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 비속어 보도 국익 훼손했다는 외교부의 황당한 제소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과 관련해 외교부가 지난달 19일 서울서부지법에 MBC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원고는 ‘외교부 대표자 장관 박진’, 피고는 ‘주식회사 문화방송 대표이사 박성제’로 돼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15일 “MBC의 사실과 다른 보도로 인해 우리 외교에 대한 국내외 신뢰에 부정적 영향이 있었다”며 “이에 관련 사실 관계를 바로잡고 우리 외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야당 의원들을 ‘이 XX’라고 부른 것을 사과하기는커녕 비판적인 언론 보도를 위축시키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이 사안이 정정보도 대상이 되는지부터 의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난 뒤 박 장관 등과 함께 걸어가며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는 모습이 공동취재단 카메라에 포착됐다. MBC를 포함해 많은 언론이 이 장면을 보도했다. ‘○○○’이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언론이 ‘바이든’이라고 단정한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정정보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사실인지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윤 대통령이 자기 발언의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날리면’은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이후 MBC가 대통령실의 반론을 충실히 반영해준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언론 보도가 과연 한국 외교의 신뢰를 깎아먹었는지도 의문이다. 외교부는 이 보도 직후 미국 측으로부터 ‘미국과 한국 관계는 굳건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설령 국익이 훼손됐다 해도 그것은 윤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원인이지 언론 보도를 탓할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은 윤 대통령이 비속어 사용에 대해 국회와 시민들에게 사과했으면 일찌감치 종결됐을 일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11월 해외 순방 때 MBC 취재진의 전용기 동승을 불허했다. 언론자유 침해라는 비판이 이어지자 윤 대통령은 ‘국익’ ‘헌법 수호’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 최근 UAE·유럽 순방에 MBC 취재진을 다시 전용기에 태우며 ‘국익을 위한 통 큰 결단’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이 두 달 전에 말한 ‘국익’과 ‘헌법 수호’는 과연 무엇이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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