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이 가른 ‘진영공화국’…국가소멸 위기에 놓이다

박명림 교수

(1) 갈림길에 선 한국, 한국인

10일부터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의 특별기고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를 매주 금요일 게재합니다.
박 교수는 10여회에 걸쳐 방대한 자료와 통계를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분석을 시도합니다.
한국이 존망의 기로에 섰다고 진단하고, 위기의 근원에 대해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합니다.

지난해 10월22일 보수단체 회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채 세종대로 일대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전국에서 모인 촛불행동 참가자들이 서울시청역 일대에서 집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과 김건희 여사의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0월22일 보수단체 회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채 세종대로 일대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전국에서 모인 촛불행동 참가자들이 서울시청역 일대에서 집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과 김건희 여사의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연합뉴스

경제 성장 이룬 선진국에 걸맞지 않게 불비례적인 국가 역할과 권력구조, 둘로 나뉜 정치 체제와 민심
그리고 사회 형평과 복지체계를 갖고 있다 보니 최고 수준의 갈등지표들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한국은 나라의 갈등지표에서 OECD 선두권을 놓친 적이 없다
종교와 인종 갈등이 없는 나라로서는 단연 갈등 선두권 국가이다
세계 최고 갈등국가의 하나인 것이다

우리들의 나라, 우리들의 인간공동체 대한민국은 지금 번영과 소멸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전진과 후퇴가 아니라 생존과 멸망의 엄중한 기로에 놓여 있다. 예서 멈추느냐 더 나아가느냐를 넘어, 아예 사느냐 죽느냐의 일대 교차로에 놓인 것이다.

게다가 밖의 침략과 위협 때문이 아니라 오직 안의 분열과 파쟁, 생명과 세대 연장 중단으로 나라의 근본 토대가 흔들리는 망조가 들어 있다. 그것도 이 나라가 결코 못살아서가 아니라, 유사 이래 어느 때보다도 잘 사는 지금 국가 소멸의 조짐을 보이고 있으니 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어디에서 무엇이 잘되었길래, 또는 잘못되었길래 오늘날 이 나라는 ‘최고 번영’과 ‘소멸 위기’의 ‘동시 절정’이라는 기가 막힌 형국과 지경에 다다르게 되었는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번영의 기록은 단연 세계적 성취였다. 그것은 지구상에서 현대세계가 이룩한 인간적 기적이자 인류사적 성취의 기록이었다. 일제 강점과 남북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인한 완전 파괴와 절대 폐허를 감연히 딛고 일어서 전진, 또 전진하는 이 공동체의 모습은 인간의 땀과 노력이 이룩한 잠재력과 가능성의 무한대를 보여주었다.

하여, 현대 한국과 한국인들의 족적은 하나의 감동이었다. 앞서 있던 수많은 나라들을 뒤에서 추격하더니, 이내 재빠르게 따라잡고, 끝내는 앞서 이끄는 앞자리에까지 다다랐다. 가난한 약소국에서 중진국을 거쳐 중견국에 다다르더니 이제는 선진국과 선도국을 말하는 단계에 도달해 있다. 이 나라가 약소국에서 선진국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너무도 빨라서 전광석화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이다.

성큼성큼 굵고 큰 걸음으로 내디뎠던 그 짧은 기간 동안 약소국에서 선진국에 도달한 나라는 대한민국 하나뿐이었다. 첨단기술과 상품, 물질과 무역은 분야별로 이미 분명한 하나의 세계제국을 구축하고 있다. 일부 문화와 예술 영역에서도 그들은 제국 수준에 도달해 있다. 상대적으로 영토와 규모는 작으나 크고 넓은 영향과 위상을 갖는 나라들은 이른바 ‘제국적 국민국가’로 불렸다. 지금의 이 나라가 딱 그러하다.

