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혁신과 규제 사이에 갇힌 플랫폼 독점 문제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

지난 10월15일 분당 데이터센터 화재로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업무용 소통수단인 카카오톡과 다음 메일이 불통돼 모든 국민들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카카오모빌리티 기능도 마비돼 이를 통해 주문, 택시호출, 결제 등의 거래를 하는 농민, 소상공인, 택시기사 등 사업적 이용자들도 상당한 영업 손실을 입었다. 플랫폼 독점의 위험과 폐해를 체감할 수 있었던 사건이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

카카오에 대한 불신으로 270만명이 다른 메신저로 이동했지만 180만명이 하루 만에 돌아왔다고 한다. 카카오에서 활동했던 단톡방, 거래내역 등의 데이터를 가지고 이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데이터의 호환성, 이동성을 보장해 주는 기술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잠금(lock-in)’효과로 독점이 더 공고해지는 것이다.

미국 하원법사위원회를 통과한 플랫폼 독점방지 5법 중 하나인 ‘데이터 이동성·호환성 보장법(ACCESS)’은 이용자가 데이터를 이동할 수 있도록 응용프로그램 앱들의 상호작용기능인 인터페이스를 투명하게 유지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내년 4월 입법을 앞두고 있는 유럽연합(EU)의 플랫폼독점방지법인 ‘디지털시장법(DMA)’도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데이터 독점은 유통과 산업의 독점으로 이어진다. 데이터를 원료 삼아 성장하는 플랫폼 기업들은 이를 기반으로 자사 우대, 경쟁업체 차별을 통해 시장을 쉽게 차지할 수 있다. 포털서비스로 온라인 쇼핑몰 비교사이트 기능을 하는 네이버는 네이버쇼핑을 시작한 2015년에 시장점유율이 5%에 불과했지만, 자사 쇼핑을 우위에 놓는 알고리즘 설계로 2018년 시장점유율 21%로 1위 쇼핑몰에 올랐다.

독점이 공고화되면 이를 이용하는 소비자, 사업적 이용자들이 부담하는 비용은 증가한다. 배달의 민족 등 외식중개 플랫폼에 의존하는 자영업자들은 중개, 배송, 결제, 광고 등 과도한 수수료 부담에 비명을 지른다. 자사우대 금지, 사업적 이용자 차별금지도 독점 규제의 핵심내용이다.

세계적 추세와 달리 정부는 법적 규제가 플랫폼 산업의 성장을 막을 수 있다며 플랫폼의 자율규제를 정책목표로 설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혁신을 통해 형성된 자연독점을 깨 주어야 새로운 혁신도 성장할 수 있다. 1970년대 미국의 이동통신은 AT&T 한 회사가 독점했는데, 법원의 회사분할 명령을 통해 독점을 깨면서 1980년대 마이크로소프트(MS), 인터넷 통신 같은 새로운 혁신 서비스를 등장하게 했다. 이후 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끼워 팔기도 제재 대상이 됐고 인터넷 통신 기반의 구글, 애플 등의 새로운 혁신 서비스가 다시 등장할 수 있었다. 이게 공정거래법의 기본철학이고 여기에 충실한 미국이 혁신의 자연독점 보호에만 매달린 한국보다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나는 이유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새로운 플랫폼의 성장은 촉진하면서도 모든 플랫폼서비스의 입구(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는 거대공룡 플랫폼에 대해서는 독점 규제를 추진한다. 미국과 EU 플랫폼 독점방지법이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의 독점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듯이, 우리도 독점 폐해가 큰 ‘네카쿠배(네이버·카카오·쿠팡·배민)’에 대해서만 이용자 수를 기준으로 독점 플랫폼으로 지정하여 독점 규제를 할 수도 있다.

플랫폼 독점 감독에는 플랫폼의 알고리즘 조작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술전문가도 필요하다. 영국은 경쟁시장청(CMA)에 플랫폼 규제를 담당하는 디지털시장부서를 창설했고, 미국도 연방거래위원회(FTC) 내에 전문 기술전문가를 포함하는 ‘전자시장감시국’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공정위에는 4~5명으로 플랫폼 감시 태스크포스(TF)가 운영되고 있는데, 자율규제 정책으로 별도의 전담부서 설치는 요원한 상황이다. 혁신과 독점 규제를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우리 정책당국은 왜 미국이나 유럽처럼 실사구시를 못할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그사이 독점 플랫폼을 이용하는 소비자, 자영업자, 중소기업들의 부담과 피해는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플랫폼 독점에 대한 대책을 직접 거론한 점인데, 허언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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