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정은과 트럼프, 평화의 행진을 시작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체제안전 보장을 제공하고, 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공동의 노력, 북한의 4·27 판문점선언 재확인과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노력, 북한 지역의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 등 4개항에 합의했다. 두 정상은 또 정상회담 결과를 이행하기 위해 이른 시점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격이 맞는 북한 고위급 인사 간에 후속 협상을 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백악관 방문 요청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70년 적대관계를 털고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구축의 길을 함께 가기로 합의한 것을 환영한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지구상 유일의 냉전 지역이던 한반도가 군사적 대결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와 번영의 중심지로 탈바꿈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번 회담은 포괄적이며 선언적이다. 특히 합의에서 미국이 원하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가 빠졌다. 비핵화의 구체 조치나 시한이 담기지 않은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미국 입장에서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 재확인’은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70년 동안 대결해온 양국의 정상이 사상 처음으로 만나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큰 틀의 공동 목표를 설정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냉전과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엄중한 현실을 한꺼번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비핵화 로드맵은 실무자들 간의 후속 회담에서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고, 또 그것이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양국 정상 간 합의는 실무자들이 관여한 종래의 북·미 합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정상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적지 않다. 북한이 절대적 존재인 김 위원장이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싶다. 북한이 CVID란 표현에 대해 무조건 항복이 연상된다며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CVID와 유사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4·27 판문점선언도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고 돼 있다.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데 실질적으로 CVID 없이 이뤄질 수는 없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체제안전 보장과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약속한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 비핵화에 따른 필수적인 상응 조치이자 북·미 적대정책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양측은 이번에 체제안전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핵화 이행 조치를 협상하는 후속 회담 과정에서 다뤄질 핵심 의제가 될 것이다. 북·미 수교 역시 매우 중요하다. 비핵화를 촉진하고, 비핵화를 완결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핵 폐기와 수교를 통해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기 바란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합의는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료와 평화협정이 체결될 길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기회에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해체해 지구상 유일한 냉전을 제거해야 한다. 특히 종전선언은 북한이 원하는 체제안전 보장의 첫 단계로, 남·북·미만의 뜻만 모아지면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종전선언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북한과 협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고 매우 도발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과의 대화 기간 동안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할 방침을 시사한 것으로 공식적인 합의 못지않은 중대 사안이다. 북한이 그간 미국의 적대행위와 핵개발의 원인으로 한·미 군사훈련을 지목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는 실질적인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맥락 없이 불쑥 언급한 것이어서 한·미 협의를 통해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두 정상이 단독 및 확대 회담과 오찬을 함께하며 신뢰를 쌓은 것은 합의 못지않게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김정은 위원장은 안보와 번영을 위한 역사적 인물로 기록될 것”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단 하루 회담했지만 신뢰가 쌓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정상이 자주 만나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미국의 북핵 우려와 북한의 체제안전 우려를 불식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정상이 계속 만나기로 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번에 70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신뢰와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두 정상이 정상회담을 열고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 노력을 약속한 것만 해도 진전이다. 그러나 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다. 특히 비핵화 합의가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미국 주류와 보수층을 설득하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간 미국 내 여론이 공동성명에 CVID 표현이 담기는지 주목해왔다는 점에서 회담 성과 논란이 심화될 수도 있다.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 때 그와 관련된 질문이 쏟아진 것이 그런 관측을 낳게 한다. 논란이 장기화될 경우 자칫 비핵화 동력이 훼손될 수 있다. 가급적 빨리 북·미 간 후속 회담을 열어 정상회담 합의를 뒷받침하는 가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트럼프와 김 위원장은 이제 공동운명체가 되었다. 정상들이 직접 나선 만큼 북핵 해결 과정을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뿌리 깊은 반목과 갈등이 일거에 해소될 수는 없다. 만남과 협상을 통해 신뢰를 쌓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다시 진전된 조치를 만들어 나가는 길밖에 없다. 한국 정부의 지원과 중재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오랜 세월 한반도를 압박해온 분단과 냉전을 끝내고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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