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집단 정리해고’ 푸르밀, 기업 사회적 책임은 생각 안 하나

유제품 생산기업 푸르밀이 다음달 말 사업을 종료하기로 했다. 서울 본사와 전주·대구 공장 등 직원 350여명은 지난 17일 정리해고 통보 e메일을 받았다. 푸르밀은 “4년 이상 적자가 누적돼 특단의 대책을 찾아봤지만 부득이하게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리해고 통보는 노동조합과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푸르밀 직원뿐 아니라 협력업체와 낙농가, 화물차 운전기사 등 200여명도 일자리를 잃게 됐다. 노동자 한 명이 3인 가족을 부양한다고 가정하면 1700여명의 생계가 하루아침에 위협받게 된 셈이다.

올해로 창업 45년인 푸르밀은 2009년부터 9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내다가 최근 부진에 빠졌다. 금융감독원 공시를 보면 영업이익 손실이 2018년 15억원에서 89억원, 113억원, 123억원 등으로 매년 불어났다. 노조는 경영진 책임이 크다고 한다. 신준호 회장의 아들 신동환 대표이사가 2018년 경영을 맡은 이후 사업 다각화와 신규 투자 등이 미흡해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것이다. 매각이 무산된 이유도 시설이 낡아 보수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런데 신 회장은 올해 초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퇴직금 30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폐업을 앞둔 상황에서 직원 생존 문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퇴직금을 챙겼다는 의심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푸르밀이 폐업 후 법인청산이 아닌 사업종료 방식을 택한 것도 의문이다. 청산에 들어가면 영업손실로 감면받았던 법인세를 환수당할 수 있어 폐업하지 않는 꼼수를 쓰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푸르밀은 신 회장 일가가 90% 지분을 갖고 있다. 아무리 이사회까지 장악한 가족회사라 해도 경영 실패 책임을 노동자에게만 떠밀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주된 목적은 이익 창출이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소비자와 직원, 지역 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중요해지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슈나드 회장은 최근 자신과 가족이 보유한 파타고니아 지분 전부인 약 4조2000억원을 기부했다. 기부 이유 중 하나는 ‘직원 고용 승계’였다. 집단 정리해고는 노동자의 삶을 파괴한다. 회사와 노조는 푸르밀을 유지하는 것을 포함해 노동자들을 살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회사가 망해도 기업주는 배불리 지내는 일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기업의 무책임한 행동은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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