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미 포탄 수출, 우크라이나 인도적 지원 원칙 준수해야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 중인 미국에 포탄 10만발을 수출하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례적으로 큰 규모의 거래일 뿐 아니라 한국 무기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일 수도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전쟁 장기화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나야 한다. 하지만 한국산 무기가 더 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데 사용될 가능성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방부는 11일 “미국 내 부족해진 155㎜ 탄약 재고량을 보충하기 위해 미국과 우리 업체 간 탄약 수출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앞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구경 155㎜ 포탄 10만발을 사들인 뒤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최근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이러한 무기거래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미국을 최종 사용자로 한다는 전제하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포탄 하나하나에 위치추적장치가 달려 있지 않은 이상 최종 사용자가 미군인지, 우크라이나군인지 알아낼 방법은 없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9개월째 이어지며 양측은 실탄이 바닥난 상태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온 미국은 자국 내 재고뿐 아니라 주한미군 포탄까지 끌어쓰다 한국에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국제무대에서 ‘자유와 연대’를 강조해온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는 이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현실적으로 러시아 반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위협했다. “우리가 군사 분야에서 북한과 협력을 재개하면 한국은 좋아할 것인가”라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공급한 적이 없으며 인도적·평화적 지원을 해왔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며칠 뒤 미국에서 북한 무기가 북아프리카·중동 국가들을 통해 러시아에 지원됐다는 첩보를 공개하고, 북한이 부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남북한이 다른 지역의 전쟁에 끌려들어가는 듯한 양상이 연출된 것이다.

우리는 그 대상이 누구인지를 떠나 한국이 살상용 무기를 수출하는 일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다만 현 상황에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방탄조끼, 헬멧, 의료품 등 인도적 물품 지원을 계속하면서 전쟁이 조속히 끝나도록 외교적 노력에 힘을 보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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