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글 국제화 위해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 정책을

김선일 부경대 명예교수 과실연 전임 특별위원장

유엔 등 국제기구에선 지명이나 인명 등 고유명(proper names)을 전자법 방식으로 로마자로 전환하는 디지털 문자정보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전자법 방식으로 하는 이유는 각국 문자가 로마자와 정확하고 일관성 있게 교환되어 문자정보 처리와 국제적 소통이 가능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제기구는 한국에 전자법인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런 요구와는 다르게 전사법인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글은 문자이고 국어는 말이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한글 지명을 말 지명으로 바꾸어 로마자로 표기한다. 정부가 국제기구의 한글에 대한 요구를 국어로 대체하여 한글 국제화를 막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한글 지명 ‘종로’를 예로 들어 보자. 전자법에서는 ‘종로’를 ‘Jong Ro’로 전환하면 역전환으로 ‘종로’로 복원되어 한글과 로마자가 서로 소통한다. 그러나 현행 전사법에서는 ‘종로’를 말 지명 ‘종노’로 바꾸어서 ‘Jongno’로 전환하면 역전환으로 ‘종로’로 복원되지 못한다.

전사법은 탐험가들이 문자가 없는 미개 지역의 지명 등 고유명을 기록하기 위해 로마자로 적는 방식이다. 문체부는 1997년 기존 전사법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기계적 전환이 가능한 전자법으로 개정사업을 추진했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 다수도 전자법을 지지했다. 그러나 문체부는 종국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세워 사업을 중단하고, 1999년 다른 안을 제안하여 현행의 전사법을 만들었다. 현행 전사법은 외국인이 길을 물을 때 신림이나 왕십리를 실림(Silim)과 왕심니(Wangsimni) 등 말 지명으로 발음해서 알아듣도록 하자는 취지를 살렸다. 그래서 영어식으로 영문자의 발음과 단어 단위 철자 방식에 맞추었다. 이후 한국은 여러 차례 전사법을 유엔에 제출했지만 2013년 결국 불승인되었다. 전사법은 로마자 전환의 일관성과 정확성이 없는 비과학적인 방식이라서 디지털 문자정보 체계에 수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로마자 표기법을 개혁하여 국제사회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유엔의 지침서에 따라 원천 문자로 복원이 가능한 전자법을 만들려면 다음 두 가지를 개혁의 핵심 포인트로 정해야 한다.

첫째, 한글 낱자와 로마자를 1 대 1 대응으로 전환한다. 한글 낱자는 훈민정음에서 문자의 발음이 국가나 지역마다 다른 것을 28개의 정음(正音)을 정하여 만든 글자다. 이 낱자를 기준으로 정음의 제자와 음운의 원리에 따라 로마자로 전환한다. 예를 들어 ‘국’을 로마자로 전환할 때, 음운순환원리에 따른 종성부용초성(終聲復用初聲)의 원칙을 적용하여 초성과 종성의 같은 ‘ㄱ’을 하나의 로마자 ‘g’로 대응하여 ‘gug’로 전환한다. 이렇게 전환된 로마자는 역전환으로 ‘국’으로 복원된다. 그러나 현행 전사법에서는 하나의 ‘ㄱ’을 ‘g’나 ‘k’로 대응하여 ‘guk’으로 전환하면 역전환으로 원천 한글 ‘국’으로 복원되지 못한다.

둘째, 전환된 로마자 낱자를 한글의 음절 단위로 철자한다. 한글은 한글 낱자가 초성, 중성, 종성이 합해진 음절 글자이다. 그래서 전환된 로마자를 훈민정음의 음절합자원칙(初中終三聲 合而成字)에 따라 음절 단위로 철자한다. ‘한강’을 예로 들면, 전환된 로마자를 음절 단위로 묶어서 ‘Han Gang’로 철자하면 역전환으로 ‘한강’으로 정확하게 복원된다. 그러나 로마자를 영문과 같이 단어 단위로 ‘Hangang’로 철자하면 역전환으로 ‘항앙’이 되어 원천 한글로 복원되지 못한다.

이렇게 훈민정음의 제자원리와 철자원리를 적용한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은 국제적으로 로마자와 한글이 서로 소통하게 한다. 정부는 이런 전자법 제정을 통해 국제사회에 올바른 한글 길잡이를 세워주기 바란다.

김선일 부경대 명예교수 과실연 전임 특별위원장

김선일 부경대 명예교수 과실연 전임 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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