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의 기운이 떠도는 시대다. 뉴스 창에선 인구절벽, 지방소멸, 심지어 국가소멸 같은 말이 오간다. 이 사회의 재생산에 위기가 닥쳤다는 불안감이 퍼져 있다.
눈길을 돌리면 문화산업에서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젊은 세대의 문화다. 뉴스 창에선 젊음을 부르는 이름 역시 빗발친다. ‘이대남’ ‘MZ세대’처럼 너무 많이 불려나와 이제는 닳아버린 이름이다. 하지만 다른 세대와 섞이지 않는 10~20대만의 문화와 정체성이 있는지 떠올려보면 잘 생각나지 않는다. MZ세대부터 그렇지 않은가. 1980년대생부터 2010년대생까지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이들이 함께 묶인 무지막지할 만큼 포괄적인 개념이다.
2010년대 이후 한국 문화의 흐름을 꼽아보면, 1990년대·2000년대의 귀환과 10~40대 생활문화 양식의 뒤섞임이다. 10년 전부터 방송·영화·가요계를 아우르며 1990년대를 재현하는 콘텐츠가 제작돼 왔고 지금은 2000년대 초반까지 ‘Y2K’란 유행으로 소환됐다. 이러한 상황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과거는 어느 시대에나 복고로 돌아오고 1970~1980년대가 소환된 적도 있다. 하지만 예전의 복고가 그 시절을 모르는 젊은 세대가 소비하는 유행이었다면 1990년대·2000년대 복고는 그 시절 젊음을 보낸 중장년층이 타깃이다. 이들이 나이를 먹고도 상업문화의 주역으로 남았고 10~20대와 동질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아이돌 산업은 전통적으로 상업문화 중 젊은 세대 친화력이 가장 높은 산업이었다. 이제 K팝은 더 이상 10~20대만 대상으로 하는 산업이 아니다. 현재 ‘대세’ 아이돌 뉴진스의 콘셉트도 중장년층 취향을 아우르는 ‘Y2K’다. 그 밖에도 1990년대·2000년대의 문화적 형질은 미디어와 패션을 통해 한때의 유행을 넘어 일상에 정착했다. 젊은 세대만의 트렌드는 생산되지 않고 과거가 현재를 덮어쓴 상태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저출생 현상으로 10~20대 인구가 유의미한 크기의 트렌드를 독자적으로 생산할 수가 없다. 20년 전엔 인구가 가장 많은 세대가 2030이었지만 지금은 단연 4050이다. 더 큰 소비자 덩어리가 마련되고 거기에 맞춘 공급이 ‘젊음’의 이름으로 유행하려면 20대와 40대가 함께 묶여야 한다.
대중문화는 원래 젊은 세대와 동행했다. 또래들만의 유행과 아이콘은 돌아오지 않을 시절을 함께 살고 있다는 실감을 남기고 갔다. 젊은 세대만의 문화가 사라진다는 건 그들이 사는 현재의 어떤 경험이 상실되고 미래에 남길 기억도 흐려진다는 뜻이다. 지금의 20대가 40대가 된다면, 1970년대생 ‘X세대’가 1990년대를 자신들의 시대로 추억하는 것처럼 2020년대를 떠올릴 수 있는 공통분모가 남아 있을까?
10~20대의 문화를 갑자기 만들어낼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이름이 기성세대에 흡수되는 것에 반대할 수는 있다. 미디어에서 젊은 세대를 분별없이 호명하는 관행을 돌아보고 세대와 세대의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다. MZ세대 같은 개념의 문제는 단순히 범주의 방만함에 있지 않다. 더 어린 이들과 싸잡으며 나이 든 이들에게 젊음의 명찰을 달아주는 대신, 말 그대로의 젊은이들의 존재를 가리고 주변으로 밀어내는 것에 있다. 10~20대의 모습은 ‘급식체’ ‘MZ세대의 특징’처럼 과연 존재하는지 확인하기도 힘든 어떤 습속이 기성세대의 시선으로 과장되고 타자화된 채 묘사될 뿐이다. 젊은 세대의 삶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전달하려 노력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10~20대의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건 장차 더욱 심화될 인구 감소 현상이 울리는 전주곡일지도 모른다. 한 세대의 초상을 그리는 건 현재를 기록하는 일이다. 소멸의 징후가 맴도는 시대에, 기록은 소극적으로나마 소멸에 저항하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