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채무조정, 도덕적 해이 막되 은행 공적 책임 다해야

오는 9월 상환 유예가 끝나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부실 대출에 대해 원금의 최대 90%를 감면하는 ‘새출발기금’이 출범 전부터 삐걱대고 있다. 원금 감면율이 지나치게 크다며 은행권이 반발하는 것이다. 시중은행 대출 담당자들은 최근 감면율을 10~50%로 하향 조정하고, 감면대상도 줄이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은행의 속내는 이익이 줄어들까 우려하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거리 두기 시행으로 자영업자·소상공인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은행은 최근 2년 연속 사상 최대 수익을 올리며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30조원으로 ‘새출발기금’을 설립해 자영업자·소상공인 25만명의 채무를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연체 90일 이상의 부실 대출자에 대해 원금의 60~90%까지 깎아주기로 했다. 정부 예산으로 하는 정책이니 표면적으로 은행과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은행이 반발하는 것은 새출발기금 감면율이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 빚을 못 갚을 상황에 처한 대출자는 신복위에 채무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데, 원금의 44~61%를 감면받는다. 새출발기금이 최대 90%까지 감면한다면 대출자와 신복위는 비슷한 수준의 감면을 요구할 수 있다. 은행으로선 감면율 상향에 따른 손실이 커질 수 있는 것이다.

과도한 원금 감면은 부실 대출을 양산해 금융권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대출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는 만큼, 채무조정은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도록 정교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 같은 측면에서 금융위가 새출발기금의 90% 감면 대상을 기초생활수급자와 중증장애인, 만 70세 이상 고령자 등 취약계층에 한정한 것은 바람직하다. 60~80% 감면은 자산을 초과하는 부채에만 적용키로 했다. 그럼에도 은행권이 반발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4대 시중은행의 직원 평균 연봉은 지난해 1억550만원에 이르고, 임원들은 최근 2년 새 성과급으로만 1인당 1억1200만원을 받았다. 은행이 손쉬운 이자 장사로 자신의 배를 불리는 동안 많은 시민은 코로나19로 고통받았다. 은행은 공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빚 못 갚았다는 이유만으로 동네 가게주인을 길거리로 내몰 수는 없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조만간 발표할 새출발기금 세부 방안에 원만하게 합의하기 바란다.


Today`s HOT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사해 근처 사막에 있는 탄도미사일 잔해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구의 날 맞아 쓰레기 줍는 봉사자들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한국에 1-0으로 패한 일본 폭우 내린 중국 광둥성 교내에 시위 텐트 친 컬럼비아대학 학생들 황폐해진 칸 유니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