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시간 전 “압사” 경고 방치하다니, 정부 책임 분명해졌다

경향신문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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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하기 약 4시간 전부터 압사 위험을 알리는 시민들의 112신고가 11건이나 경찰에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발생 약 1시간30분 전에는 “사람이 쓰러졌다”는 내용까지 신고됐다. 그러나 경찰은 상황을 방치했고, 결과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시민 156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경찰이 흘려보낸 것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일 “경찰청에 독립기구를 설치해 고강도 감찰과 신속한 수사를 벌이겠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꼬리 자르기’식 조치로 끝날 일이 아니다. ‘국가의 부재’를 드러낸 충격적 사태의 전말을 낱낱이 밝히고 책임자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경찰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첫 신고는 지난달 29일 오후 6시34분 접수됐다. 사고 발생 약 4시간 전이다. 신고자는 이태원역 인근 해밀톤호텔 부근 골목을 특정하며 “사람들이 엉켜서 잘못하다 압사당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이 진입로에서 인원통제 등 조치를 해주셔야 할 것 같다. 너무 소름끼친다”고 전했다. 그러나 경찰은 ‘일반적 불편 신고’로 판단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오후 9시 전후로는 압사 사고를 우려하는 신고가 7건이나 접수됐다. 시곗바늘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안타깝기 짝이 없다. 앞서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은 지난달 30일 일선 경찰서에 ‘이태원 사건 관련 긴급 업무지시’ 공문을 내려보내고 ‘112신고사건처리표 등 내부자료 유출’을 금지한 바 있다. 경찰은 시민의 신고가 묵살된 사실을 은폐하려 했던 것인가.

이로써 이번 참사는 국가 책임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 등이 이날 일제히 사과한 것도 더 이상 책임회피가 불가능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본다. 경찰청이 자체 감찰에 착수했지만 ‘제 식구 감싸기’를 넘어 독립적이고 엄정한 조사가 이뤄질지 의구심이 든다. 또 수뇌부는 책임을 모면하고 일선 경찰관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식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윤 청장은 시민들의 신고 사실을 언제 파악했는지, 행안부 장관이나 국무총리, 대통령실에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보고했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당시 ‘부실 구조’의 책임을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해경 ‘123정’에 떠넘기고 정장인 경위 A씨를 기소하는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가 결과적으로 탄핵의 역풍을 맞았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또래들의 죽음을 지켜본 20~30대 청년들이 8년 뒤 서울 한복판에서 압사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국민 모두가 이번 참사를 자신이나 가족의 일처럼 비통해하고 있다. 정부가 설치한 분향소와 사고 현장에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시민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지는 이유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국민애도기간’을 핑계 삼아 정부 책임을 회피하고 시간을 벌려 해선 곤란하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없이 진정한 애도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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