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간 진행된 시민대표단의 연금개혁 숙의과정이 종료됐다. 시민대표단 492명은 모수개혁에서 ‘더 내고 덜 받는’ 재정안정화보다 ‘더 내고 더 받는’ 소득보장 강화를 오차범위를 넘어서는 56%의 비율로 지지했다. 또한 구조개혁을 대표하는 기초연금 개혁방안에서는 현행유지 방안을 더 찬성했다. 특히 학습과 숙의를 거치면서 모수개혁의 두 대안에 대한 지지가 역전된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학습과 숙의가 시작되기 전에 실시한 1차 조사에서는 소득보장 강화 36.9% 대 재정안정화 44.8%로 재정안정화 지지가 크게 우세했으나 학습과정을 마친 후 실시한 2차 조사에서는 50.8% 대 38.8%로 역전되었고 숙의토론회가 종료된 4월21일의 3차 조사에서는 56.0% 대 42.6%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기초연금에서도 학습과 숙의가 진행될수록 현행 유지 찬성이 더 높아졌다.
이는 연금개혁에 관한 정보가 균형있게 제공될 경우 시민들의 선택이 어떨 것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준 증거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연금개혁과 관련하여 ‘기금소진론’과 ‘기금소진=연금미수령론’이라는 ‘기금소진 가스라이팅’이 난무하였고 ‘기금소진 후 연금수령은 곧 미래세대 보험료폭탄’이라는 ‘보험료폭탄 가스라이팅’이 주를 이뤘다. 이번에 숙의과정에 참여한 시민대표단도 주로 이런 종류의 정보를 접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소득보장과 재정안정 양 입장을 균형있게 담은 자료로 학습을 하고 또 양 입장의 내용을 균형있게 설명하고 토의하는 숙의토론회를 거치게 되자 공적연금의 본질과 연금개혁의 방향에 대해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시민들은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한 공적연금 강화를 지지하는 분명한 입장을 보였다. 균형있는 정보 앞에서 기금소진·보험료폭탄 가스라이팅은 설 자리가 없다.
시민대표단의 최종선택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라는 지위가 무색하게 세대갈등을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보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20대의 소득보장론 찬성이 더 높고 60대 이상이 1%포인트 차이로 재정안정론을 더 지지하여 세대갈등론도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 대구·경북 시민대표단의 72.3%가 소득보장론을 찬성한 점도 눈에 띈다.
이번 공론화를 통해 재정안정론도 40%가 넘는 지지를 얻은 점에 유의해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재정안정에 대한 지금까지의 접근을 바꾸어야 할 근거를 얻었음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간 재정안정론은 미래에 보험료 35%가 된다면서 세대 간 형평성 제고를 위해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시민대표단은 미래보험료 35%라는 주장은 근로소득에만 보험료를 부과할 것을 전제한 것임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거부했다. 즉, 사전적 국고투입을 통한 미래세대 부담 완화에 80.5%의 높은 지지를 보냄으로써 근로소득에만 부과되는 보험료만이 아니라 국고투입 등 재원확보기반의 다양화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이다. 또, 시민대표단은 출산크레딧과 군복무크레딧 등 크레딧 강화를 강하게 지지했고 나아가 크레딧 재원의 전액 국고지원과 저소득지역가입자 보험료 부담 완화를 통한 사각지대 해소에도 높은 지지를 보였다. 사전적 국고투입과 사각지대 해소에 대한 높은 지지를 종합하면 시민대표단은 크레딧 강화 및 저소득자의 국민연금 가입지원을 통한 사각지대 해소에 국고가 우선 지원되고 이를 통해 사각지대 해소가 일정한 진전을 이룬 후에 일반적 급여지원에 국고가 투입되는 방안을 지지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또, 시민대표단은 플랫폼, 원청기업에 대한 사용자책임 강화에도 91.7%의 높은 찬성을 보여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국민연금 테두리로 들어와야 함에 강한 공감과 연대의식을 표명하였다.
시민대표단이 숙의한 결정을 폄훼하는 일부 전문가연 하는 인사들과 언론의 행태는 중단돼야 한다. 국회는 시민대표단이 숙의를 통해 보여준 민의를 충실히 반영한 연금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