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학적 날씨예보의 시작, 수치예보

유희동 기상청장

선사시대 사람들은 환한 대낮에 태양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식을 경험했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 개기일식은 같은 지역에서 약 370년에 한 번씩 발생한다고 하는데, 사람이 살면서 일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현상인 일식이 그들에게 주는 공포와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이에 비해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나 급격한 기온 하강은 어땠을까? 아마 불편하기는 해도 일식보다는 충격의 강도가 훨씬 덜했을 것이다.

유희동 기상청장

유희동 기상청장

하지만 오늘날은 그때와 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일식은 발생 지역과 시작 시각, 종료 시각까지 정확한 예측이 가능한 반면,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여겨졌던 날씨 예측은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수학적인 해답 찾기에 있다.

태양계 행성의 운동은 방정식으로 표현하여, 수학적으로 답을 구할 수 있다. 따라서 태양, 달, 지구의 궤도에 따라 언제 어디서 달이 태양을 가리는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날씨를 만드는 공기의 움직임도 방정식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이 방정식은 나비에-스톡스 방정식이라 불리는데, 불행히도 수학적으로 답을 구할 수 없다. 나비에-스톡스 방정식은 수학 10대 난제 중의 하나로,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모델인 수학 천재 존 내시 박사도 이 방정식에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방정식은 있지만 답을 정확히 구할 수 없는 한계 때문에 날씨 예측은 통계자료, 정교하지 못한 일기도를 바탕으로 예보관들에 의한 주관적 예보가 주가 되었다.

이처럼 예보관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던 주관적인 날씨예보는 컴퓨터의 개발로 수치모델이라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수학적으로 답을 구할 수 없는 방정식에 대해 공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근사적 답을 추정하는 것을 수치방법이라 하는데, 이를 나비에-스톡스 방정식에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수치방법으로 미래의 날씨를 예측하는 수치예보의 개념은 1920년대에 시작되었으나, 방대한 계산량 때문에 컴퓨터가 개발된 이후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수치모델은 공간적으로 촘촘한 격자에서의 온도, 습도 등의 기상변수를 짧은 시간에 반복적으로 예측하여 미래의 날씨를 예측하는 전산 프로그램이다. 만약 전 지구를 수평 10㎞ 간격, 수직 100m 간격, 그리고 1분 간격으로 계산한다면, ‘10일 예보’(열흘 단위 중기 예보)에 수천조 이상의 반복 계산이 필요하다. 이러한 수치모델의 방대한 계산량 때문에 슈퍼컴퓨터는 수치예보의 운영에 필수적이다.

획기적인 수치예보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기상예보는 수치예보의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사람 즉 예보관들의 최종 판단으로 결정된다. 이렇더라도 예보관들의 최종 판단의 가장 중요한 밑그림은 수치모델의 결과이기 때문에 수치예보는 기상예보에 있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자체적으로 모델을 개발해서 사용하는 나라는 세계 180여개국 중에서 미국, 영국, 일본 등 8개국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지난 20여년간 일본·영국의 수치모델을 도입하여 날씨예보에 활용해 왔으나, 외국 모델에 의존하는 것에는 여러 한계가 있었다. 이에 2011년부터 2019년까지 9년 동안 자체 기술을 사용한 모델을 개발하고자 노력했고, 마침내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을 완성하여 세계에서 9번째로 자체 수치모델 보유국이 되었다.

자체 수치예보모델을 갖게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날씨예보의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좋아질까?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의 운영으로 날씨예보가 보다 정확해졌다고 할 수 있겠으나, 아직은 운영 초기이므로 국민들이 체감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1975년 자체 브랜드인 포니를 개발한 이후 기술력을 축적해 오늘날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로 성장한 것처럼, 우리 기상청도 자체 수치모델로 한반도지역에 영향이 큰 위험기상과 국민들의 관심기상에 예측 역량을 집중하여, 신뢰도 높은 예보를 제공해나갈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우리나라는 자체 기술을 통해 한반도 기상에 특화되고 지속적인 개발이 가능한 수치예보 모델을 갖게 되었다. 날씨예보의 사용자와 개발자 사이에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 국민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플랫폼이 구축된 것이다. 앞으로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은 국민의 관심과 건설적인 비판이라는 자양분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날씨예보가 생산되고, 나아가 우리나라가 기상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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