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권 지평 넓혀온 인권위 20년, 차별금지법 통과시킬 때

국가인권위원회가 25일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 출범한 인권위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인권의 지평을 넓혀왔다. 그동안 모두 15만8790건의 진정사건을 받아 처리했다. 인권침해나 차별 행위를 한 기관에 대해 인권위는 전향적 시각으로 시정 권고를 내렸다. 인권위의 권고를 행정기관이 반드시 수용할 의무는 없지만, 인권위의 시정 권고는 그 자체로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시민들의 인권 의식을 고양함으로써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동하고, 인종차별적 표현을 바꾸었으며, 대체복무제 시행까지 이끌어냈다. 사회적 약자들의 곁을 지켜온 의미 있는 역정이었다.

인권위는 입법·행정·사법 3부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관이다. 그 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노무현 정부 당시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 대한 사실상의 반대 권고였다. 인권이란 가치를 최상위에 둔 독립기관이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인권위가 걸어온 길에 찬사와 전진만 있지는 않았다. 이명박 정권은 인권 문외한인 현병철 위원장을 임명해 인권위의 활동을 무력화시켰다. PD수첩 고소, 세월호 참사 인권침해, 백남기 농민 사망 등 허다한 인권유린 사건에 대해 인권위는 소극적인 태도로 대응해 시민들의 지탄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인권위의 갈 길은 아직도 멀다. 우선 정권의 입김에서 벗어나 책임감 있게 인권 정책을 펼 수 있도록 조직과 예산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 인권위원의 추천·임명 절차도 더 투명하게 해야 한다. 행정기관의 수용성도 높여야 한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인권위의 정책권고 중 검토 과제를 제외하고 일부수용이 37.1%, 전부수용이 49.8%에 불과했다. 행정기관과 지자체가 인권위의 권고를 적극 수용해 정책에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당면한 인권 과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인권위는 지난해에 이어 최근에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입법을 국회에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인권위 20주년 기념식에 참석, “인권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언급했다. 법을 통과시킬 명분은 차고 넘친다. 정치권은 시대적 과제인 차별금지법 제정에 전향적으로 임해야 한다. 대선의 유불리를 따질 사안이 아니다. 이런 토대 위에 국가보안법 폐지와 군·스포츠 인권 개선, 사형제 폐지 등 과제들도 착실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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