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전태일의 죽음은 당대에 큰 충격과 울림을 줬습니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었을 겁니다. 노동운동의 길을 걸었고, 민중 정치의 길도 걸었지요.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이후 국회의원, 도지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정치인생 막바지에 고용노동부 장관 자리까지 왔으니 당신에겐 복된 길이었을지 몰라도 전태일의 길을 역행한 길이었습니다.
헌법 32조를 알고 있을 겁니다.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뭘 해야 하는지 명시한 조항입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의 보호에서 합법적으로 배제된 노동자가 1000만명이 넘습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란 이유로 그렇습니다. 헌법 32조는 근로기준법 앞에 사문화됐습니다. 54년 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근로기준법을 불살랐습니다. 오늘 1000만명의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을 일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하라”고 요구합니다. 당신에게 묻습니다. 헌법에 위배되는 근로기준법을 뜯어고치지 못할 거라면 지금 당장 불살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불법파업엔 손해배상 가압류 폭탄이 특효약”이라 했습니다. 노동조합을 적대해온 자본의 왕국에서나 할 법한 말을 만인 앞에서 뱉은 당신을 기억합니다. ‘노사 법치주의’를 말합니다. 온갖 반칙에도 재벌 자본가는 멀쩡하고,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은 금지, 통제와 처벌로 가득한 노동법에 가로막힌 현실에서 노사 법치주의는 사용자 앞에 함부로 나서지 말란 ‘합법적 공갈·협박’에 불과합니다. 노동 약자 지원을 말했지요? 노조가 있으면 ‘노동 강자’란 프레임을 씌우는 전제부터 오류이니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리 없습니다. 노동 약자들은 권리에서 배제된 절망의 현장에서 일합니다. 노동 약자가 아니라 노동법 밖 노동자입니다. 왜 노동자의 기본권을 박탈한 ‘노동법’을 뜯어고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혹여 장관이 돼 노동 약자 보호를 위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노동법 개정에 앞장서겠다고 공표한다면 적극 지지할 것입니다. 오늘 당장 해고해도, 주당 80시간을 일해도,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둔갑시켜도, 도급·하청·파견으로 진짜 사장이 누군지조차 찾기 힘들어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 없는 지금의 노동법을 그대로 두고 노동 약자 운운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노조 밖, 근로기준법 밖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대안을 내놓는 게 우선입니다.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에 따른 노동법 전면 개정부터 하면 됩니다. 단언컨대 노동법 개정으로 보호막을 만들지 않곤 약자의 삶을 한 치도 진전시킬 수 없습니다. ‘노동 약자’에 대한 시혜가 아닌 ‘법에 의한 보장과 보호’ 대책을 내놓는 게 장관 후보자의 도리일 것입니다.
“노조가 없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다”는 당신의 반노동 신념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 신념으로 당신이 호명하는 노동 약자들이 견뎌야 할 절망과 고통이 더 깊어질 내일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습니다. 민주노총을 적대시하고, 노동3권을 부정하며, 헌재의 박근혜 탄핵 인용 결정을 부정한 당신이 노동부 장관 자리까지 탐하는 건 당신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 자리는 노동부 장관 자리는 아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