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 앞의 평등’ 원칙 뒤흔든 이재용 가석방

국정농단 사건으로 복역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사진은 2018년 2월5일 ‘국정농단’ 항소심 선고 뒤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는 이 부회장. |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정농단 사건으로 복역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사진은 2018년 2월5일 ‘국정농단’ 항소심 선고 뒤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는 이 부회장. |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광복절을 앞두고 오는 13일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는 9일 이 부회장을 포함해 810명의 가석방을 의결하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를 승인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뇌물 사건으로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돼 서울구치소에서 수형생활을 해왔다. 박 장관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환경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재벌 총수에게 특혜를 줬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적 원칙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부회장의 가석방 결정은 여러모로 타당하지 않다. 우선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몰고온 국정농단 사건에서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형법에서 가석방의 중요한 조건은 ‘개전의 정이 현저할 때’이다. 이 부회장은 지금까지 혐의를 제대로 인정한 적도 없고, 분명한 사과의 입장을 밝히지도 않았다. 가석방심사위가 적격 여부를 심사할 때 이를 충분히 따져봤는지 묻고 싶다. 이 부회장 가석방 심사를 앞두고 형집행률 기준이 완화된 점도 석연치 않다. 현행법상 가석방은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채우면 가능하지만, 실무상으로는 형기의 80% 이상 복역해야 심사 대상이 돼왔다. 그런데 지난달 법무부가 예비심사에 오를 수 있는 형집행률 최소 기준을 50%로 낮췄다. 이 부회장이 7월 말 60%를 채우면서 ‘이재용 맞춤형 완화’라는 비판이 불거졌다.

가석방 제도는 재범 가능성이 낮은 수형자를 조기에 사회로 복귀시키는 취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현재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과 프로포폴 불법 투약 사건 등 또 다른 형사재판의 피고인 신분이다. 정부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대통령 고유 권한인 사면 대신 가석방을 택한 것이라면, 제도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흔들었다는 점에서도 적절하지 않다. 이 부회장의 가석방이 진행 중인 다른 재판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될 것이다.

이 부회장 가석방은 과거 재벌 총수들에 대한 무원칙한 사면과 마찬가지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귀결됐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일이다. ‘법의 지배’는 한국 사회가 오랜 세월에 걸쳐 합의하고 지켜온 가치다. 정부는 특정인을 위해 이러한 가치를 허물고 말았다. 사법제도의 정당성과 공정성을 훼손한 책임은 정부에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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