산업화의 본격적인 첫 삽을 뜰 때 이 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94달러였다. 많이 가난했고 많이 굶주렸다. 2021년 그것은 3만4998달러가 되었다. 300배를 훨씬 넘어 400배에 가깝다. 한마디로 눈부신 비약이었다. 이 나라의 경제규모는 세계 10위로 그 앞에는 다만 미국·중국·일본·독일·인도·영국·프랑스·이탈리아를 포함한 오랜 대국과 선진국 몇 나라뿐이다. 한국은 단지 두 세대 만에 그들 수준에 도달한 것이었다.

오래도록 응축된 장인적 재능과 기예, 빈곤 탈출의 의지와 열정, ‘하면 된다’는 집합적 자신감과 응집력이, 세계의 몇몇 조건들과 만나자 그들은 마치 분출하는 용광로처럼 폭발적으로 위로 솟구쳐 올랐다. 잦은 위기가 닥쳐와도 넘고 또 넘으며 발전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끝내 세계 무역규모 6위, 군사력 6위, 외환보유액 9위, 국가경쟁력 13위, 국방비 10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 2위를 비롯해 인터넷 가입 건수, 스마트폰 보급률, 전자정부 지수 모두 세계 선두권을 기록하고 있다. 분명 절정의 세계 등위요, 절정의 성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나라는 다른 부문들에서도 앞 또는 뒤에서 세계 수위권이다. 그것들 중 많은 지표들은 상충하거나 지극히 모순적이다. 국민의 실존과 형평, 생존과 생명을 위한 국가의 역할지표와 인간지표들에 관한 한 어떤 부문은 명백히 절정의 번영과는 정반대의 지위와 지수를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곤혹스럽다. 나라가 아직은 힘에 부쳐서일까? 아니다. 경제와 기술의 선진 수준과 선도를 말하는 주장과 담론들은, 오늘의 선진 한국에서 국민 의견 수렴을 위한 대표체계의 선진화와, 형평성을 위한 복지 제고의 객관적 지표들을 말하면 갑자기 돌변하여 선진 기준과 준거는 사라진다.

나라 운영의 한 요체인 헌정제도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기준으로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대통령 1인에의 권력 집중은 단연 최고 수준이고, 국민 요구와 의견을 반영할 의회와 대표의 규모와 권한, 예산과 기구는 너무 작다. 시민들의 투표 참여는 낮고, 투표로 나타난 국민 의견 반영은 극도로 불비례적이다. 정부의 고용 비중과 지출 비율도 최하위 수준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조직률도 크게 낮다. GDP 대비 공공지출 비율도 마찬가지다. 세전·세후 지니계수 개선 효과, 빈곤율 개선 효과, 가처분소득 대비 공적 이전 비율 역시 최하 수준이다. 한국에서 개인과 시장에서의 실직과 실패는 국가의 공적 역할과 부조의 부족으로 인해 빈곤 또는 희망의 상실이거나 죽음을 뜻한다.

경제 번영과 선진국에 걸맞지 않게 낮고 불비례적인 국가 역할과 권력구조, 대표 체계와 민심 반영, 그리고 사회 형평과 복지체계를 갖고 있다 보니 최고 수준의 갈등지표들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한국은 나라의 갈등지표에서 OECD 선두권을 놓친 적이 없다. 종교와 인종 갈등이 없는 나라로서는 단연 갈등 선두권 국가이다. 세계 최고 갈등국가의 하나인 것이다. 정당·계층·이념·지역·세대·젠더·노동, 수도권-지방 갈등을 포함해 정치·경제·사회·국가의 거의 전 영역에서 온갖 갈등들이 최고 수준에 달해 있다.

