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살균제 조정안 거부한 옥시·애경, ‘11년 고통’ 외면할 텐가읽음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족,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들이 6일 가습기살균제 조정위원회가 내놓은 최종 조정안을 반대한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권도현 기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족,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들이 6일 가습기살균제 조정위원회가 내놓은 최종 조정안을 반대한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권도현 기자

가습기살균제 참사 후 11년 만에 나온 피해구제 조정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책임이 가장 무거운 기업들이 사회적 합의기구가 마련한 조정안을 거부하고 있어서다. 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보상을 위한 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조정에 참여한 가습기살균제 제조·유통 9개 기업 가운데 SK케미칼·SK이노베이션·LG생활건강·GS리테일·롯데쇼핑·이마트·홈플러스 등 7개 업체만 조정안 수용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책임의 무게에 있어서 양대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산업은 조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피해자 및 유족에게 지급할 보상액 최대 9240억원 가운데 절반 이상을 내야 하는 옥시와 수백억원 분담이 예상되는 애경이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두 기업이 빠질 경우 보상 재원은 턱없이 부족해져 실질적인 보상은 물 건너간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조정위는 반년간 양측의 의견을 수렴한 끝에 피해자 유족에게 2억~4억원, 최중증 피해자에게 최대 5억여원을 지급하도록 하는 조정안을 내놨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안전하다는 광고를 믿고 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사망과 폐질환 등 피해와 고통을 메우는 데는 한참 모자란 액수이다. 그런데도 두 기업은 이런 보상이 과도하다며 조정을 거부했다. 지난 11년 동안 기다려온 피해자들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은 태도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참다못한 피해자 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들이) 책임져야 할 피해자들은 조정대상 7027명만이 아니라 건강 피해자로 추산되는 95만명”이라며 전체 피해자 중 0.8%에 대한 피해조차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를 비판했다.

정부는 2017년 국회를 통과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에 따라 책임기업들로부터 분담금을 받아 피해자들에게 치료비 등으로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보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옥시 측은 이미 개별 보상을 마쳤다고 하지만, 3000명이 넘는 피해자 가운데 405명에 불과하다. 2001년부터 10여년간 수많은 시민들이 가습기살균제에 들어 있는 독성물질로 숨지고 폐를 다쳤다. 이후 지난 11년 동안 피해자들의 일상은 완전히 파괴됐다. 오죽하면 이 사건을 ‘안방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비유할까.

조정위는 다시 조정에 나서 기업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시대다. 옥시와 애경은 이번이 ‘살인기업’이라는 오명을 씻고 새 출발할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도 뒷짐만 지고 있어선 안 된다. 책임기업에 보상을 강제하도록 피해구제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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