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반도체기업(IDM)의 맹주이자 중앙처리장치(CPU)시장의 최강자로 불렸던 인텔의 ‘반도체 왕국’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비용절감을 위한 직원 15% 감원, 배당금 지급 중단에 이어 최근에는 퀄컴에 매각될 처지까지, 수차례의 주식 액면분할을 단행했던 왕년의 인텔을 돌아봤을 때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인텔은 반도체 산업에서 널리 알려진 무어의 법칙(Moore’s Law)을 발견한 고든 무어가 창립한 회사다. 과연 인텔의 몰락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인텔의 몰락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지적한다.
첫째,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기술개발에 소홀했던 점이다. 스마트폰의 보급화가 급속히 이루어진 2010년을 기점으로 IT기기 트렌드는 PC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그러나 인텔은 시장의 변화에 맞는 능동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대신, 기존 사업영역인 PC에 집중하는 수동적인 전략을 택하며 모바일 시장 진입이 늦어졌다. 그 결과, 시장에 가장 먼저 들어간 기업이 기술 진입장벽 및 브랜드 로열티 형성으로 시장 지배 가능성이 커진다는 선발 기업 우위효과(First Mover Advantage)를 전혀 누리지 못했다. 결국 모바일 시장에서 인텔은 후발 기업으로 시작하여 현재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장에서 1등을 차지하는 기업 중 60% 이상이 선발기업임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아쉬운 판단이다.
둘째, 비(非) 기술직 출신 최고경영자(CEO) 선임이다. 2013년 인텔의 6대 CEO로 임명된 브라이언 크르니자크는 모바일 분야 후발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자율주행차량, AI, 클라우드 컴퓨팅과 같은 당시의 신사업에 베팅하기로 결정하며 인텔의 재건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크르니자크는 정작 필요했던 신기술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원가 및 고정 지출의 감소를 우선시하는 최고운영책임자(COO) 출신 CEO였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켜봐야 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무시한 채 단기 성과에만 치중해 대다수의 R&D 인력을 해고하는 최악의 판단을 내리며 인텔이 내리막길을 걷게 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고객이 가격보다 제품의 성능에 민감한 전문 공급자형(Specialized Supplier)으로 분류되는 반도체 특성을 고려했을 때 기술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R&D 투자가 선행돼야 함을 간과한 결과다.
인텔의 사례처럼 비즈니스 상황에서의 판단 미스는 수익성 문제를 넘어 기업의 존폐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비단 인텔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반도체 기업들에도 적용될 수 있는 시나리오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 또한 현재의 명성에 취해 변화를 두려워하고 신기술에 대한 투자를 등한시한 인텔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단순히 ‘우리 회사가 잘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기술’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전략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는 역량을 꾸준히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