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MBC 기자 전용기 탑승 배제, 언론 자유에 대한 도전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약식 회견(도어스테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약식 회견(도어스테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실이 해외 순방차 11일 출국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전용기에 MBC 취재진 탑승을 불허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9일 MBC 출입기자에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및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순방에 MBC 기자 탑승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윤 대통령도 10일 “대통령이 세금을 써가며 순방하는 것은 중요한 국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고, 기자 여러분에게도 외교안보 이슈에 관해 취재 편의를 제공해온 것”이라며 이 같은 방침을 확인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실을 비판했다고 이런 조치를 취한 게 아니다”라고 했는데, 소가 웃을 일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없던 언론 탄압이다.

대통령실은 “MBC의 외교 관련 왜곡·편파 보도가 반복돼온 점을 고려했다”며 자막 조작, 우방국과의 갈등 조장 시도, 대역임을 고지하지 않은 방송 등을 사례로 들었다. 윤 대통령의 지난 9월 미국 방문 중 빚어진 ‘비속어 논란’과 10월 MBC <PD수첩>에서 별도 고지 없이 김건희 여사와 닮은 대역을 방송에 내보낸 사례 등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이 XX들이”로 불거진 비속어 논란은 MBC뿐 아니라 국내외 다수 언론이 보도했다. <PD수첩> 방송은 김 여사의 논문 표절 의혹을 다룬 만큼, 외교 문제와 무관하다. 윤 대통령은 국익을 거론했는데, 과연 국익을 훼손한 사람이 비속어 논란을 야기한 대통령인가, 그 논란을 보도한 언론인가. 무엇보다 언론의 사명은 진실 수호에 있지, 국익 수호에 있지 않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취재하는 기자단의 전용기 탑승은 주권자의 ‘알권리’를 위해 정부가 보장할 책무이다. 대통령이 기자들의 ‘취재 편의’를 위해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순방 취재에 참여하는 언론사가 소요 비용을 자체 부담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여권에선 ‘전용기 탑승 제한일 뿐 취재 제한은 아니다’라고 하지만 궤변에 불과하다. 순방 기간 중 전용기 내에선 기자간담회 등이 이뤄진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럽 순방 후 귀국길에 전용기 항로를 변경해 이라크 주둔 자이툰부대를 전격 방문하기도 했다.

혹여 윤 대통령이 전용기를 대통령의 사유재산으로 여기는 것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나토 방문 때는 민간인 신분인 이원모 인사비서관 배우자를 전용기에 태우더니, 이번에는 특정 언론사 기자를 태우지 않겠다니 말이다. 그러나 대통령 전용기의 주인은 국민이며, 대통령 부부는 공무를 위해 ‘편의’를 제공받는 단기 이용자일 뿐이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실 중앙언론사 공동취재기자단은 이번 조치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철회를 요구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기자협회 등 7개 언론 현업단체도 “반헌법적이고 반역사적인 취재제한 조치를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사안은 국가 지도자가 민주주의 핵심 토대인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 중대 사안이다. ‘자유’를 강조해온 윤 대통령은 이번 조치를 즉각 철회하고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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