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1일 오후 7시15분쯤 경찰 고위직인 치안감 28명에 대한 전보 인사를 내놓았다가 2시간 후 이 중 7명의 보직이 바뀐 인사 명단을 발표했다. 경찰 인사상 초유의 일로, 공직 인사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더구나 이번 인사는 행정안전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가 경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권고안을 발표하자 경찰청이 “법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밝힌 직후 이뤄졌다. 정부가 인사를 통해 경찰 장악에 나섰으며, 경찰의 독립성 훼손은 이미 시작됐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인사 번복 과정을 놓고 행안부와 경찰의 말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이 희한하게 대통령 결재가 나기 전에 기안 단계의 인사안을 공지해 사달이 났다”고 말했다. 대통령실도 “경찰 인사안을 수정(번복)한 일이 없다. 행안부 장관이 제청한 그대로 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행안부에 파견 나온 경찰관이 인사안을 경찰청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 쪽 설명은 다르다. 행안부가 앞선 인사안을 최종본이라고 통보했다가 나중에 다른 안을 최종본이라며 수정 요청했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행안부 파견 치안정책관은 말이 없다.
경찰공무원법에 따르면 총경 이상 경찰 고위직 인사는 경찰청장 추천을 받아 행안부 장관 제청을 통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인사 사태의 책임은 대통령실과 경찰청 사이에서 인사안을 바꾼 행안부에 있음이 명백하다. 특히 행안부가 밤에 인사를 하고 또 2시간여 만에 그 인사안을 급히 수정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경찰청이 대통령 결재가 나지 않은 인사안을 내부에 공지하고 언론에 공표했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파견 경찰관이 착오를 했다고 해도 김창룡 경찰청장의 의견이 반영된 인사안이 바뀐 것은 분명하다. 독립 외청의 인사안을 무시한 이유가 밝혀져야 한다.
경찰의 독립성 강화는 시대적 요청이다. 1991년 내무부 치안본부였던 경찰을 외청으로 독립시킨 이후 모든 정부가 이런 원칙을 지켜왔다. 검찰의 수사기능을 대거 경찰로 옮기는 만큼 경찰의 독립적인 업무 수행은 더욱 중요해졌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경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경찰법 취지를 무시하고 정부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번 인사도 경찰을 무리하게 장악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본다. 경찰 독립 훼손 시도는 중단돼야 한다. 이번 인사 번복 사태는 유야무야 넘길 일이 아니다.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그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