다. 아시아 평화대학을 만들고자 하는 그룹도 내 주변에 있다.

대한민국을 주도하던 586세대가 이제 중추세대로부터 변화해가는 지금, 어떻게 자신의 여력을 미래세대 또는 다음세대를 위해 써야 할지 고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나쁜 권력과의 싸움만으로는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자기와의 싸움이 필요하다.

586세대가 대학생이기를 거부하고 현장 노동자로 존재 이전을 했던 그 시대의 정신으로 자신의 기득권적 지위를 바라본다면, 미래세대를 위해 자신을 내어줄 더 많은 연대의 영역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불태웠던 세대. 이제는 세대 연대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세상은 넓고, 의미있는 연대는 많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