그중에서도 나라와 국민을 완전히 두 쪽 내고 있는 진영대결과 진영갈등은 대한민국을 최악의 진영국가(陣營國家)로 몰아넣고 있다. 어느덧 대한민국에 민주공화국은 사라지고 대신 진영국가, 진영공화국이 들어선 것이다. 그리하여 나라를 둘로 쪼개고 있는 진영대결은 이제 이 나라 문제들의 시작이자 끝이 되어버렸다. 근본 원인이자 귀결이 되어버렸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대통령과 의회, 그리고 정당 간, 정당 내 정치행위와 언명, 인식과 판단의 제일 기준은 단연 진영과 파당이다. 시위와 집회의 가공할 폭증 기록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이 민주국가가 독식과 독점, 완승과 완패를 둘러싸고 거리에서조차 이념과 진영에 따라 정면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위 대 시위, 집회 대 집회, 조직 대 조직은 점점 직접 적대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공방, 유튜브, 그리고 시위 현장들이 보여주듯 진영 간에 내면의 상호 증오와 혐오는 폭발의 임계점에 도달했음이 틀림없다. 갈등의 정도, 영역, 양태를 볼 때 이제 서로의 마음과 정서는 이미 혐오와 증오를 넘어 직접적 적대와 제거 유혹을 느낄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나라의 정치와 제도는 갈등의 제도화를 뜻한다. 그러나 국제비교를 통해 볼 때 극단적 독점성과 불비례성을 나타내고 있는 한국의 승자독식 대표체계와 사회갈등의 제도화 사이에는 너무도 큰 간극과 괴리를 노정하고 있다. 오래도록 우리의 두 대표체계(대통령과 의회)는 승자독식을 반복하여,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의 요구와 의견을 거의 반영하지 않아 왔다. 승자독식은 곧 진영독식을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영국가와 최고 갈등국가의 제일 원인이다. 특별히 대통령 선거와 권한의 승자독식은 완전 불비례에 가깝다.

우리가 나라를 갖는 이유는 나라를 통해 인간 실존의 안전과 안온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갈등의 제도화를 통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삶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안정적’이라는 말은 전적으로 국가 안에 산다는 말에서 나왔다. ‘불안정하다’는 말은 국가와의 연결이 끊어진다는 말이다. 지금 한국의 정부 형태와 대표체계는 갈등을 수렴하지도 해결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것의 오작동과 작동 불능이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진영국가 한국은 갈등의 파괴적·부정적 역할이 극에 달해 불안정한 국민들은 국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느니 직접 시위하거나, 아니면 자살이나 출산 중단을 선택하고 있다. 개인을 넘은 공동체의 자멸이자 자살이다.

최고 물질 번영과 최하 국가 역할의 결합은 최하 수준의 사회 형평 지표들로 연결된다. 국가 역할의 위축과 실종의 당연한 결과다. 양극화의 결과 강자는 더욱 강해지고 약자는 더욱 약해지며,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빈자는 더욱 가난해지고 있다. 공교육의 붕괴와 사교육의 기록적인 창궐은 물론 직종별·학력별·성별 임금 차이도 세계의 앞선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권력과 자원, 교육과 인구, 금융과 병원의 수도권 집중은 이미 편중과 균형발전을 말할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완전 불평등 수준이다.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 불평등 지수도 그러하다.

자영업자 비중과 창·폐업 주기, 비정규직 비중과 임금 격차도 단연 OECD 선두권이다. 여성들의 관리자 진출 비율과 정부·의회 부문 대표를 보면 인구의 절반인 그들의 건강·교육 영역에서의 성취와 경제·정치 영역에서의 대표성이 얼마나 비대칭적 불평등 상태인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 우리는 같은 나라에서 같은 인간은 고사하고 같은 시민과 자유민, 같은 국민과 공민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자유와 민주의 나라를 만들었는데 궁핍과 불평등의 나라가 돼, 거꾸로 자유와 생명을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최악 중의 최악은 단연 참담한 인간지표들이다.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어디서부터 해법을 찾아야 좋을지 모르는, 인류의 어떤 국가공동체도 경험해보지 못한 암담한 반(反)생명, 반(反)인간 지표들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 나라가 자살과 저출생 문제에서 오래도록 압도적인 세계 최악·최초의 지표들을 기록하고 있음을 보아왔다. 두 지표는 최악 지표의 기간도 세계 최장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살 만한 세상에 대한, 오늘과 내일의 인간 생명에 관한 주관적 인식과 객관적 현실 모두에 대한 가장 무겁고도 엄중한 증거요, 표상들이다. 청년 자살, 노인 자살, 고립사, 직계 존비속 살인 역시 마찬가지다. 오래도록 선두권을 놓치지 않고 있는 산업재해 사망과 교통사고 사망도 마찬가지다.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두렵다.

이제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문을 닫고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들이 문을 닫고, 초·중·고·대학이 연이어 문을 닫고 있다. 지방과 도시를 가리지 않는다. 이미 완전히 절망적인, 인류 최악 중의 최악 수준인 서울과 대도시들의 출생률은 가위 언급 불능이다. 그나마 그들보다는 높은 출생률을 갖는 지방의 인구를 빨아들여 도시로서 연명할 뿐이다. 출생에 관한 한 정직하게 말하면 도시 소멸과 서울 소멸이 지방 소멸보다 먼저이고 실제 현실이다. 이미 죽은 인간공동체인 대도시들이 죽어가는 지방을 확인 소멸시키면서 인공 연명을 하고 있을 뿐이다. 즉 도시고 지방이고 모두 소멸하는 국가 소멸 단계인 것이다. 출생 문제에 관한 한 어떤 정책도 예산 규모도 먹혀들지 않고 있다. 노인빈곤율과 연평균 노동시간, 돈을 받는 일과 돈을 받지 않는 일, 남녀 가사노동 시간 비율 역시 OECD 최악 수준이다.

이웃과의 인간적 연대에 관한 우리들 스스로의 기대 응답 역시 세계 최악 수준이다. 참으로 끔찍하다. 돈과 가족을 포함한 삶의 주요 가치들에 대한 우리들의 가공할 답변은 물론이려니와, 위기 시 공동체와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응답 역시 과장하여 경악할 만하고 객관적으로 말해 당연하다. 객관적 지표들도 주관적 마음들도 우리는 이미 한 나라요 한 국가로서, 또 같은 시민과 국민으로서 인간공동체의 본질을 놓쳤고, 서로 기대하지 않고 있음에 틀림없다.

고래로 한 나라가 물질의 쇠락으로 멸망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최고 물질 번영 상태의 이 나라가 놓인 절체절명의 갈림길에서 핵심 문제들에 대해 하나씩 담론하고, 인간과 나라를 함께 살릴 길과 해법을 찾아보도록 하자. 끝까지 절망적 희망과 희망적 절망의 끈을 놓지 말자. 만약 끝내 길을 못 찾고 헤매더라도, 문제들을 한번 전부 드러내놓고, 진지한 성찰과 제대로 된 토론의 광장을 가져보자. 지금 우리에게 우리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지 않은가.

▶박명림 교수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승자독식이 가른 ‘진영공화국’…국가소멸 위기에 놓이다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제주 4·3(석사)에 이어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박사)로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래 평화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현상 연구에 천착해왔다. 정치학자로서, 역사학자로서 전쟁과 평화, 생명과 인간, 그리고 국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 <다음 국가를 말하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등이 있다.



Today`s HOT
발리 국제 에어쇼 준비 중인 호주 전투기 휴대장치 폭발... 헤즈볼라 대원의 장례식 폭우로 침수된 이탈리아의 피해자 돕는 소방관들 태국 문화 기념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
산불과 그로 인한 연기로 뒤덮인 포르투갈 메이저리그의 첫 역사, 50홈런-50도루 달성한 오타니
러시아의 공습으로 파손된 우크라이나 교회 지진 훈련 위해 멕시코시티에 모이는 사람들
레바논 상점에서 일어난 전자기기 폭발 페루 활동가들, 당국의 산불 비효율 대응에 시위하다.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해 축하하고 있는 브루어스 팀 홍수 피해로 무너진 교회를 청소하며 돕는 폴란드 사람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